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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6000명 감염되는 日…국민 59% "올림픽 취소해야"

중앙일보

입력

개막이 74일 앞으로 다가온 도쿄올림픽을 취소하라는 요구가 일본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프라인·온라인에서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선수들 가운데도 "개최 여부를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올림픽 취소의 날을 뜻하는 'X데이'라는 말이 관계자들 사이에 조용히 퍼지고 있다고 마이니치 신문이 10일 보도했다.

코로나19 악화에 관망에서 반대로 돌아서 #바흐 위원장 방일 취소 "국민 정서 때문" #외신들 "일본 코로나 대응, 아시아 최악"

9일 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이 올림픽 개최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9일 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이 올림픽 개최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9일 올림픽 육상 테스트 대회가 열린 도쿄 국립경기장 주변에선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취소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100여명의 시민이 모여 "올림픽은 필요 없다" "올림픽보단 목숨이 중요하다"는 구호를 외치며 경기장 주변을 행진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온라인 청원사이트(chang.org)에서 진행 중인 '올림픽 중지' 서명 운동에는 10일 오전까지 32만명이 참여했다.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올림픽 대표로 선발된 선수들에게 "불참을 선언해달라"는 요구도 이어진다.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는 9일(현지시간) "올림픽은 내가 평생을 기다려온 대회"라면서도 "사람들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고, 또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면 (올림픽 개최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10일자 요미우리 신문 여론조사에서 올해 도쿄올림픽·패럴림픽 개최에 대해 "중지(취소)해야 한다"는 응답이 59%로 절반을 넘었고, 무관객으로 개최하지는 의견은 23%였다. 개최 도시인 도쿄에서는 응답자의 61%가 올림픽을 취소해야 한다고 답했다.

변이 바이러스 확산...병상 없어 죽는 사람들 

그동안 일본에선 올림픽 개최 반대 의견이 지속적으로 나왔지만, 코로나19 상황을 지켜보자는 '관망파'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변이 바이러스 유행으로 확산세가 잡힐 기미를 보이지 않고, 병상 부족으로 입원도 못 하고 목숨을 잃는 이들이 발생하는 등 '의료 붕괴'가 현실화하면서 여론은 빠르게 돌아서고 있다.

일요일인 9일 일본 전역에서 새롭게 확인된 감염자는 도쿄 1032명을 포함해 총 6488명으로 집계돼 주말임에도 3일 연속 6천명을 넘었다. 도쿄 확진자의 약 70%가 감염력이 높은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였다.

간사이(関西)지방에서는 병상 부족으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사망하는 사례가 이어진다. 효고(兵庫)현 고베(神戶)시의 한 노인요양시설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해 입소자와 직원 133명이 감염돼 25명이 숨졌는데, 사망자의 대부분은 입원할 병상이 없어 산소 호흡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갔다. 직원들은 NHK방송에 "죽도록 그냥 방치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며 분개했다.

취소 못 하는 건 결국 '돈 문제' 

마이니치 신문은 10일 이런 상황에서도 올림픽을 취소하지 못하는 건 올림픽에서 큰 수익을 거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강행 의사를 굽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수익의 약 70%가 방영권료에서 나오는 IOC는 미국 NBC 방송과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32년 여름 올림픽까지 총 120억 3000만 달러(약 13조 4000억원)의 거액 계약을 맺은 상황인데, 도쿄올림픽을 중지할 경우 이 중 상당액을 물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7일 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이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기자회견을 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7일 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이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기자회견을 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일본 정부로서도 올림픽 취소를 결정하면 2013년 이후 올림픽에 투자한 1조 6440억엔(약 16조 8000억원)을 날리게 된다. IOC로부터 거액의 배상 요구를 받을 수도 있다. "도쿄 올림픽을 취소했는데 반년 후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면 일본의 국제적 위상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 거센 반대를 무시하고 정부가 올림픽 개최를 계속 밀어붙일 경우, 더 큰 정치적 역풍에 직면할 수 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 관계자는 17일로 예정됐던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의 방일이 취소된 데 대해서도 "국민 정서에 어긋난다"는 걸 이유로 들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올림픽 관계자들 사이에 올림픽 중단이 선언되는 날을 뜻하는 'X데이'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고 마이니치는 전했다.

"일본 코로나 대응, 아시아 최악"   

결국 이런 상황이 온 건 일본 정부가 백신 조기접종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약속했던 대로 '올림픽 이전 전 국민 백신 접종'이 진행됐다면, 지금 같은 상황은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 방송 CNN은 지난달 올림픽 개최를 100일 앞두고 내놓은 기사에서 이런 일본의 준비 부족을 꼬집었다. "올림픽 선수들이 전원 백신을 맞는다고 하더라도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일본인 자원봉사자들과 접촉할 수밖에 없다"며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직위에 자원봉사자들의 안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물었더니 "작은 소독액 1개와 2개의 마스크를 지급한다"고 답했다는 내용도 전했다.

의학전문지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이 4월 14일호에 게재한 논문은 일본의 코로나19 대응을 "아시아 최악"으로 평가했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일본은 코로나19 봉쇄에 성공하지 못했고, 변이 유행의 조짐이 있었음에도 두 번째 비상사태 선언을 해제해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또 검사 수가 좀처럼 늘지 않고 백신이 보급되지 않는 상황을 "정치적 리더십이 결여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일본의 코로나19 추적·격리 시스템은 신뢰할 수 없으며 따라서 올림픽의 안전한 개최는 어렵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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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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