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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세상사도 절대 고수가 복기할 수 있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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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중국 상고사의 하(夏), 은(慇), 주(周)는 모두 말희, 달기, 포사라는 미녀에 의해 멸망했다. 연달아 왕조를 쓰러뜨린 주인공이 모두 여자라니. 정말 그럴까. 코로나 때문에 집에 박혀 열국지를 다시 보다 떠오른 의문이었다. 책을 덮고 TV 뉴스를 틀면 부동산, 암호화폐가 나오고 코로나 거리두기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다. 물론 정답은 나오지 않는다. 까마득한 옛날이나 당장의 현실이나 아리송하기는 마찬가지다.

AI의 정답이 바꿔놓은 바둑 풍경 #“의구심 사라지자 토론도 사라져”

바둑의 복기(復棋)는 ‘기보’라는 명백한 기록을 근거로 한다. 기보의 스토리를 따라가며 어떤 상황이 패착을 만들었고 또 승착을 이끌어냈는지 찾아낸다. 이창호 9단은 소년 시절 바둑을 지고 나면 밤새 복기하고 또 복기하며 기어이 반집 이기는 길을 찾아내곤 했다. ‘신산(神算)’이라 불리는 이창호의 능력은 이런 노력으로 다져진 것이었다. 그러나 세상사는 복기가 어렵다. 오래된 것은 기록이 희미하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것들은 아직 승부가 나지 않았기에 복기가 중구난방이 된다. 이념이나 파벌이 개입하면 더욱 복잡해진다.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AI 이전만 해도 종횡 361로에 불과한 바둑의 복기도 뜨거웠다. 기풍이 다르고 인생관이 다르기에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한국의 복기는 격렬했다. 서로 자기주장을 앞세우는 통에 진전이 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해결책은 ‘고수’였다. 누구나 인정하는 고수가 나타나면-예를 들어 이창호가 등장하면-복기판은 조용해진다. 비로소 경청하는 분위기가 된다. 따라서 복기가 제대로 되려면 한 명의 고수가 필수적이었다. 세상이라는 바둑판에서도 누구나 인정하는 고수가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처럼 첨예하게 갈라선 세상에서는 그런 존재가 등장할 공간은 없어 보인다. 설령 예수 공자 석가 같은 존재라 하더라도 내 편이 아니면 별 볼 일이 없어진다.

어느 날 AI라는 절대 고수가 나타나면서 바둑 세상은 상전벽해가 됐다. 순식간의 일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복기 풍경이다. 목진석 국가대표팀 감독(프로 9단)은 “의구심이 사라졌다. 동시에 토론도 사라졌다”고 말한다.

중요 대회가 끝나면 여럿이 모여 복기를 진행한다. 저마다 의견을 낸 다음 AI로 정답을 확인한다. AI는 한 장면마다 수많은 수를 제시한다. 모든 수에 예상 승률이 표시된다. 복기에 참여한 기사들은 내 의견이 몇점짜리였는지, 누가 정답을 말했는지 확인한 뒤 다음 수로 넘어간다. AI의 정답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AI는 ‘파란빛’을 깜박거리며 정답을 표시한다. 프로기사들에게 그 반짝거림은 무슨 계시처럼 다가온다. 머릿속의 스트레스가 말끔히 씻겨나가는 것을 느낀다.

프로기사라는 직업은 의심하는 직업이다. 과학이든 행정이든 다른 업종의 모든 전문가도 마찬가지로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살아간다. 내가 유리한가. 내가 선택한 이 수는 과연 옳은가. 바둑을 둘 때도, 복기할 때도 의구심은 떠나지 않는다.

AI는 꿈속까지 쫓아다니는 이 의구심으로부터 프로기사를 해방시켰다. AI만 켜면 정답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이 놀라운 변화를 보면서 이런 변화가 세상사로 확산되는 날이 올까 생각해본다. 그런 세상이 온다면 우리는 지겨운 논쟁을 끝낼 수 있다. 이 시점에서 무엇이 옳은 얘기인지 안다는 것은 얼마나 중하고 기막힌 일인가. 누가 현인이고 누가 사기꾼이었는지 아는 것은 또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판타지 같은 얘기지만 이런 세상이 온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을지 모른다. 과거와 현재를 놓고 복기하며 정답을 찾아보는 게임이 훨씬 재미있을 테니까.

그런 세상이 행복할까 여부는 다른 문제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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