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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은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 관객의 소중함 느꼈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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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현대무용가 권령은·김보라

지난해 세계를 강타한 한국관광공사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영상의 주역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였다. 중독성 강한 이날치 음악에 찰떡처럼 달라붙는 해학적인 움직임과 원색적인 착장이 대중을 열광시켰다. 최근엔 세계적인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뮤직비디오에도 등장했다. 이들이 대중음악 백업 댄서가 아니라 안무가 김보람이 이끄는 현대무용가들이란 사실에 현대무용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작꾸 둥굴구 서뚜르게’ 권령은 #코로나 탓에 무용인 생존법 고민 #관객과의 커넥트 보여주고 싶어 #‘점’ 선보이는 김보라 #몸짓으로 시공간 등 이미지텔링 #과거 아닌 지금 실재 몸 표현할것

그런데 2020년은 현대무용가들에게 잔인한 해였다. 구경꾼이 모여야 성립되는 공연예술의 전제조건이 팬데믹 상황과 양립할 수 없었다. 하루아침에 무대를 잃은 무용가들은 자신의 정체성부터 고민해야 했다. 세계를 무대로 뛰던 젊은 안무가 권령은(39)과 김보라(39)도 다르지 않았다. 권령은은 2016년 권위 있는 프랑스 안무대회인 댄스 엘라지(DANSE ÉLARGIE)에서 입상했고, 김보라는 무용수 10여명으로 구성된 ‘아트 프로젝트 보라’를 이끌고 28개국 투어를 다닌 ‘해외 각광파’들이다.

국립현대무용단 ‘ 그 후 1년’ 공연

국립현대무용단 기획공연 ‘그 후 1년’에서 각자 포스트 코로나를 테마로 한 작품을 선보이는 현대무용가 김보라(왼쪽)와 권령은. [사진 BAKI]

국립현대무용단 기획공연 ‘그 후 1년’에서 각자 포스트 코로나를 테마로 한 작품을 선보이는 현대무용가 김보라(왼쪽)와 권령은. [사진 BAKI]

“살아가기 위해, 흩어지지 않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려고 노력했어요. 두서없이 들어오는 일들을 처리하느라 머리가 복잡한 한 해였죠. 내가 안무가인지 기획자인지, 역할부터 혼란스러웠어요.”(김) “모든 계획이 취소, 연기되면서 생각할 시간이 많아진 게 가장 큰 변화 같아요.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까지 자문하게 됐죠.”(권)

두 사람이 지난해 국립현대무용단의 선택을 받아 준비했던 공연도 1년이 지나서야 오르게 됐다. 공연의 제목이자 컨셉트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그 후 1년’(6월 4~6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으로 바뀌었다. 브람스의 음악에서 코로나 시대로, 무용가의 고민의 차원이 달라진 것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82년생 동갑내기가 코로나 시대를 모티브 삼은 작품을 만들고 있지만, 둘은 색깔이 전혀 다르다. 그림으로 치면 권령은은 구상적인 드로잉 너머에 있는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사람이고, 김보라는 평면에 점 하나 찍어 놓은 추상화를 ‘감각하게’ 하는 사람이랄까.

콩쿠르 입상과 군 면제 제도가 춤에 미친 영향을 조명한 ‘글로리’, K팝 댄스와 관광버스 춤을 소재로 춤을 통해 사람들이 모이는 현상을 바라본 ‘당신은 어디를 가도 멋있어’ 등, 사회 속에서의 무용을 사색해온 권씨는 이번에도 코로나 시대에 ‘사회적 돌봄의 대상’이 된 무용인의 생존법을 고민한 ‘작꾸 둥굴구 서뚜르게’를 선보인다. “국가에서 지원금이 많이 나왔잖아요. 예술가들이 긴급 지원금을 받는 특별 소외계층에 포함되는 걸 보면서, 늘 후원의 대상이 되어온 예술가의 존재가 새삼 극명해지더군요. ‘어떻게 생계형 예술가로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죠. 진화심리학에서 인류 보편의 생존수단으로 꼽혀온 ‘귀여움’을 방법론 삼아 무용가의 생존 문제를 탐구해 보기로 했어요.”(권)

김보라의 ‘점’은 한층 더 추상적이다. ‘혼잣말’ ‘소무’ 등 장르를 뛰어넘는 압도적인 미장센으로 주목받아온 그가 무려 시간의 시각화에 도전한다. “코로나 때문에 새로운 일을 따내느라 분주히 지내면서 시간의 제약을 많이 느끼게 됐어요. 그런데 그간의 제 작업을 되돌아보니 늘 시간이 묻어나는 작업을 해왔더군요. 이번에는 대놓고 시간을 앞세우고 싶어졌어요. 너무 추상적이라고요? 컨템포러리 무용은 시각을 벗어난 공감각으로 확장됐다고 생각해요. 무슨 얘긴지 몰라도 낯섦을 느끼고, 이상한 경험을 하도록 하는 게 제 작업인 것 같아요.”(김)

역시 춤은 말할 수 없는 걸까. 두 사람의 얘기를 듣다 보니 새삼 ‘현대무용은 알쏭달쏭하다’싶다. 하긴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춤도 이날치와 만나기 전엔 ‘애매모호한’ 춤이었다. “예술가가 일을 하다 보면 시대와 만나는 지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보람씨는 자기 예술을 계속 해왔을 뿐인데, 관광공사 영상이나 이날치와의 협업 같은 여러 가지를 만나게 된 거죠. 같이 활동하면서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좋은 동료 사이에요. 축하하고 싶어요.”(권) “저변 확대를 확실하게 해줘서 너무 고맙죠. 앰비규어스가 알려지면서 자기 색깔이 흐트러진 게 아니라, 고유성 그대로 통했거든요. 우리도 우리 색깔대로 하면 된다는 희망을 갖게 됐어요. 그들 덕인지 몰라도 CF나 외부 제안을 많이 받게 됐고요. 사실 ‘댄싱9’때는 현대무용이 거기에 국한되는 느낌이었는데, 앰비규어스까지 알려졌으니 현대무용에 대한 취향도 다양해지겠죠.”(김)

현대무용 취향 다양해져 CF 제안도

코로나로 인해 무용가들도 플랫폼에 대한 고민을 해야 했지만, 적어도 두 사람에게는 내면을 들여다보고 본질로 돌아가는 계기가 됐다. 이번 공연에서 더 또렷이 볼 수 있다. 김씨에게 안무란 몸을 통해 다양한 주체를 ‘이미지텔링’하는 일이다. “글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하는 작가가 있다면, 저는 몸을 통해 시간을 말하고 공간을 말하고 커피를 말하고 옷을 말하는 사람이에요. 어떤 내용이냐 물어도 스토리는 존재하지 않죠. 그저 느끼게 하고 싶어요. 무대 위에서 스토리가 가리키는 과거가 아니라 지금 실재하는 몸을 표현하고 싶거든요.”(김)

권씨의 안무는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춤과 몸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몇 년 전 유럽에서 BTS같은 K팝 아이돌 춤을 광장에 모여서 추는 ‘K팝 랜덤댄스 플레이 게임’이라는 게 엄청 유행했는데, 그걸 보니 ‘춤이란 모이는 것’이더군요. 춤의 기본 전제가 에너지를 공유하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가 되니까요. 이번에도 정체성과 생존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 속에서 새삼 ‘나와 관객이 있음’이라는 것에 대해 상기하게 됐어요. 코로나 이후 가장 중요한 변화가 관객의 부재였으니까요. 퍼포머로서 내 생존의 조건이자 존재의 증명인 관객과의 커넥트를 표현해 보려 해요.”(권)

관객이 있어 무용가가 있고, 무용가가 있어 관객이 있다. 각자 ‘있어야 할 곳에 있음’이 서로에게 생존의 조건이 된다는 얘기다.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무용가와의 대화에서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무대에서도 보일지는 객석에 가봐야 알 것 같다.

유주현 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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