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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보험 들고 절반이 청구 포기…짜증유발 서류, 사라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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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의료보험 청구 절차는 번거롭다. 영수증과 진료비 내역서 등 챙겨야 할 서류가 많아서다. 실손보험 청구를 도와주는 각종 서비스가 나왔지만, 일단 서류를 발급받아야 하는 절차는 여전하다. 이 때문에 실손보험 가입자 2명 중 1명은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경험이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관련 공청회가 10일 열렸다. 셔터스톡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관련 공청회가 10일 열렸다. 셔터스톡

이런 불편을 줄이기 위해 금융당국과 보험업계가 추진하는 것이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간소화)다. 환자가 서류를 직접 발급하는 대신, 환자의 요청을 받은 병원이 직접 보험사로 서류를 전산으로 보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개인정보침해 우려와 병원에 과도한 행정적 부담을 준다는 등이 주요 반대 요인이다. 이런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며 청구 전산화는 12년째 답보 상태다.

10일 여야 의원 4명이 합동으로 청구 전산화 관련 공청회를 열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ㆍ전재수 의원과 국민의힘 성일종ㆍ윤창현 의원 등이다. 이날 공청회에서도 양측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실손의료보험 청구 포기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실손의료보험 청구 포기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청구 간소화에 찬성하는 측은 소비자 편익 증대를 내세운다. 나종연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거대 이익집단의 이해관계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환자이자 보험가입자인 소비자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서 성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녹색소비자연대가 지난 4월 실손보험 가입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7.2%가 실손보험을 청구하지 않은 경험이 있었는데, 이유로는 진료금액이 적어서(51%), 서류 발급을 위해 다시 병원을 방문할 시간이 없어서(47%), 증빙서류를 보내는 것이 귀찮아서(24%) 등이 꼽혔다.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경영 관점에서도 청구 간소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윤영미 녹색소비자연대 대표는 "환경보호와 탄소중립의 관점에서도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는 더는 미룰 수 없는 현안이 됐다"고 말했다. 손보업계에서는 지난해 실손보험 청구에 A4용지 4억2500만장이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의료계 등에서는 청구 간소화가 소비자 편익이 아닌 보험사에만 이익이 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김준현 건강정책참여연구소 대표는 "청구 간소화를 통해 보험사는 보험금 청구에 관련된 광범위한 정보와 전산 데이터를 손쉽게 획득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하게 된다"며 "청구 간소화는 보험가입자의 편의성에 목적을 뒀다기보다는 보험업계의 이해관계를 기본으로 했다"고 말했다.

비급여의료 통제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지규열 대한의사협회 보험자문위원은 "정부가 이 제도를 전혀 다른 목적, 즉 비급여 관리 수단으로 활용하려 하기 때문에 의료계가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청구 간소화 관련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 5개가 발의됐다. 민주당에선 고용진ㆍ김병욱ㆍ전재수ㆍ정청래 의원이 국민의힘에서는 윤창현 의원이 법안을 발의했다. 보험업계는 여야 의원들이 모두 법안을 발의한 만큼 이번 국회에서는 법안 통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금융위원회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금융위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를 적극행정 추진 과제로 선정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이날 공청회에서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를 더는 미루는 건 디지털 혁신의 선두에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 서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여야는 국회 정무위 법안 소위에서 해당 법안을 다시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2월 법안 소위 때는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논의가 중단됐다. 정무위 여당 간사인 김병욱 의원은 “법안이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고, 윤창현 의원은 “국회에서 의료계의 우려를 최대한 감안하여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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