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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파 유도해 기억 되살려…이춘재 31년 전 범행 자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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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6호 02면

최면 수사의 세계

최면수사 기법 중 하나인 ‘수평도약눈운동’. [중앙포토]

최면수사 기법 중 하나인 ‘수평도약눈운동’. [중앙포토]

지난달 24일 서울 반포한강공원 근처에서 친구 A씨와 술을 마시다 실종된 지 닷새 만에 숨진 채 발견된 의대생 손정민(22)씨는 부검 결과 익사로 밝혀졌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사망 경위는 정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사건을 재구성하기 위해 경찰은 지난달 27일과 29일 두 차례에 걸쳐 A씨를 상대로 최면수사를 벌였다. 경찰 수사기법 중 하나인 법최면은 주로 현장에 사건 해결 단서가 없고, 피해자와 사건 관련자 또는 목격자가 시간의 경과나 공포, 당황, 흥분, 어둠 등의 여건으로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할 때 기억을 되돌릴 목적으로 활용된다. 경찰에 따르면 첫 번째 최면 시도는 중간에 A씨가 깨는 바람에, 또 두 번째 시도는 사건의 단서를 찾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유의미한 내용을 확보하지 못하고 끝났다. A씨의 심리 상태가 불안정한 데다 방어 기제가 세서 최면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비록 이번 두 차례의 시도에서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는 못했지만 경찰은 과거 다양한 사건에서 최면수사를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푼 사례가 적지 않다.

버스 안내원, 최면 통해 얼굴 기억 #다른 피해자도 진술, 실마리 풀어 #1978년 정모양 유괴 때 첫 도입 #경찰, 매년 30건 넘게 수사에 활용 #개인 차 있어 의도적 왜곡 가능성 #법정서 증거능력 인정은 못 받아

한강서 사망 의대생 사건에도 쓰여

대표적인 사례는 화성 연쇄 살인사건이다. 지난 2019년 법최면을 통해 버스 안내양의 31년 전 기억이 되살아난 것을 계기로 용의자 이춘재가 입을 열었다. 당시 안내양 B씨는 법최면 수사를 통해 1988년 9월 7일 오후 9시 30분 화성 팔탄면 가재리에서 수원으로 가는 막차 버스 안 과거로 돌아갔다. B씨는 잊고 있었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최면 속에서 본 ‘수상한 이’의 얼굴과 경찰이 보여준 이춘재의 젊은 모습이 닮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됐다.

경찰은 B씨뿐만 아니라 또 다른 피해자에 대한 최면수사도 진행했다. 화성 사건이 연쇄 발생하던 시점 또 다른 성폭행 피해자 2명도 과거로 돌아가 기억을 더듬었다. 최면에서 깨어난 두 사람은 누군가 자신들의 옷을 이용해 손을 묶었고 범인의 인상착의가 이춘재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진술했다. 이러한 최면수사를 중요한 단서로 해 경찰은 이춘재로부터 자백을 받아냈다. 연쇄살인뿐 아니라 뺑소니, 유괴·납치 사건 등에도 최면수사는 종종 활용된다. 국내에서는 40여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초등학생 납치 사건 해결에 처음으로 최면수사가 도입됐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1978년 정모양 유괴사건이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으로 부산의 한 수산업체 사장의 막내딸이던 정양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도중 “차 안에서 트렁크 열쇠를 갖다 달라. 집까지 태워주겠다”는 40대 남성을 만나 서울로 납치됐다. 경찰은 주변 탐문수사와 함께 목격자 확보에 나섰지만 수사는 답보 상태에 빠졌다. 정양의 부모는 딸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본다며 전국의 용하다는 점쟁이들을 찾기도 했다.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정양 유괴사건은 한 목격자의 진술이 단초가 됐다. 목격자는 “정양으로 보이는 아이를 한 남성이 차에 태우는 것을 봤다”며 “차량 번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경찰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목격자에 대한 최면수사에 들어갔다. 국내 최면심리학계 개척자로 평가받는 유한평 박사가 나섰다. 유 박사는 목격자 최면을 통해 범행 당시 사용된 차량의 번호를 알아냈고 이를 단서로 범인을 체포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대학 수사간부연수소 교육 커리큘럼에 최면이 교과목으로 선정돼 유 박사가 강의를 맡기도 했다. 1970년대엔 종종 TV에 소개되는 최면술을 눈속임하는 마술의 일종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경찰 수사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함으로써 이런 오해를 벗는 계기가 됐다.

경찰이 법최면을 공식화하고 본격적으로 수사에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부터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범죄심리과에서 경찰관 20여 명을 대상으로 법최면 관련 교육을 했다. 이 과정을 마친 경찰이 전문가 인증을 받아 여러 사건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현재 경찰청 소속 법최면 전문 수사관은 27명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본청에 공식 보고된 법최면 수사는 180여건으로 매년 30건이 넘는다. (그래픽 참조) 각 지방청의 자체 법최면 수사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다.

경찰이 법최면을 가장 많이 활용하는 분야 중 하나는 이춘재 사건에서처럼 목격자나 피해자들의 기억을 되살려 범인의 몽타주를 최대한 디테일하게 만드는 일이다.

정신적 긴장 이완, 기억력 증가 유도

2011년 전북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 해결이 대표적 사례다. 국내 법최면 최고의 전문 수사관 중 한명으로 평가받는 전북경찰청 박주호 경위가 최면수사를 진행했다. 피해자는 인적이 드문 비닐하우스로 끌려가 얼굴 등을 수차례 얻어맞은 충격으로 범인의 인상착의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박 경위는 최면수사를 통해 피해자가 쌍꺼풀, 두꺼운 입술, 검정 비닐모자와 패딩잠바 등 범인의 인상착의를 떠올리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또 피해자는 “OO교도소에서 나왔고 7년 만에 네가 첫 여자다”라고 범인이 내뱉은 말까지 기억해냈다. 경찰은 피해자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 범인의 인상착의를 몽타주로 만들었다. 또 OO교도소 출소자 300여명 중 용의자를 3명까지 압축하고 이들 중 한명을 범인으로 지목해 냈다.

법최면 전문가들에 따르면 본격적인 최면에 들어가기 전 간단한 테스트가 이뤄진다. 개개인에 따라 청각 또는 시각 중 어느 쪽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시각적 요소에 민감한 경우 “주변에 뭐가 보이느냐” 등 주로 주변에 보이는 사물과 관련한 질문을 하고, 청각적 요소에 더 민감한 이에겐 “어떤 소리가 들리느냐”고 묻는 식이다. 다음으로 ‘맥락 단서’를 하나하나 제시해 가며 서서히 기억을 끌어낸다. 사건 당시의 날씨나 상황, 기분과 느낌 등 맥락 단서를 주면 구체적 이미지 등 사건의 실마리를 풀 단서를 잡아낼 수 있다고 한다. 박 경위에 따르면 ‘레드 선(Red Sun·최면을 거는 구호 중 하나)’만 외치면 저절로 최면에 빠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뇌파를 베타파(β)와 세타파(Θ)로 유도해 냄으로써 신체와 정신적 긴장을 이완시키고, 기억력의 증가를 꾀하는 일종의 과학이라는 것이다. 베타파는 깨어 있을 때 나타나는 파동, 세타파는 졸리거나 명상에 잠겼을 때 나타나는 파동이다.

하지만 최면수사를 통해 확보한 기억들이 항상 정확한 사실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또 최면수사가 사건을 해결하는 ‘마술’을 부리는 것도 아니다. 개인의 특성 때문에 최면 상태가 잘 유도되지 않거나, 질문자의 의도된 질문 등으로 인해 기억이 실제 상황과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수사의 보조적인 수단으로 이용할 뿐 법정에서 증거능력을 인정받지는 못한다. 최면 상태의 진술이 거짓일 수 있다는 대표적 사례가 1989년 미국에서 일어난 ‘에일린 사건’이다. 에일린이라는 여성이 최면 치료를 받은 뒤 20년 전인 8살 때 자신의 아버지가 친구인 소녀 2명을 죽였다고 진술해 아버지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의 이런 진술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출신의 1세대 프로파일러인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겸임교수는 “법최면 수사관의 윤리강령이나 법최면 수사의 기준 또한 엄격하게 설정돼 있다”며 “의도적 왜곡이 있을 수 있어 용의자와 피의자로 지목된 경우 법최면 수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피해자의 경우 사건 당시의 기억을 회상시켜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라스푸틴, 국정 농단에 악용…심리치료·집중력 향상에 활용도

라스푸틴

라스푸틴

최면술의 역사는 기원전 10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의 조각에는 아마도 최면을 유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여럿 관찰된다. 의술에 뛰어났던 반인반마(半人半馬) 케이론(Cheiron)이 제자이자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를 최면 상태로 유도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또 기원전 376년 이집트에서 ‘치차 엠 앙크’라는 사람이 최면술을 행했다는 파피루스 문서 기록이 남아 있다.

이후 최면에 대한 기록은 1700년대 오스트리아 의사 프란츠 안톤 메스머(Franz Anton Mesmer)에 의해 근대적 개념의 의술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그는 1766년 빈 대학 의대를 졸업하면서 ‘동물 자기술(磁氣術)’로 학위를 받았고,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클리닉을 열어 큰 성공을 거뒀다. ‘동물 자기술’은 인간의 몸에 있는 자력을 이용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이론이었다.

이후 최면술은 심리적 치료뿐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악용된 사례도 있다. 1892년 제정러시아 시대 때 라스푸틴(사진)이라는 인물이 대표적이다. 그는 20대 초 희랍정교회 수도사가 됐다. 러시아 여러 성지를 순례, 영적 체험을 하면서 영험한 심령치료사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소문은 로마노프 황실에까지 퍼져 황후 알렉산드라와 만남이 이뤄졌다. 황태자 알렉시우스의 몸에 난 악성 종기 치료 때문이었다고 한다.

황태자는 혈우병 환자였다. 당시 의술로 섣불리 종기 수술을 하다가 혈우병을 더 악화시킬 수 있어 어느 의사도 선뜻 수술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라스푸틴은 최면술을 이용해 황태자의 고통을 덜어줬고, 황후와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신임을 얻었다.

이때부터 상황은 엉뚱하게 흘러갔다. 황후는 라스푸틴을 연모의 감정으로 대했다. 황제는 무능했고, 황후의 힘을 등에 업은 라스푸틴은 국정에까지 관여하며 국정을 뒤흔들었다. 요승이자 최면술사 라스푸틴의 최후는 비극적이었다. 1916년 12월 그는 제정 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네바 강 얼음 구덩이에서 총에 맞은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현대의 최면요법은 심리치료의 하나로 종종 활용된다. 현대인들의 심리적 고통이나 스트레스, 자신감 결여 등을 해결해주는 최면 치료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일부 젊은 층은 다이어트를 위한 수단으로 또 학생들은 학습능력이나 집중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면요법 전문가에게 치료를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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