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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건 행운!"…서울대 서문과 미투 도운 교수의 반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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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정문. 연합뉴스

서울대학교 정문. 연합뉴스

2년 전 서울대학교 교내 곳곳에 붙은 대자보는 서울대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한국어와 스페인어, 영어로 작성된 대자보에는 이 대학 서어서문학과의 A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대학원생의 폭로가 담겨 있었다. 이른바 ‘서울대 서문과 미투’의 시작이었다.

[사건추적]

전 세계적인 미투 열풍과 맞닿은 학내 성추행 폭로에 학생들은 분노했다. 총학생회는 전체학생총회를 소집해 사상 처음으로 교수의 파면 요구를 의결했고, 인문대 학생들이 교수 연구실까지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A교수는 그해 8월에 해임됐다.

그렇게 끝난 것 같았던 미투의 폭풍이 다시 먼지를 일으키고 있다. 미투 사건 뒤에 감춰졌던 ‘불편한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다. 성추행 피해자를 도와 가해자 A교수에 맞섰던 서문과 B교수의 의문스런 행적이 그 진원지다. 2년 전 미투 당시의 일로 그는 최근 직위해제됐다.

급기야 경찰 조사를 받는 처지에 놓인 B교수. 미투 피해자 편에 있었던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서울대 서문과 미투 사건의 반전

지난 2019년 2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대학원의 한 졸업생은 “대학원 과정 4년 동안 지도교수에게 성추행 피해를 봤다”라며 교내에 기명 대자보를 붙였다. 해당 대자보는 여러 언어로 번역돼 교내 곳곳에 붙었다. 박해리 기자

지난 2019년 2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대학원의 한 졸업생은 “대학원 과정 4년 동안 지도교수에게 성추행 피해를 봤다”라며 교내에 기명 대자보를 붙였다. 해당 대자보는 여러 언어로 번역돼 교내 곳곳에 붙었다. 박해리 기자

서울대 서문과 B교수는 최근 서울 방배경찰서에 출석했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통신망침해 등의 혐의로 입건됐다. 또한 지난 3월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대 관계자는 “B교수가 인권센터의 결정에 따라 징계위에 회부돼 직위해제가 됐다”며 “현재 논문지도와 강의에서 배제돼 학교에 출근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일련의 상황은 2년 전 있었던 ‘서문과 미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성추행 피해자를 돕는 과정에서 B교수가 불법에 가담하고 오히려 미투를 이용해 부적절한 행위를 한 의혹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서울대 인권센터는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교육자로서 적절하지 않은 행위를 했다”며 총장에게 B교수의 중징계를 요청했다.

미투 공론화 위해 가해자 이메일 해킹

‘서울대 서문과 대자보 미투’ 인물관계도.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서울대 서문과 대자보 미투’ 인물관계도.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미투 당시 B교수는 같은 과의 C강사와 함께 성추행 피해자를 도왔다. 신고서 작성, 사건 공론화 등의 조력자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들의 ‘조력’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2018년 7월 피해자가 인권센터에 성추행 신고서를 접수하자 C강사는 한 달 뒤 A교수의 이메일 계정과 비밀번호를 해킹했다. 징계위에 회부될 A교수의 ‘약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C강사는 A교수의 이메일을 수백 차례 무단 열람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가 학교 측에 제출할 진술서 등을 빼돌려 B교수와 공유하기도 했다. A교수가 성추행 혐의에 대해 어떤 해명을 할지를 미리 파악한 것이다. 이어 B교수는 C강사에게 특정 내용이 담긴 메일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인권센터는 “(B교수가) 일정 시점 이후부터 이메일 무단 열람 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며 “무단 열람한 메일 내용에 대해 코멘트한 사실이 인정되고 특정 내용에 대한 이메일을 찾아보자고 한 정황이 확인된다”고 밝혔다. 인권센터는 대학 내에서 제기된 제보를 바탕으로 조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성추행 사건에 “하늘이 내린 우리의 행운!!”

서울대 서문과 B교수가 C강사와 나눈 모바일 메신저 대화.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서울대 서문과 B교수가 C강사와 나눈 모바일 메신저 대화.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이들은 미투로 인해 A교수가 파면될 것을 염두에 두고 이해득실을 따지기도 했다. 공석이 될 서문과 정교수 자리의 후임을 논의했다. 잠재적인 후보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그게 받아들여지면 □□□은 제거가 된다” “◇◇◇을 뽑자고 할 수 있을까요?” “(타 대학)에서도 버린 쓰레기를 왜 우리가?” “△△△이 준비를 잘해서 무조건 들어와야지” 등의 대화를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B교수는 “OOO(성추행 피해자)의 일도 하늘이 내린 우리의 행운!!”이라며 “정말 고맙고 용감한 아이야”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성추행을 당했던 피해자의 미투를 계기로 A교수를 몰아낼 수 있게 된 것을 ‘행운’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후 이메일 무단 열람이 발각되자 B교수는 모바일 메신저 단체 대화방을 삭제하고 휴대전화를 교체하라고 지시했다.

연구실 점거 관여 의혹도

이들은 A교수의 연구실 점거에도 연루된 의혹이 있다. 당시 연구실 점거 사태가 있기 이틀 전인 지난 2019년 6월 30일 C강사는 당시 서문과의 한 학생에게 “월요일 아침에 A교수 방을 점거하려 한다”며 “내가 하려고 했는데, 형사처벌이 걸려있어서 잘못하면 가중처벌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C강사는 A교수의 이메일 계정 해킹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 상황이었다. 그런 C강사가 학생에게 연구실 점거를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이다.

인권센터는 “(B교수는) 학생회가 A교수의 연구실 점거 행위를 실행에 옮기기 이전에 해당 계획을 인지하고 있었다”며 “그럼에도 이를 제지하는 등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묵인했다”고 지적했다.

이메일 해킹 강사 유죄,교수는 수사 중

A교수의 이메일 계정 해킹과 무단열람으로 기소된 C강사는 지난달 23일 정보통신망침해 등의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그는 2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기각됐다. B교수의 혐의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관련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이다”며 “혐의가 입증되면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관련 혐의에 대해 B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다음에 말씀드리겠다. 죄송하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이후 수차례 전화를 시도하고 문자메시지와 이메일을 남겼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C강사는 본인의 혐의를 묻는 말에 답변하지 않은 채 “(이러한 주장은) 해당 사건 피해자와 저에 대한 2차 가해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한 뒤 더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이가람·함민정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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