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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열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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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역시 왕족은 뭐가 달라도 달라.”

세도가 이이첨의 며느리가 죽은 남편을 따라 자결하자 나오는 반응이다. 실은 며느리가 실종되자 사망한 것으로 꾸민 것이지만 대부분 의심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MBN 주말 사극 ‘보쌈-운명을 훔치다’에 나오는 장면이다.

조선 후기는 여성, 특히 며느리에게 죽음을 압박하던 시대였다. 남편이 죽었을 때 자결하면 나라에서는 열녀문을 내리고 해당 집안은 부역(국가나 공공 단체가 백성에게 부과하는 노역)과 세금을 면제해줬다. 나라에서는 유교적 분위기를 고양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열녀 발굴 사업을 벌였다.

역지사지 5/12

역지사지 5/12

안정복이 쓴 『열녀숙인조씨정문(烈女淑人趙氏呈文)』에는 남편의 3년상을 마치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자, 주변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독약을 마시고 죽은 이야기가 나온다. 이 외에도 조선 후기에 간행된 ‘열녀전’에는 목을 스스로 찌르거나, 식음을 전폐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화가 수도 없이 등장한다.

이렇게 열녀를 고양했던 것은 임진왜란 과정에서 유교적 사회 질서가 무너진 충격 때문이다. 그래서 전후 복구 사업에서 1순위로 다뤄진 것은 열녀와 효자·충신의 발굴이었다. 광해군 때 편찬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등장한 열녀 553명 중 441명이 임진왜란 때 자결한 여성이다. 하지만 포상을 노리고 억지로 만든 열녀도 적지 않았다. 정약용은 “명예를 낚아 부역을 피하게 하고 간사한 말을 꾸며서 임금을 속이게 한다”고 비판했다. 국가의 실패는 민간에게 엉뚱한 희생을 강요하는데, 열녀 만들기는 최악의 사례로 꼽힐만 하다.

유성운 문화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