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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피고인 중앙지검장' 탄생한 날, 이성윤은 휴가 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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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 위기에 놓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11일 서울중앙지검 정문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 뉴시스

기소 위기에 놓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11일 서울중앙지검 정문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 뉴시스

헌정사상 초유의 ‘피고인 서울중앙지검장’의 탄생이 결국 현실화됐다. 수원지검은 12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2019년 6월 안양지청의 ‘김학의 전 차관 불법출금 의혹’ 수사권 행사를 방해한 혐의(직권남용)로 기소했다. 이 지검장이 신청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가 8대 4라는 압도적 표차로 기소를 권고한 지 이틀 만이다.

'중앙지검' 검사가 '중앙지검장'을 기소했다

수원지검 수사팀(팀장 이정섭 부장검사)은 이날 오전 조남관 검찰총장 대행으로부터 서울중앙지검 검사 직무대리를 발령받아 이 지검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 불구속기소 했다. 서울중앙지검(직무대리) 검사가 현직 서울중앙지검장을 기소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빚어지게 된 것이다. 수원지검이 중앙지검 직무 대리 발령을 받게된 것은 이 지검장 주거지와 범죄 발생지 모두 중앙지검 관할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검찰은 16쪽 짜리 공소장에 지난 2019년 6월 20일부터 7월 4일까지 약 2주간으로 기간을 특정해 당시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이던 이 지검장이 김 전 차관에 대해 불법적으로 출국을 금지한 사건을 수사하던 안양지청 지휘부에 연락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안양지청이 이규원 검사에 대한 ‘6월 19일자 검사 비위발생 보고서’를 제출했으나 대검 반부패부가 수원고검 등 상부 보고를 막았고 ▶7월 3일 자 수사결과 보고서에는 없던 “더 이상 (불법 출국금지 의혹 관련) 진행 계획 없음” 등의 문구가 다음 날 작성된 최종 버전에 대검 반부패부 지시로 추가된 사실 등이 적혀있다고 한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중앙포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중앙포토

이 지검장은 이날 재판에 넘겨지자 약 10여분 뒤 입장을 내고 "저와 관련한 수사로 그간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수사과정에 당시 반부패강력부 및 대검의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했으나 결국 기소에 이르게 되어 매우 안타깝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서 당시 수사외압 등 불법행위를 한 사실이 결코 없다”며 “향후 재판절차에 성실히 임해 진실을 밝히고, 대검 반부패강력부의 명예회복이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이 지검장은 수심위에서 기소 ‘찬성’(8명) 대 ‘반대’(4명)라는 2배의 표차로 기소를 의결한 지 이틀 만에 재판에 넘겨지게 된 것이다. 앞서 이 지검장은 회심의 ‘반격 카드’로 수심위 개최를 요청했지만 수심위원들은 표결을 통해 8대 4로 기소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수심위가 열린 다음날인 지난 11일 김 전 차관 수사 외압 의혹을 받는 이 지검장을 기소하겠다는 수원지검 수사팀의 의견을 승인했다.

이성윤은 연가…朴은 “거취 생각 안 해봤다”

이 지검장은 이날 ‘개인 사정’을 이유로 하루 연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전날 정문으로 출근을 한 이 지검장이 이날 갑작스레 휴가를 낸 것은 이날 수원지검 수사팀의 기소가 예정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 지검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요구도 검찰 안팎에서 거세다. 심지어 여당 지도부 내에서도 자진 사퇴 필요성이 언급됐다. 더불어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인 백혜련 최고위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본인이 요청한 수사심의위 결과, 기소 권고가 나왔기 때문에 결단이 필요한 것 아닌가”라고 사실상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김예령 국민의힘 대변인은 “형사피고인 신분의 현직 중앙지검장을 맞이해야 할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며 오명”이라며 “누구보다 더 법을 엄격히 지켜야 할 중앙지검장 자리에 형사 피고인 신분이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국민 기만”이라고 쓴소리했다.

인사권자인 박 장관을 향해서는 “당장 직무 배제하고 징계 절차에 착수해도 모자랄 판에 '기소된다고 다 징계하는 건 아니다'라는 궤변을 늘어놓는 막가파식 태도”라고 했다. 박 장관이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이 지검장의 거취에 대해 “재판과 징계는 별개”라고 선을 그은 발언을 두고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를 두고 검찰 내부의 반발은 들끓는다. 한 검사는 “정의와 엄중함의 상징이 되어야 할 중앙지검장이 중대 혐의로 기소되고도 부끄러움을 모른 채 그 직을 유지하려 하는가”라며 “수사 및 재판 중인 판검사를 수사 및 재판사무에서 배제하는 것이 법조계의 당연한 불문율”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검찰 간부는 “재판받고 수사받는 사람들이 법무부‧검찰 수뇌부에만 수두룩하다”며 “그런 이들을 인사조치하지 않거나 심지어 영전시키는 것이 현 정부 ‘검찰개혁’인가, 아니면 ‘검찰 길들이기’인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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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본부장도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으로 기소됐지만 별다른 인사조치 없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도 불법 출금 관련으로 검찰에서 서면 조사를 받았으나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됐다.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독직 폭행 혐의로 기소된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는 당시 부장검사였으나 차장검사로 영전했다. 반면 한 검사장은 채널A 사건으로 입건되자 추미애 당시 장관의 조치에 따라 부산고검 차장검사에서 법무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원포인트’ 대기발령 인사가 단행됐다.

김수민‧정유진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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