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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공유의 비극’?…이웃 더 멀어지게 하는 공유주택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46)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공유’가 화두다. 공유경제, 공유 사무실, 공유주택, 공유 자전거, 공유 갤러리…. 공유의 사전적 의미는 ‘두 사람 이상이 한 물건을 공동으로 소유함’ 또는 ‘공동으로 가지다’로 되어있다. 즉, 타인과 공동으로 소유하므로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공유는 타인에 대한 배려를 전제로 한다.

공유가 일반화하고 있음에도 공유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타인에 대한 배려가 지켜지지 않으면 공유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다. [사진 unsplash]

공유가 일반화하고 있음에도 공유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타인에 대한 배려가 지켜지지 않으면 공유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다. [사진 unsplash]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공유하며 살고 있다. 아파트에서는 바로 인접한 이웃과 벽, 바닥, 천장의 구조물을 공유하고 있다. 엘리베이터, 계단, 주차장, 놀이터, 도로를 공유하고 급수, 배수, 난방용 배관, 물탱크도 공유하고 있다. 항공기, 열차, 지하철, 버스, 택시도 우리가 공유하는 운송수단이다. 인터넷에선 수많은 정보를 공유한다. 이렇게 공유가 일반화되어 있음에도 공유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타인에 대한 배려가 지켜지지 않으면 공유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다. 중국에서 공유 자전거가 산더미처럼 버려져 있는 사진을 인터넷에서 볼 수 있다. 내가 이용하고 나서 타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정해진 장소에 잘 주차해 두어야 하는데 그냥 아무 데나 내다 버린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실종된 대표적인 사례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 모두의 개인위생이나 공동 행동지침을 정하고 지켜야 하는 것은 우리가 공기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음식점에서는 그릇과 수저를 불특정다수가 공유한다. 그러므로 위생상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식당 수저의 위생상태를 불신해 출장갈 때 자기 개인 수저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참 특이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부 식당의 위생상태를 보면 그를 결벽증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요즘 스마트폰용 그룹 채팅 프로그램인 카카오톡과 폐쇄형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인 밴드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의 소그룹 방도 있고 동창회나 특정 활동을 위해 수십, 수백 명이 모여 있는 단체방도 있다. 이러한 사이버 공유공간에서 지켜야 할 원칙과 예의도 오프라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여기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그 원칙을 무시하는 예의 없는 사람으로 인해 단체 방이 시끄러워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새벽이나 심야에 글이나 사진을 올리는 경우다. 가짜뉴스나 동영상을 무분별하게 퍼 나르는 사람도 있고, 정치적인 글이나 특정 종교와 관련된 글을 매일 주기적으로 올리기도 한다. 이들은 공유공간을 사적 공간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삶의 지침이 되는 좋은 글도 관점에 따라서는 공해일 수 있다. 다들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렇게 살아야 된다, 저렇게 행동하라’는 강요성 글은 때로는 짜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공유주택에는 손해 볼 마음을 가진 사람, 양보가 가능한 사람이 함께 살아야 한다. [사진 unsplash]

공유주택에는 손해 볼 마음을 가진 사람, 양보가 가능한 사람이 함께 살아야 한다. [사진 unsplash]

최근에 공유주택에 사는 분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있었다. 공유주택 한 동에 8가구가 사는데 어떤 결정을 할 때 주민들의 의견이 잘 통합되지 않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주택 시설보수, 주민 공유 공간의 사용방법, 공동 물품구입, 계단이나 현관 등 공유 공간의 청소문제, 공동 소유 상가의 임대문제, 심지어 마당 화단에 심을 화초의 종류도 의견통합이 잘 안 되어 많이 힘들다고 했다. 그렇다고 다수결로 결정하다간 자칫 일부 입주자를 적대 관계로 내몰 수 있어 그렇게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렇게 사사건건 갈등을 겪고 나서 이제 주민 자치회도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공유주택에 살면서 오히려 이웃 간에 소원해졌고 공유주택의 장점을 다 잃어버린 것이다.

이제 우리는 타인과 ‘공유’하는 것보다 나 혼자 소유하는 ‘전유’에 더 익숙해졌는지 모른다. 우리가 갈등 해결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사지선다 교육의 결과일 수도 있다. 주관적인 다양성 보다는 하나의 정답을 강요받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공유주택에 살면서 이웃 간에 많은 상처를 받은 그분의 결론은 공유주택에는 손해 볼 마음을 가진 사람, 양보가 가능한 사람이 함께 살아야 한다고 했다. 결국 ‘타인에 대한 배려’가 ‘공유’의 핵심인 것이다.

프리랜서 건축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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