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98초만 기다렸다면…" 박신영 前아나의 '노란불 직진' 비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1일 오전 8시 서울 마포구 상암초 앞 사거리.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신호등은 약 98초마다 파란불 신호가 돌아왔다. 하루 전 교통사고로 오토바이 배달원이 숨진 현장은 일상을 이미 회복했다.

지난 10일 오전 10시 28분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박신영(32)씨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배달원의 오토바이가 충돌했다. 배달원은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현장에서 숨졌다. 경찰은 당시의 충돌이 자동차의 ‘노란불 직진’과 오토바이의 ‘빨간불 예측 출발’이 동시에 벌어진 사고로 보고 있다.

이들이 사고 직전 봤을 것으로 추정되는 신호등은 파란불 지속시간이 41초였다. 다시 파란불이 켜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98초. 박씨의 신호위반이 사실이라면, 기다리지 못한 1분 38초는 너무도 후회스러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0일 박신영 전 아나운서의 SUV차량과 배달원의 오토바이가 충돌한 상암초 사거리. 편광현 기자

지난 10일 박신영 전 아나운서의 SUV차량과 배달원의 오토바이가 충돌한 상암초 사거리. 편광현 기자

경찰에 따르면 상암초 사거리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던 박씨의 자동차와 오토바이 운전자는 ‘ㄱ’자로 형태로 충돌했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박씨의 SUV 전면부에 부딪혔다.

교통사고 주범은 과속 아닌 ‘신호위반’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가장 최근 통계인 2019년 전체 차 사고 22만9600건 중 신호위반 유형은 2만7921건(12.2%)이다. 1124건(0.5%)인 과속보다 24배 이상 많은 수치다.

휴대전화 이용‧전방주시 태만‧차간 간격 좁음 등 다양한 유형을 포함하는 ‘안전운전 불이행(54.9%)’을 제외하면 신호위반이 교통사고의 가장 큰 원인인 셈이다.

정경일 교통전문 변호사(법무법인 L&L)는 “신호 위반은 한국 교통사고에서 고질적인 문제”라며 “교차로 진입 전에 황색 신호를 봤다면 정지선에 정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인석 한국교통안전교육센터 교수는 “노란불에 ‘1, 2, 3 카운트’가 들어오는 방법도 고민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오토바이 운전자의 신호위반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송 교수는 “인명 피해에 취약한 보행자나 오토바이 운전자분들도 경각심을 기울여주셔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 변호사는 “쌍방 신호위반이라 양측 다 과실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법적으로는 적색 신호 위반 운전자의 주의의무가 더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박신영 전 아나운서의 SUV차량과 배달원의 오토바이가 충돌한 상암초 사거리. 편광현 기자

지난 10일 박신영 전 아나운서의 SUV차량과 배달원의 오토바이가 충돌한 상암초 사거리. 편광현 기자

마포경찰서는 지난 10일 박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해 조사했다. 경찰 관계자는 “차량 블랙박스 등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와 당시 속도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거리의 규정 속도는 시속 50㎞다. 박씨가 신호를 기다렸던 도로는 초등학교 인접 도로라 시속 40㎞ 제한을 적용받는다.

박씨는 소속사 통해 “차량을 운전해 이동하던 중 사거리에서 진입하던 오토바이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충돌했다”며 “사망사고와 관련해 피해자분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