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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홍성남 신부의 속풀이처방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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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부활’, 케케묵은 종교용어 같은 느낌이다. 광신도들의 헛소리로 여겨지고 비아냥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용어가 ‘부활’이다. 그런데 방송국에서 오랫동안 사회문제를 다루어온 구수환 피디가 ‘부활’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었다. 남수단에서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부동산이나 재산증식 문제로 물 끓듯 하는 우리 사회에 던진 것이다.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이태석 신부의 ‘부활’이 #돈 문제로 천민화되는 #우리 사회 정화해주길

구 피디가 던지는 부활이란 화두는 육신의 부활이 아니라 존재 의미의 부활을 뜻한다. 어지러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 것이다. 구 피디는 고발 프로를 하면서 제도나 법을 통한 사회 변화의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그는 불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한 답을 가톨릭 수도회 신부인 이태석 신부에게서 찾았다고 한다. 종교를 떠나 사람의 관점에서 해법을 찾은 것이다.

이태석 신부는 의사이자 수도자이다. 수도자들은 세 가지 서원을 지키며 산다. 첫 번째 서원은 가난이다.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가난한 삶을 산다. 그래서 전 세계 오지에는 가톨릭 수도자들이 촘촘히 들어가서 살고 있다.

두 번째 서원은 독신이다. 독신으로 산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서 나의 짐을 가벼이 하려는 것이다. 가난과 독신은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고, 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속풀이 처방

속풀이 처방

마지막 서원은 순명이다. 개인의 생각을 내세우지 않고 공동체를 위해 산다는 의미다. 수도자들은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이기적인 인간 본성을 거스르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수도자들을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런 수도자들의 삶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도 안 되는 생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수도자들이 바보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수도자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가진 것 없이 사는 삶이 행복하다고 하면 정신이 나갔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참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은 크게 세 가지이다. 생리적 행복, 정서적 행복, 영성적 행복. 생리적 행복이란 좋은 집, 좋은 차처럼 무엇인가를 소유함으로써 얻는 행복이다. 정서적 행복이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이다. 즉 유명인사가 되어 가는 데마다 인사받고 싶은 욕구가 정서적 행복의 욕구다. 세 가지 행복 중 가장 상위의 행복이 영성적 행복이다. 소유하고 인사받는 것에 싫증이 나고, 그런 것들이 헛된 것이란 깨달음이 오면 가진 것을 나누는 데서 오는 행복감을 찾는다. 그래서 수많은 수도자가 오지로 가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다.

이태석 신부 역시 남수단에서의 삶을 희생, 봉사라 하지 않고 행복한 삶이라고 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삶이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여긴다. 과연 그럴까? 건강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행복의 단계를 하위 단계부터 상위 단계까지 높여가야 한다. 만약 생리적 행복에만 집착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하고 돈으로 무슨 일이든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천민 의식이 생기며 자신이 가진 것으로 우월감을 과시하려는 진상이 된다.

정서적 행복에 집착하면 왕자병, 공주병 환자가 되기 쉽다. 세상에 자기만 잘난 줄 아는 과대망상증 환자가 되어 온갖 갑질을 다 하면서 사회의 암적 존재, 사회오염의 주범이 된다. 더욱이 뇌가 점점 발달하는 파충류나 포유류와 달리 뇌가 점점 퇴화하는 영장류로서 나이가 들수록 주위 사람들이 가까이 가길 꺼리는 괴물 같은 존재로 전락한다.

자본주의 사회가 천민자본주의로 변질되고, 사람들이 적대감에 사무쳐 사는 이유는 하위 단계의 행복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는 백날 법을 바꾸어야 소용이 없다. 인간이 바뀌지 않는 한 사회도 바뀌지 않는다. 인간을 바꾸는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한 사회학자가 말했다. 사회를 바꾸려면 선인들이 많아져서 악인들이 발붙일 자리를 없애야 한다고. 그의 말처럼 사람답게 사는 사람들, 자신의 이기심을 거슬러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수도자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천민성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어떤 이념도 어떤 제도도 어떤 혁명도 사회를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현실에서 질리도록 보았다. 이태석 신부의 부활이 돈 문제들로 연일 들끓고 천민화 되어가는 우리 사회를 정화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