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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뒤엉키며 15분만에 기름 동났다…美송유관 공격 패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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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미 최대 송유관 운영사인 콜로니얼 파이프라인 사이버 공격 여파로 미국 전역에서 기름 사재기 바람이 불고 있다. 미 뉴욕주 스코틀랜드 넥에 있는 덕쓰루에서 기름을 하기 위한 차량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미 최대 송유관 운영사인 콜로니얼 파이프라인 사이버 공격 여파로 미국 전역에서 기름 사재기 바람이 불고 있다. 미 뉴욕주 스코틀랜드 넥에 있는 덕쓰루에서 기름을 하기 위한 차량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최대 송유관 운영사인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의 가동중단 사태가 닷새째 접어들면서 남동부지역에서 기름 대란이 일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등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 남동부 일대의 주유소에서는 휘발유 등 연료를 채우기 위한 자동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이 지난 7일 사이버 공격으로 기름 운송 차질을 빚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소비자들이 앞다퉈 ‘기름 사재기’에 나선 것이다. 이날 코스트코, 비제이스 홀세일클럽 등 저렴한 가격으로 휘발유를 파는 대형 할인마트의 주유소에는 차량 30대 이상이 몰려들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랠리-더럼 일대에서 노인 간병 서비스를 하는 로저 호만은 주유소 네 곳을 돌아다녔지만 모두 허탕을 쳤다. 미리 주유소에 전화를 걸어 휘발유 재고를 확인했는데도 구하지 못했다. 호만은 “‘서두르라’는 직원의 말에 다급하게 달려왔지만, 불과 15분 사이에 모두 팔렸다고 한다”면서 “차로 이동해야 하는데 기름이 없어 일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료시장 정보 제공업체 가스버디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미 전역 휘발유 수요는 일주일 전보다 약 20% 늘었다. 특히 플로리다, 조지아,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등 남동부 5개주의 휘발유 수요는 40% 급증했다. 미 편의점 소매협회(NACS)의 제프 레너드 부회장은 “소비자들은 언제 어디에서 기름을 구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한 번 주유할 때 가득 채우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1일(현지시간) 미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대형마트 코스트코 주유소 앞에서 차량 수십 대가 주유를 기다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미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대형마트 코스트코 주유소 앞에서 차량 수십 대가 주유를 기다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버스·트럭·항공기를 운영하는 장거리 운송업체도 비상에 걸렸다. 연료 부족을 우려한 일부 항공사는 노선 조정으로 기름 아끼기에 들어갔다. 아메리칸 항공은 연료 부족을 대비해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 더글라스 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장거리 노선 2개를 조정하기로 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도 테네시주 내슈빌 국제공항으로 긴급 추가 연료를 주문했다.

소비자들의 기름 사재기에 제니퍼 그랜홀름 에너지부 장관은 “코로나19 사태 때 휴지를 사들일 마땅한 이유가 없었듯, 지금도 기름 사재기를 할 이유가 없다”면서 기름 구매 행렬에 동참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기름값, 6년 반만에 최고가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측은 이번주 안으로 대부분의 시스템이 안정화할 것이라고 보고있다. 그러나  주유소들의 기름 재고는 벌써 바닥을 드러냈다. 개스버디에 따르면 11일 오전 기준 조지아주 전체 주유소의 약 5%인 240여 곳과 버지니아주와 노스캐롤라이나주 전체 주유소의 약 7.5%에서 기름 재고가 소진됐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 남동부 지역의 휘발유 재고 규모는 평균치보다 9% 적은 2380만 배럴로 추정됐다.

개스버디의 석유분석 책임자 패트릭 디한은 “일부 운전자들의 기름 사재기로 주유소 기름이 예상보다 일찍 바닥나고 있다”면서 “파이프라인 운송 중단 여파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11일(현지시간) 미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대형마트 비제이스 홀세일클럽의 주유소가 기름이 모두 팔렸다는 표지판을 내걸었다. [로이터=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미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대형마트 비제이스 홀세일클럽의 주유소가 기름이 모두 팔렸다는 표지판을 내걸었다. [로이터=연합뉴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름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미 운전자 협회 AAA에 따르면 이날 오전 미 전국 주유소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1갤런(3.8L)당 2.99달러(약 3363원)로, 2014년 11월 이후 최고가를 기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아직 선물 시장은 큰 변동 없이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 접종 이후 맞이하는 5~6월 첫 휴가철 대이동을 앞두고 기름 가격은 앞으로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WSJ은 “닭고기부터 가전제품까지 이미 모든 소비재 가격이 상승한 상태에서 연료 가격까지 오르면 소비자 부담이 가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도 언론 브리핑에서 “(콜로니얼 파이프라인 발)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단기적이지만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정부도 연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긴급 조치에 나서고 있다. 이날 미 환경규제 당국은 펜실베이니아, 메릴랜드, 버지니아 등에서 판매되는 휘발유 증기압 제한을 일시 철회했고, 미 교통부는 운송규제인 존스법(Jones Act)의 한시적 완화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남동부로 석유 공급량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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