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경제, 한국 턱밑까지 쫓아왔다…반도체·탈중국으로 순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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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에 제친 줄 알았던 경쟁자가 바로 등 뒤까지 쫓아왔다. 최근 대만과 한국 관계가 그렇다. 한때 중국의 견제로 변방으로 밀렸던 대만이 반도체 기술과 탈중국을 등에 업고 다시 부상하고 있다.

방역 대응 탁월…1분기 성장률 한국 2배

대만 한국 경제성장률 비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대만 한국 경제성장률 비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11일 대만 통계청에 따르면 대만의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 분기와 비교해 3.09% 기록했다. 한국 1분기 실질 GDP 성장률(1.6%)의 약 2배다. 올해 대만 경제성장률은 전년 대비 최고 8%에 달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4%대 성장을 목표로 하는 한국보다 훨씬 높다.

이런 격차는 우선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차이에서 나왔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대만 정부는 지난해 코로나19 발발 초기부터 중국인 입국을 차단해 추가 확산을 막았다. 마스크 등 방역물자 수출도 통제해 한국 같은 마스크 대란도 없었다.

대만은 지난해 2분기 역성장(-0.73%)한 이후 3분기(4.34%)·4분기(1.43%)부터는 큰 폭 반등을 이뤘다. 지난해 한국의 2분기(-3.2%)·3분기(2.1%)·4분기(1.2%) 경제성장률 회복 속도보다도 빨랐다. 2017년 이후 연 단위로 살펴봐도 2018년을 빼면 모두 대만의 경제성장률이 더 높다.

대만 한국 국민총소득 비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대만 한국 국민총소득 비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대만의 선전이 이어지면서 한국과 격차도 점차 줄기 시작했다. 지난해 대만 1인당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2만9230달러로 한국(3만1755달러) 턱밑까지 따라 왔다. 지금 추세면 2~3년 뒤에는 1인당 GDP에서 한국을 역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018년에는 한국 3만3563 달러, 대만 2만6421 달러로 격차가 7142달러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파운드리 원조 TSMC…대만 무기됐다

TSMC 로고. 연합뉴스

TSMC 로고. 연합뉴스

대만 경제 부상의 또 다른 배경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산업의 성장이다. 대만의 TSMC는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60%를 차지하는 독점적 업체다.

TSMC의 질주는 세계 반도체 분업화 흐름을 잘 탄 덕분이다. 미국이 반도체 연구개발(R&D)과 설계 같은 '돈 되는 분야'에 집중하는 사이, TSMC는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위탁 생산이란 새로운 사업 분야를 개척했다.

대만 정부의 '지원사격'도 있었다. 중소·중견기업 위주 산업구조를 가진 대만은 한국처럼 세계적 위상을 가진 대기업이 없어 한국에 밀렸다는 분석이 많았다. 이에 대만 정부는 TSMC에 전폭적 지원을 해 세계적 기업으로 육성했다. 최근 극심한 가뭄에도 벼농사에 쓸 물까지 끌어 TSMC에 지원할 정도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TSMC는 파운드리만 집중하는 데다 축적한 기술력도 상당하다"며 "메모리 등 다른 분야에도 투자해야 하는 한국 기업이 따라가기가 만만치 않다"고 했다.

탈중국 선봉 대만…국제무대 재부상 노려

코로나19 이후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시작한 국제사회 탈중국 흐름도 대만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됐다. 대만 정부는 6대 핵심전략산업(사물인터넷·인공지능, 정보보안시스템, 바이오·의료기술산업, 국방산업, 그린에너지·재생에너지산업, 민간생활 관련 산업) 공급망을 미국 등 서방진영(Blue line)에 연계해 재편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한국처럼 대만도 무역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지만, 미국의 중국 배제 기조에 과감하게 동참했다.

실제 대만은 미국의 중국 제재조치 이후 화웨이·SMIC 같은 중국 기업과 거래를 끊었다. 또 TSMC는 미국 제재 명단에 이름 올린 중국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 설계 업체 페이텅 생산 주문을 받지 않기로 했다.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반도체 공급망 회의’ 참석 이후 내린 결정이다.

일본과 동맹은 강화했다. 최근 TSMC는 186억엔을 투자해 일본 쯔쿠바시(市)에 반도체 후공정 분야 연구회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설계(미국)-생산(대만)-소재·장비(일본)으로 이어지는 3각 동맹을 강화해 글로벌 공급망을 주도하겠다는 의도다.

이런 대만의 행보는 미국을 업고 국제사회에 다시 복귀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실제 최근 미국은 세계보건총회(WHA) 연례회의 옵서버로 대만을 참가시켜 달라고 세계보건기구(WHO)에 요청하며 대만 지원에 나섰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과거 대만은 중국 견제 때문에 자유무역협정(FTA) 등 다른 나라와 통상 분야에서 철저히 배제됐는데 그 수혜를 한국 기업들이 누려왔다”면서 “하지만 대만이 미국 지원으로 통상 협정에 참여하기 시작하면 한국 기업에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세종=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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