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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선희의 문화 예술 톡

개인 소장에서 공공 소장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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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갤러리스트로서 내가 판매한 작품들이 미술관 전시에 포함돼 소장자에게 대여 요청을 할 경우가 있다. 서양의 컬렉터들은 흔쾌히 받아들이는 반면 한국의 컬렉터들은 거절하거나 대여를 해주더라도 대부분 익명으로 남기기를 부탁한다. 사서 세무 조사를 받게되는 빌미를 제공할까 하는 걱정은 차치하더라도 미술품을 소장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따가워서라고 한다.

이것은 미술품을 기부하고자 할 때에도 해당한다. 까다롭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기부를 한다고 해도 돌아오는 혜택은 매우 미흡하니 오히려 귀찮기만 하다.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대신 내는 미술품 물납제는 여전히 실현되지 않았다. 내가 미술계에 처음 발을 디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상황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국내 컬렉터들과 미술계 관계자들은 서양 선진국들의 기부 문화 정책을 사례로 들면서 우리나라의 관련 제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피카소 미술관 소장품 전 포스터.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피카소 미술관 소장품 전 포스터.

하지만 한국도 OECD에서 인정한 선진국이지 않은가. 예산이 한정된 공공 기관의 소장품이 기관의 재정만으로 양적이나 질적으로 성장하기가 어려운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실이 아니다. 미국이나 영국·프랑스같이 문화적인 성공을 이룬 나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들 나라에서는 개인의 미술품 소장품들이 당당하게 공공 기관의 소장품으로 옮겨갈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해주는 제도들을 만들어 왔다. 결국 이는 보다 많은 이들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였을 뿐 아니라 문화적인 인프라가 경제적 인프라로 이어지도록 해왔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파리에 가면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이 미술관, 영국에 가면 대영 박물관이나 테이트 모던 미술관, 미국에 가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나 모마 현대 미술관을 찾는 것을 생각해보자. 이들 소장품들 중에는 기부된 작품들이 많고, 특히 미국 미술관들의 경우 기부를 한 소장자의 이름으로 만든 별도 전시실도 종종 볼 수 있다. 미술은 부유한 이들만이 향유하는 것이 아니지만 부자여야만 살 수 있는 값어치를 지닌 작품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가치의 작품을 소유한 개인이나 기업들이 이를 보다 많은 이들과 향유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제도들이 있다면 보다 많은 이들이 문화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예술의 전당에서 개막한 피카소 특별전에 첫날부터 건물 밖까지 관람객들이 줄을 선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 전시에는 파리의 국립 피카소 미술관에서 온 피카소 작품 110점이 전시되고 있다. 피카소 미술관은 1973년 피카소 사망 이후에 유족들이 상속세 대신 프랑스 정부에 물납한 피카소 작품들로 1985년에 개장하였고 피카소 작품 소장 규모로 세계 최고다. 이쯤 되면 거의 반세기 전에 프랑스 정부가 한 수 위였음을 알 수 있다.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