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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말에 고개젓던 정인이 양모···"살인 인정" 판결에 흐느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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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1시 50분 서울남부지법 306호 법정. 에메랄드색 수의를 입고 머리를 묶어 올린 '정인이 양모' 장모(35)씨가 1심 선고를 받기 위해 법정에 들어섰다. 장씨는 천천히 걸어와 40분 일찍 도착해있던 양부 안모(38)씨 옆에 섰다. 불구속기소 된 안씨는 고동색 외투에 청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장씨는 울먹이며, 안씨는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재판부의 선고를 들었다.

14일 오후 1시 20분 서울남부지법 앞. 시민들이 설치한 정인이의 사진과 근조화환. 편광현 기자

14일 오후 1시 20분 서울남부지법 앞. 시민들이 설치한 정인이의 사진과 근조화환. 편광현 기자

재판 도중 “피고인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는지 살펴본다”는 판사의 말에 장씨는 작게 고개를 가로로 흔들었다. 이후 판사가 "살인 혐의를 인정한다"고 하자 장씨는 눈을 꾹 감고 소리 없이 흐느꼈다.

판사가 정인이가 당한 학대 내용을 읽어내려갈 때마다 방청석에서는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인이가 사망한 순간을 말할 땐 법원 직원인 참여관도 잠시 안경을 벗고 눈가를 훔쳤다.

양모 '무기징역', 양부 '징역 5년'

이날 서울남부지법 합의13부(재판장 이상주)는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를 상습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장씨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를 방관한 안씨에게는 징역 5년형을 내리며 법정 구속했다. 두 사람 모두에게 각각 20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아동 관련 기관에 10년간의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지난 1월 첫 재판을 마친 '정인이' 양부. 연합뉴스

지난 1월 첫 재판을 마친 '정인이' 양부. 연합뉴스

법원은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한 살인죄 등 장씨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재판부는 "장씨가 4개월간 수차례 피해자를 폭행해 후두부 등 다수의 골절상과 췌장 손상, 장간막 파열 등 학대행위를 했다"며 "특히 지난해 10월 31일에는 복부를 발로 2회 이상 밟아 미필적 고의를 가지고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인정했다. 또 "약 7개월간 15회에 걸쳐 아동인 피해자를 혼자 있게 했다"며 "쇠약해진 피해자를 병원에도 데려가지 않고 유기·방임했다"고 했다.

"자기 잘못 철저히 참회해야"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는 장씨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장씨는 최후진술에서 "정인이를 미워한 적이 없다. 잘못되기를 바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장기들이 있는 복부에 강한 충격을 반복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은 일반인도 예견할 수 있다"고 장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한 이유에 대해 법원은 "자신의 잘못을 철저히 참회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사회로부터 무기한 격리함으로써 피고인이 저지른 참혹한 이 사건 범행들에 대한 상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14일 오후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 모인 시민들이 양모 장씨의 호송차를 향해 피켓을 들고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14일 오후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 모인 시민들이 양모 장씨의 호송차를 향해 피켓을 들고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법정 구속된 양부 "2심 전까지는…"

재판부는 정인이 양부인 안씨의 유죄를 인정하며 그를 법정구속했다. 이에 안씨는 "드릴 말씀이 없고 정말 죄송하다"면서도 "저희 첫째를 위해서, 2심 전까지는 이런 사유를 참작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선고가 끝난 뒤 서울남부지법 정문 앞에 남아 눈물을 흘리던 A씨(41·여·서울 강동구)는 "양부가 2심을 언급했다면 항소를 예고한 것 아니냐"며 "아직도 양부모가 반성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직도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선고 재판이 열리기 4시간 전부터 남부지법 앞에는 정인이 양부모를 규탄하는 시민 약 20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법원으로 들어오는 법무부 호송차를 향해 장씨의 이름을 외치며 엄벌을 촉구했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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