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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지 강남 혈투…적자 나도 단건 배달 속속 도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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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6호 12면

요동치는 배달앱 시장 

지난 7일 모바일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이하 배달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다음 달 8일 단건 배달 서비스 ‘배민1(one)’을 본격 도입한다고 밝혔다. 서울 일부 지역부터 시작해 순차적으로 서비스 지역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단건 배달은 라이더(배달기사) 한 명이 주문 음식 한 건만 픽업해서 배달하는 방식으로, 여러 음식점과 배달처를 거치지 않고 이동해 배달 시간이 크게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배달의민족 측은 “음식을 가장 빠르게 전달받을 수 있는 단건 배달 서비스에 대한 고객 수요가 급증했다”며 “대응할 수 있는 새 서비스를 입점 소상공인들도 원하고 있어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배민, 쿠팡이츠 급성장하자 도입 #“음식 빠르게 전달받아 수요 급증” #신한은행 등 이종 업계도 눈독 #배달비 상승, 적자 발생 불가피 #소비자 부담 증가 부메랑 우려도

관련 업계는 이를 이례적인 소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해 약 15조원 규모를 형성한 국내 배달앱 시장에서 독보적인 점유율 1위(약 60%, 지난해 하반기 기준)를 기록 중인 배달의민족이 후발주자 ‘쿠팡이츠’의 인기 비결을 거꾸로 벤치마킹한 격이기 때문이다. 앞서 쿠팡이 배달앱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2019년 5월 서비스를 시작한 쿠팡이츠는 기존엔 국내에 없던 단건 배달을 승부수로 던졌다. 본업인 e커머스(전자상거래)에서 ‘로켓배송’으로 급성장한 것처럼 공격적인 마케팅만이 후발주자로서 살아남을 길이라고 봤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그 결과 지난해 8월만 해도 5.7%에 불과했던 쿠팡이츠의 점유율은 올 1월 기준 17.1%로 껑충 뛰었다. 업계 3위로서 30%대 점유율의 2위 ‘요기요’를 바짝 추격 중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렇다 해도 아직 배달의민족의 ‘왕좌’까지 위협할 정도는 아닌데 배달의민족이 단건 배달로 맞대응에 나선 진짜 속내는 뭘까. 업계는 크게 두 가지로 풀이한다. 하나는 업계의 최대 격전지이자 전략적 요충지인 서울 강남에서 쿠팡이츠의 영향력이 배달의민족을 위협할 만큼 커졌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시장 조사에서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내의 쿠팡이츠 점유율이 최근 45%를 넘어섰다는 얘기가 나왔다”며 “대응을 미루면 곧 전국적인 흐름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고 (배달의민족이) 내부 판단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른 하나는 표면적인 점유율 외에 소비자 만족도 사수 측면에서도 단건 배달 도입 필요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오픈서베이가 지난달 15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쿠팡이츠는 배달앱 중 선호도 1위(74.0%)를 기록, 배달의민족(56.7%)과 요기요(52.7%) 등을 따돌렸다. 응답자들은 쿠팡이츠의 짧은 배달 시간, 즉 단건 배달을 최대 강점으로 꼽았다. 소비자 입장에선 단건 배달이 하나의 새로운 표준이 된 셈이다. 그러면서 배달앱 시장도 단건 배달 위주로 빠르게 재편되는 분위기다. 이미 도입을 선언한 배달의민족 외에 후발주자인 위메프의 ‘위메프오’도 단건 배달 도입을 준비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비대면 트렌드를 등에 업고 한층 급성장한 배달앱 시장은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기업들의 대거 가세로 격변기를 맞고 있다. 이 역시 배달의민족 등 기존 강자들을 긴장시키는 요소다. 쿠팡·위메프의 e커머스 경쟁사 티몬이 최근 배달앱 시장 진출을 결정하고 관련 인력 채용에 나선 게 대표적이다. 정보기술(IT) 분야 공룡들의 도전도 빼놓을 수 없다. 예컨대 네이버와 카카오는 직접 배달앱을 만들진 않았지만 각각 ‘스마트주문’과 ‘카카오 주문하기’ 등 제휴 음식점을 통한 음식 배달 서비스를 포털 내에서 제공하면서 기존 배달앱 수요를 끌어오는 데 나서고 있다.

심지어 배달앱과 전혀 무관한 듯 보이는 이종 업계마저 이쪽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신한은행은 대행사와 협업해 오는 12월까지 음식 주문 중개 플랫폼을 출시할 예정이다. 비금융 사업 다각화와 소상공인 금융 지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노린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가 디지털금융 규제 개선 방안을 내놓으면서 이처럼 시중은행들이 비금융 서비스 플랫폼 사업에 진출하는 게 가능해졌다. 그런가 하면 외식 프랜차이즈 업계는 자체 앱의 배달 서비스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배달 주문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배달앱에 내는 수수료를 아낄 수 있을뿐더러 브랜드 충성 고객을 늘리는 길이라고 판단해서다. 교촌치킨과 파파존스, KFC 등이 이같이 대응하면서 배달앱 대신 이들의 자체 앱을 찾는 소비자도 급증하고 있다. 교촌치킨 관계자는 “지난달 기준 자체 앱 가입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며 “자체 앱을 통해 할인 쿠폰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면서 입소문이 난 게 작용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 일부 지자체가 공들이고 있는 공공 배달앱 사업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12월 출시된 경기도 ‘배달특급’은 지난 8일 하루 거래액 3억원을 기록, 출시 반년여 만에 누적 거래액 200억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여기에 업계는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2조원 안팎 몸값의 요기요를 누가 품느냐에 따라 지각변동이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신세계그룹 산하 SSG닷컴이 요기요 인수전에 뛰어든 것으로 전해져 특히 관심을 모은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만 해도 배달의민족과 요기요, 그리고 ‘배달통’ 3곳이 전체 점유율의 99%를 장악하면서 이들 모두를 품은 독일 기업 딜리버리히어로의 독점 논란이 불거졌던 것을 고려하면 격세지감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배달앱은 (소비자들이) 그때그때 여러 곳을 쉽게 오가면서 쓸 수 있는 특성상 충성 고객의 개념이 희박한 분야”라며 “기업들로선 점유율 유지나 제고를 위해 단건 배달 도입 등으로 끊임없이 경쟁력 강화에 매진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소비자들은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어 좋은 반면, 기업들은 출혈 경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큰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아한형제들은 눈부신 매출 성장의 이면에서 최근 2년 연속 영업손실로 쓴맛을 봐야 했고, 쿠팡이츠 역시 상당한 적자를 감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단건 배달에선 라이더 한 명에게 기업들이 지급하는 배달비만 평균 6000원 이상이다. 핵심 상권에서 주문이 몰리는 시간대엔 건당 2만원 이상 지급된 경우도 있었다. 이를 유지할 경우 산술적으로 연간 수백억원의 적자 발생이 불가피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지나친 단건 배달 경쟁은 결국 배달비의 장기적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 부담을 키우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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