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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갈등으로만 치부 말라" 징병제 논란에 모인 전문가 6인

중앙일보

입력

11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 '징병제 논란'을 토론하기 위해 전문가 6인이 모였다. 군인권센터 측은 "정치권에서 연일 ‘남녀평등복무제’, ‘모병제’, ‘군 가산점 부활’ 등을 제안하고 있다"며 "편 가르기식 논쟁이 아닌 안보 환경, 군 구조 개혁 등 근본적인 질문을 검토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날 열린 '병역제도 개편 이슈 라운드테이블'은 군인권센터, 나라살림 연구소, 참여연대가 공동주최했다.

11일 오전 10시에 군인권센터가 개최한 '병역제도 개편 이슈 라운드테이블' 토론회 모습. 편광현 기자

11일 오전 10시에 군인권센터가 개최한 '병역제도 개편 이슈 라운드테이블' 토론회 모습. 편광현 기자

토론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인구 감소에 따라 현행 징병제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모두 공감했다. 하지만 "모병제 등 병역제도를 개편하기에 앞서 우리 군이 처해있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여성징병제' 논란에 대해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왜 이런 주장이 나오는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 적정 병력 얼마인가'부터

 이 자리에서 전문가들은 "병역제도만 개편하면 군이 가진 여러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접근하는 방식은 위험하다"고 했다. 김광식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제도를 개편하기 전에 우리 군이 대비해야 할 위협과 그에 따른 적정 병력 규모에 대한 판단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병제에 앞서 분석할 요인으로 ▶안보 위협 수준 ▶국민의 병역 인식 ▶경제적 측면 ▶인구 추이 등을 꼽았다.

황수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은 “국방연구원 등의 연구 결과를 고려할 때 한국군 상비 병력을 30만명 수준으로 감축하고 군 복무 기간을 12개월 정도로 줄이는 것이 병역제도의 장기적 개편 준비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군인 이미지. 연합뉴스

군인 이미지. 연합뉴스

이왕재 나라살림연구소 부소장은 준비 없는 징병제 개편은 국방예산의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부소장은 "2019년 군인연금 적자가 1.6조원 규모고, 2016년에는 7조원 규모의 '군 생활관 개선 사업'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나기도 했다"며 "국방예산의 합리적 운영안이 확보되지 않으면 모병제 도입에 따른 부담은 전 국민이 져야 한다"고 말했다.

'여자도 군대 가라'는 청원 나올 수밖에 없던 이유

이날 토론회에선 11일 오전 기준 동의자 수 27만명을 넘긴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해달라'는 청와대 청원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황 팀장은 "신체 건강한 남성이 대체 불가능한 젊은 날의 시간을 군대에서 보내야 하는 현행 병역제도는 (안보를) 누군가의 희생에 기대는 것"이라며 "병역 의무의 필요성과 규모가 얼마여야 하는지 국가가 명확하게 설명하고 적정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지금은 병력 규모를 줄여야 하는 시점이고, 여성에게 어떤 의무를 부과할 것인지도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이라 여성징병제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했다.

'모병제 전환'과 '남녀 의무군사훈련' 주장을 담은 박용진 의원의 저서 '박용진의 정치혁명'. 연합뉴스

'모병제 전환'과 '남녀 의무군사훈련' 주장을 담은 박용진 의원의 저서 '박용진의 정치혁명'. 연합뉴스

이 문제에 대해 강인화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여성징병제나 남녀평등 징병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왜 이런 식으로 발화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며 "개인 병역의무의 규모를 사회적 합의가 아닌 국가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갈등 방치하는 꼴"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징병제에 대한 논의가 소모적인 싸움으로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사무국장은 "국민이 편을 나눠 싸우는데, 정작 정부는 우리 군에 몇 명의 군사가 필요한지에 대해 답을 하지 않고 있다"며 "여성 징병제 주장을 젠더 갈등으로만 치부하며 방치하지 말고, 국방부에서 논의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징병제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정치권이다. 지난달 18일 대선 출마 의지를 밝힌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하되 성별과 관계없이 모두 40~100일간 기초군사훈련을 의무적으로 받는 '남녀평등복무제'를 실시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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