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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유튜브·카카오·삼성 관두고, 왜 업계 3위 번개장터 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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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지구 반대편 물건도 직구하는 세상에, 왜 중고거래는 동네에서만 찾아?’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의 광고 문구다. 물어봤다. “당근마켓 저격입니까?” 번개장터 마케팅 총괄(최재화)이 말했다. “저흰 진심인데요? 갖고 싶은 물건을 왜 동네에서만 찾아야 하죠?”

팩플레터 98호

당근마켓에 5060세대까지 뛰어들기 전, 모바일 중고거래 시장은 번개장터가 주도했다. ‘취향을 잇는 거래’ 컨셉으로 1020세대를 꽉 잡고 있었다. 하지만 2019년, 번개장터는 ‘폭풍성장’하는 당근마켓에 업계 2위 자리를 내줬다(1위는 중고나라).

그런데 묘하다. 승자독식의 플랫폼 사업에서 ‘3위’인데도 번개장터에는 인재가 모인다. 최근 1~2년새 영입된 C레벨 임원들의 독특한 이력이 대표적이다. 이동주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삼성 빅데이터연구소 연구원, 정용준 최고제품책임자(CPO)는 카카오 부사장(SNS 사업본부장), 최재화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유튜브 한국마케팅 총괄 출신이다. 지난달 6일 서울 서초구 번개장터 본사에서 이들을 만났다.

중고거래 사이트 ‘번개장터’ 최재화 최고마케팅책임자(CMO)와, 이동주 최고기술책임자(CTO), 정용준 최고제품책임자(CPO, 오른쪽부터)가 6일 서울 서초구 번개장터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중고거래 사이트 ‘번개장터’ 최재화 최고마케팅책임자(CMO)와, 이동주 최고기술책임자(CTO), 정용준 최고제품책임자(CPO, 오른쪽부터)가 6일 서울 서초구 번개장터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네・카・삼성보다, 번개장터

남들이 부러워하는 ‘신의 직장’을 그만뒀다. 왜?

최재화 CMO “갈증이 컸다. 구글과 베인앤컴퍼니는 배울 게 많았지만 한국 시장에 대한 제안을 진심으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내가 제일 잘 아는 시장에서, 독특하고 재밌는 한국 소비자들과 호흡하며 일해보고 싶었다. (스타트업에선) 마케터 바로 옆에 기획자와 개발자가 같이 앉아 일한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구글에선 본사 프로덕트팀, 개발팀을 만나려면 줄 서서 기다리다 ‘30분 영접’하는 게 전부였다.”

이동주 CTO “삼성전자에선 내가 직접 제품에 영향을 주기가 어려웠다. 연구소 조직이라 고객을 만나보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스타트업을 차렸다. 그 스타트업(빅데이터 전문기업 ‘부스트’)이 2019년 7월 번개장터에 인수됐다.”

정용준 CPO “아무래도 저는...대기업 부적응자인 것 같다(웃음). 네이버와 카카오에서 각 6년씩, LG와 삼성전자에 1년씩 다녀보고 내린 결론이다. 마지막으로 다녔던 카카오는 카톡 1000만 사용자 달성 즈음(현재 4500만명) 입사했는데 정말 재밌었다. 지금의 (덩치 큰) 카카오가 된 후론 재미가 없어져서 더 큰 기회를 찾아 나왔다.”

번개장터 광고 일부 캡처 및 편집. [사진 번개장터]

번개장터 광고 일부 캡처 및 편집. [사진 번개장터]

그런데 왜 번개장터로?

최재화 CMO “중고거래는 유튜브와 비슷하다. 각자 찾는 것이 다르고, 재고가 1개뿐인 상품을 판다. 할 일도 많아보였다. 이미 브랜딩이 잘 된 회사에서 일해봤으니, 처음부터 브랜드를 만들어보고 싶었달까.”

이동주 CTO “여러 곳에서 인수 제안을 받았는데, 기존 팀 역량이 가장 잘 발휘될 듯한 곳이 번개장터였다. 앱에 개선해야할 게 많은데도 이미 흑자라길래, 성장 가능성이 커 보였다.”

정용준 CPO “중고거래에 대한 호기심 반, 이재후 대표에 대한 호감 반으로 왔다. 이 대표와 첫만남 때 ‘재밌게 본 넷플릭스 작품이 뭐냐’를 놓고 수다만 떨다 왔는데, 가치관이 비슷했다. 몇 번 더 만나보니 좋은 기업문화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고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해 보였다.”

솔직히 말해보자. 돈 때문 아닌지?

최재화 CMO “연봉은 줄었다. 하지만 신나고 즐거운 일인지와 성공했을 때 얻는 금전적 보상(스톡옵션) 등을 장기적으로 고려해서 이직했다.”

이동주 CTO “스타트업 대표 시절과 비슷하게 받는다. 하지만 번개장터와 함께라면 성장 기여도에 따라 (보상의) 천장을 높일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정용준 CPO “번개장터의 보상 수준이 업계 대비 경쟁력 없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청 파격적이지도 않았다. 다른 데서도 받을 수 있는 정도? 보상보다는 성장 가능성을 더 봤다. 카카오를 다녀보니, 지금은 돈을 덜 벌더라도 고(高)성장하는 팀, 성공하는 팀에 있으면 좋은 기회들이 많이 생기더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번개장터 재직자들의 평가 [사진 블라인드 캡처]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번개장터 재직자들의 평가 [사진 블라인드 캡처]

번개장터가 일하는 방식은.

정용준 CPO “안 되면 리더가 책임지고, 잘 되면 실무 덕인 기업문화를 만들려고 한다. 의견 교환은 모든 직원이 볼 수 있는 곳(협업툴 슬랙의 공개 채널)에서 하고, 주요 결정은 실무자가 한다. 그래서 대표가 모르고 결정되는 것도 많다. 그리고 직원을 갈아넣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의 많은 회사들이 ‘임원에게 완벽한 보고’를 하기 위해 직원을 갈군다. 그게 생산적이고 효율적인가? 아니다. 직원들에게 자괴감만 줄 뿐이다. 그런 비효율을 없애려 노력한다.”

중고거래, 지금 왜 이렇게 핫할까.

정용준 CPO “소득이 늘어난다 해도 사는 집의 면적은 그대로거나 줄었다. 새로 사는 물건은 많은데 쌓아둘 공간이 없다. 이케아 이후 가구를 자주 바꾸는 것도 익숙해졌다. 한편으론, 그걸 그냥 버리면 환경에 안 좋다는 것도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되팔아봤더니? 돈도 벌고 즐거운 거다. 전세 옮길 때마다 가구를 바꾸던 지인이, 버리는 대신 팔아봤더니 400만원을 벌었다며 이제껏 이걸 돈 주고(폐기물 스티커) 버린 자기가 바보였다더라. 돈도 많은 분인데, 아무리 부자여도 통장에 돈 들어오면 일단 즐겁나보다(웃음). 이런 경험들이 쌓이고, 주위로 퍼져나간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한다.”

번개장터 사용자 수 추이 [사진 번개장터]

번개장터 사용자 수 추이 [사진 번개장터]

중고거래 플랫폼을 만드는 일, 어디서 재미를 느끼나.

이동주 CTO “개발자에게 이런 플랫폼은 종합선물세트 같다. 기술적 챌린징 거리가 많다. ‘물건 추천’ 기술만 보더라도, 중고거래는 재고가 딱 하나뿐인 이 물건을 ‘사겠다’고 바로 나설만한 소수 사용자에게 추천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사기 여부도 재빨리 구분해야 하고, 채팅에서 욕설이 오가지 않게 필터링도 해야 한다. 온갖 인간군상을 만나고 연구할 수 있는 시장이다.”

정용준 CPO “사용자가 올리는 모든 상품에 사연이 있다는 점, 이게 매력이다. 가령 간단한 거래여도 ‘현대백화점 남성관에서 O월에, △△△하려고 샀었어요’ 같은 사연을 올린다. 물건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상상된다. 상품이 곧 콘텐츠인, 재밌고 중독적인 시장이다.”

중고거래 시장을 전망한다면.

최재화 CMO “앞으로 훨씬 더 커질 시장이다. 지금은 중고거래가 작은 버티컬에 불과하지만, 앞으로의 유통은 ‘신상마켓’과 ‘애프터마켓’으로 구분될 거다. 10년 전 ‘온라인 유통’이 백화점, 수퍼마켓, 홈쇼핑처럼 하나의 카테고리에 불과했지만, 이젠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듯이.”

당근마켓vs번개장터

중고거래 2위였다가 3위로 밀렸는데, 솔직히 불안하지 않은지.

최재화 CMO “다소 억울한 면이 있다(웃음).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면 우리의 미래를 의심했겠지만 성장 지표가 목표치를 상회한다. 근데 당근에 묻혔을 뿐이다(웃음). 번개장터는 2019년에 이미 연간 거래액 1조원을 넘겼고, 전년비 월간 사용자(MAU)는 57% 성장했다(2020년 12월 기준 340만명). 최근엔 취향형 취미・레저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 중고 스마트폰 업체, 스니커즈 커뮤니티(풋셀) 등 4개 기업을 인수했다.”

(*당근마켓의 연간 거래액은 2019년 기준 7000억원. 그 후론 공개하지 않았다. 거래 수수료가 없고, 소셜 서비스를 지향하기 때문에 거래액은 주요 지표가 아니라는 게 당근마켓 입장이다. 대신 이 회사는 사용자당 앱 체류시간(하루 20분, 올 초 기준)과 월 평균 방문횟수(24회)를 중시한다.)

번개장터 거래액 추이 [사진 번개장터]

번개장터 거래액 추이 [사진 번개장터]

당근마켓과 차별화 포인트는.

정용준 CPO “번개장터는 중고거래의 본질은 커머스라고 생각한다. 당근마켓은 중고거래를 시작으로 소셜 커뮤니티가 되려한다. 두 기업의 관점과 지향점이 아예 다르다.”

당근마켓에서 입사 제의가 온다면?

이동주 CTO “둘 중에 어딜 가겠냐고⋯. 사실 우리가 채용할 때 묻는 질문이다. 개발자라면 자신이 어떤 서비스를 만들고 싶은지에 따라 다를 것 같다. 나에겐 번개장터가 더 재밌다. 직거래라는 강한 철학보다, (더 다양한 방식의 중고거래를 허용하는 등) 사용자 입장에서 더 생각하는 서비스가 좋다.”

최재화 CMO “당근에선 내가 재밌게 일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 동네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도 정말 많은데, 나는 사고 싶은 건 어떻게든 구해야 직성이 풀린다. 내향적인 인간이라 직거래도 솔직히 별로다. 그래서 당근마켓의 한계가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번개장터가 확고한 나의 ‘취향’이다.”

정용준 CPO “당근마켓은 훌륭한 팀이다. 경쟁사가 당근인 게 고마울 정도다. 하지만 한국의 개인 간 중고거래 시장은 이제 막 태동했다. 더 커질 수 있다. 이베이(미국), 메루카리(일본), 캐러셀(동남아)에서 보는 ‘진짜 중고거래’ 시장이 열린다면 번개장터에 기회가 있을 거다.”

중고거래 사이트 ‘번개장터’ 이동주 최고기술책임자(CTO)와 최재화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정용준 최고제품책임자(CPO, 오른쪽부터)가 6일 서울 서초구 번개장터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중고거래 사이트 ‘번개장터’ 이동주 최고기술책임자(CTO)와 최재화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정용준 최고제품책임자(CPO, 오른쪽부터)가 6일 서울 서초구 번개장터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진짜 중고거래’란.

정용준 CPO “사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 타협하지 않는 것. (전국 단위로 물량이 모여서) ‘둘째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어쩔 수 없이 사지 않는 것이다. 저렴해서가 아니라 갖고 싶은 물건이 있고, 물건을 사고파는 즐거움이 있어 찾는 곳이 진짜 중고장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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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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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5월 6일 팩플 뉴스레터로 구독자들에게 발송된 ‘구글·카카오·삼전보다 번개장터?’의 요약본입니다. 당근마켓의 급부상에도 ‘우리만의 길’을 개척 중인 라이벌 기업 경영진의 시선을 생생하게 담았습니다. 팩플 뉴스레터 전문을 보고 싶으시면 이메일로 구독 신청하세요. 요즘 핫한 테크기업 소식을 입체적으로 뜯어보는 ‘기사 +α’가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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