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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드라마의 공수처 평행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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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효식 기자 중앙일보 사회부장
정효식 사회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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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일이 절대 없길 바라지만 저는 대통령을 수사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만약 제가 수사를 받아야 한다면 그때는 여러분이 해 주십시오.”

최연수 초대 공수처장이 지난주 취임식에서 공수처 직원들에게 한 취임사다. 그는 30년 전 선배인 전대협 의장을 변호했던 인권변호사 출신이다. 거악의 상징인 국가정보원 기조실장과 공안검사 출신 보수 야당 국회의원이 합작한 임명 방해 공작을 뚫고 우여곡절 끝에 취임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최연수의 공수처는 현실의 세계가 아니라 JTBC 드라마 ‘언더커버’ 이야기다. 안기부에 체포된 전대협 의장이 의문사했다거나 국정원이 수천억 원의 특수활동비를 차명계좌로 관리(‘화수분 사업’)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드라마 속 설정은 실제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드라마 속 최연수의 공수처는 1호 수사로 자신을 임명해준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의 금품수수 비리 의혹을 수사한다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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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같은 드라마가 현실 세계의 김진욱의 공수처와 오버랩되어 보인다. 김진욱 공수처의 출발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드라마처럼 작위적 설정은 아니지만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 출신 초대 공수처장이란 타이틀은 국민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김진욱 처장의 넉 달 전 취임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 시대의 역사적 과제인 공수처의 성공적인 정착이라는 시대적 소임 앞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이 자리에 섰다.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철저히 지키고,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성역 없이 수사함으로써 공정한 수사를 실천할 것”이라고 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드라마와 현실이란 두 세계의 공수처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출발은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10일 기소 결론을 내린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황제조사’ 논란이었다. 김진욱 처장은 국회 법사위에서 “조사를 겸한 면담이었다”고 답변하고선 수사보고서에 면담 내용 한 줄을 남기지 않았다. 공수처장 관용차를 보내 이 지검장을 공수처로 모셔왔고 운전기사 대신 5급 공수처장 비서관을 보냈다. 황제조사 논란에 이어 여운국 공수처 차장과 비서관에 대한 이찬희 전 변협 회장의 사천(私薦), 특혜 채용 의혹도 불거졌다.

이 모두를 출범 초엔 겪을 수밖에 없는 혼란으로 치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려면 공수처 수사로 존재 이유를 입증해야 한다. 김진욱 처장이 ‘2021년 공제 1호’ 사건번호를 부여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특혜채용 의혹’ 1호 수사의 성패가 중요한 이유다. ‘여권에서 버림받은 박원순계를 골랐다’ ‘감사원이 고발한 안전빵 수사여서 선정했다’라는 이미 돌고 있는 의혹부터 불식시켜야 한다.

정효식 사회1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