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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미술관에 남북한 미술이 나란히...그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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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 이세현의 'Between Red33', 2007 Oil on canvas two parts, each 250 x 200 cm . [사진 Sigg Collection]

한국작가 이세현의 'Between Red33', 2007 Oil on canvas two parts, each 250 x 200 cm . [사진 Sigg Collection]

한국 작가 이수경의 '도자 작품. yung Translated Vases s—The Moon 3, 2007 Ceramic shards, epoxy resin, gold leaves. 지름 34 cm. [사진 Sigg Collection]

한국 작가 이수경의 '도자 작품. yung Translated Vases s—The Moon 3, 2007 Ceramic shards, epoxy resin, gold leaves. 지름 34 cm. [사진 Sigg Collection]

한국 조각가 김인배의 '델러 혼 데이니', 2007,Synthetic materials, pencil. 사진 Sigg Collection]

한국 조각가 김인배의 '델러 혼 데이니', 2007,Synthetic materials, pencil. 사진 Sigg Collection]

남북한 미술이 유럽의 한 미술관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전시 중이다. 이곳에 나온 남북한 미술은 전시 구색을 갖추기 위해 배치한 '맛보기용'이 아니다. 남북한 미술 자체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달 30일 스위스 베른미술관(Bern Kunstmuseum)에서 개막한 전시 '경계 넘기: 지그 컬렉션의 남북한 미술( Border Crossings. North and South Korean Art from the Sigg Collection) 얘기다.

베른미술관 '경계 넘기'전시 #'수퍼 컬렉터' 지그 컬렉션 #남북한 미술 극명한 차이 드러내

베른미술관은 스위스 수퍼 컬렉터 울리 지그(Uli Sigg·75)가 오랫동안 수집해온 남북한 미술을 한자리에서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를 열고 있다. 지그는 1995~1998년 주중(駐中) 스위스 대사를 지낸 인물로 세계적인 컬렉터 중 한 사람이다. 오랫동안 중국 현대미술을 대대적으로 수집해오며 세계 무대에 알리는 작업을 해왔고 1998년 '중국 현대미술상(CCAA)'을 제정해 시상해오고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엔 한국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비롯해 북한 만수대 창작사에서 제작된 북한 미술까지 함께 소개하는 데 앞장 선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이 전시를 '남한과 북한 양쪽이 모두 항의한 미술 전시(Korean Art Goes on Show, With Protests From North and South)'라는 제목의 기사로 크게 소개했다. 신문은 "이 전시는 하나의 문화 전통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완전히 달라진 두 세계를 한데 모은 드문 자리"라며 "그러나 전시는 남북한 양측에서 모두 환영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총 75점 중 한국미술 42점 

 북한 작가 박영철의 '미사일'. 1994—2004 .Oil on canvas 152 x 272cm.[사진 Sigg Collection]

북한 작가 박영철의 '미사일'. 1994—2004 .Oil on canvas 152 x 272cm.[사진 Sigg Collection]

북한 공동창작화 '바다', 2008 Oil on canvas ,150 x 295 cm. [사진 Sigg Collection]

북한 공동창작화 '바다', 2008 Oil on canvas ,150 x 295 cm. [사진 Sigg Collection]

전시는 남북한 미술을 함께 소개하지만 사실상 전체 전시작 중 상당수는 한국 현대미술이다. 박서보·정상화 등 한국을 대표하는 단색화 작가와 더불어 이세현·김인배·이이남·정연두·신미경·전준호 등 한국 현대 작가 14인의 작품 총 42점이 포함돼 있다. 여기에 북한 미술 7점이 들어가 있으며, 나머지는 중국 작가들 작품이다. 전시작은 의도적으로 남북한으로 구분하지 않고, 주제에 따라 분류됐다.

북한 그림 중엔 풍경화도 있지만, 북한 체제를 옹호하고 선전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이 다수다. 북한 화가 박영철이 그린 '미사일'도 중 하나다. 미사일과 화염이 넘실거리는 배경 앞에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가 나란히 있는 모습을 담았다. 뉴욕타임스는 "북한 미술은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연출된 장면이 들어가 있고 사실적인 스타일로 묘사돼 있다. 정치 지도자들은 거의 종교적 우상(as religious icons)으로 묘사되고 노동자들은 영웅으로 그려지는 한편 자연경관의 웅장함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라고 전했다.

한국 미술은 회화·조각·설치·도자·비디오 등 그 장르부터 다양하다. 박서보 등 거장 작가부터 젊은 작가들의 실험 작품을 함께 아우른 것도 눈에 띈다. '붉은 산수'로 유명한 이세현 작가의 대형 회화 '비트윈 레드'도 그중 하나다. 이세현 작가는 "2007년 런던에서 작업할 당시 지그가 연락하고 작업실을 직접 찾아왔다"면서 "그때 무명의 작가였던 내 작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작품을 사 갔다. 이 작품이 베른에서 뜻깊은 전시에 소개돼 감회가 남다르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캐슬린 뷜러(Kathleen Bühler) 베른시립미술관 큐레이터는 “분단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한엔 활력 넘치는 현대미술과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이 공존하고 있다”이라며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양식이 양 체제의 차이를 확연하게 보여준다”고 전시를 설명했다. 뉴욕타임스는 "서울은 활기차고 다양한 갤러리가 있는 아시아의 예술 허브 (a major Asian art hub with a lively)이지만, 북한에서는, 모든 전문 예술가들이 국제적 영향으로부터 격리된 채 공산주의 독재 정권의 엄격한 통제 아래 (만수대 창작소 등) 두 개의 공식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다"고 소개했다.

김인배, Deller hon Dainy (3 Portraits), 2007, pencil Each 80 x 50 x 45 cm. [사진 Sigg Collection]

김인배, Deller hon Dainy (3 Portraits), 2007, pencil Each 80 x 50 x 45 cm. [사진 Sigg Collection]

허은경, Scopic Image 3, 2014 , Gold Leaves, Gold leaf 24K, Urush FRP, 200 x 16 cm.[사진 Sigg Collection]

허은경, Scopic Image 3, 2014 , Gold Leaves, Gold leaf 24K, Urush FRP, 200 x 16 cm.[사진 Sigg Collection]

지그는 "내가 남북한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한때 하나였던 두 체제 간에 있는 긴장감 때문이었다"며 "이 전시가 그 긴장감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베른미술관은 전시 개막식에 스위스 주재 남북한 대사관에 공식 초청장을 보냈으나 남북한 관계자는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은 이 전시에 7만7000달러를 지원했으나 국내 일각에서는 교류재단이 북한 선전을 조장했다고 비난했다. 지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방어적 태도는 예상했지만, 민주 자유주의 국가인 한국이 반대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세현 작가는 "한 공간에서 한국과 북한 미술을 동시에 보여주는 시도는 세계에서 쉽게 기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며 "세계에 한국 미술의 다양성과 우수성 알릴 기회인데 이 전시를 오히려 정치적으로만 보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선희 전 부산시립미술관장은 "지그 컬렉션은 국제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면서 "그가 오랫동안 수집한 중국 미술 1400점은 홍콩 M+미술관에 기증됐고 이 미술관은 현재 개관을 앞두고 있다. 한국 미술을 사랑한 그가 적극적으로 나선 이번 전시의 의미가 빛바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울리 지그는 2017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중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고, 중요한 국립기관이 반드시 소장해야 할 작품들만 모았다. 처음부터 '축적'이 아닌 '기증'을 목표로 미술품을 모았다"고 밝힌 바 있다.

뷜러 큐레이터는 "예술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그 시대와 환경을 반영하고 있다. 섣부르게 판단하기보다는 관람객들이 이런 작품들이 나온 조건과 배경을 들여다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5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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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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