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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삼농구’ 김승기, 이보다 더 완벽한 우승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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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안양 KGC가 챔프전에서 4연승으로 KCC를 물리치고 우승했다. 김승기 감독을 헹가래 치는 KGC 선수들. [연합뉴스]

안양 KGC가 챔프전에서 4연승으로 KCC를 물리치고 우승했다. 김승기 감독을 헹가래 치는 KGC 선수들. [연합뉴스]

“(4년 전) 첫 우승 때는 극적이라 눈물이 났는데. (이번에는) 너무 편하게 와서 그런지 눈물도 안 난다. 고비? 10경기 하면서 당황해본 적이 없어서….”

프로농구 KGC, KCC에 4연승 #6강 PO부터 10연승 우승은 처음 #외인 설린저·국내선수 최고 조합 #선수·코치 함께했던 전창진 넘어

프로농구 출범 이래 첫 플레이오프(PO) 10전 전승 우승을 지휘한 김승기(49) 안양 KGC인삼공사 감독 소감은 담담했다. 그만큼 ‘퍼펙트’한 우승이었다.

KGC는 9일 안양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7전 4승제) 4차전에서 전주 KCC를 84-74로 꺾었다. 챔프전 4연승의 KGC는 통산 세 번째 우승(2012, 17, 21년)을 차지했다. 1997년 출범한 25년 역사의 프로농구 플레이오프에서 ‘10전 전승’ 우승은 처음이다.

KGC(정규리그 3위)는 6강 플레이오프(PO)에서 부산 KT에 3연승, 4강 PO에서 울산 현대모비스에 3연승, 챔프전에서 ‘정규리그 1위’ KCC에 4연승 했다. 서울 삼성(2006년)과 현대모비스(2013년)가 PO 전승 우승을 한 적이 있지만, 두 팀은 6강 PO를 하지 않아 기록으로는 7전 전승이었다.

4차전에서 KGC 제러드 설린저(29)가 슛을 쏠 때는 쏘고, 동료 쪽이 비면 패스를 착착 넣었다. 한때 59-39, 20점 차가 났다. KCC 송교창을 막지 못해 70-65로 쫓겼지만, 설린저가 원핸드 덩크슛으로 다시 80-67까지 점수 차를 벌렸다. 설린저가 42점-15리바운드, 오세근이 20점을 기록했다. 설린저는 기자단 전체 투표 86표 중 55표를 받아 PO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김승기 KGC 감독은 2016~17시즌(통합 우승)에 이어 두 번째 우승이다. 베스트 5 멤버를 4년 전과 비교하면, 오세근(34)만 그대로다. 4년 전 우승 직후 이정현이 KCC로 떠나면서 앞선이 약해졌다. 김 감독이 세대교체를 통해 포지션별 톱 클래스를 다시 조직했다. ‘불꽃 슈터’ 전성현(30)이 3점 슛, ‘JD’ 이재도(30)가 리딩, ‘코리안 어빙’ 변준형(25)이 화려한 플레이, ‘수비 스페셜리스트’ 문성곤(28)이 공격 리바운드를 각각 맡았다.

김 감독은 “목표를 정하고, 혹독하게 다그쳐 잘못된 버릇을 고치려 했다. 선수들이 힘들었을 거다. 4명의 젊은 선수는 최고 선수가 됐다. 여기에 (오)세근이까지, PO에 대비해 (정규리그에서) 힘을 다 쏟지 않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부상으로 고생했던 오세근은 건강을 되찾은 뒤 팀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플레이오프에서 활약해 MVP를 차지한 KGC 설린저. [뉴시스]

플레이오프에서 활약해 MVP를 차지한 KGC 설린저. [뉴시스]

김 감독은 3월에 외국인 선수를 설린저로 교체했다. 이게 ‘신의 한 수’였다. 설린저는 미국 프로농구(NBA) 보스턴 셀틱스 출신이다. 2019년 허리 수술 이후 2년간 재활에 매달렸다. 다른 팀 감독은 설린저의 몸 상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김 감독이 과감하게 영입했다. 설린저는 차원이 다른 활약을 펼쳤다. 마치 상대에게 농구 강의하는 것 같다고 해서 ‘설 교수’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설린저와 함께하면서 KGC인삼공사 선수들은 ‘산삼’이라도 먹은 듯 힘을 냈다. 챔프전 3차전까지 국내 선수 득점 비율이 81%가 넘었는데, 챔프전 평균 득점이 설린저 23.3점, 오세근 20점, 이재도 14.5점, 전성현 12.5점 등, 네 명이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뺏고 또 뺏는’ 김 감독의 스틸 농구는 계속됐다. 정규리그 스틸 1위(9개) KGC는 챔프전 4차전에만 스틸 12개를 기록했다. 재미없는 ‘수비 농구’가 아니라 가로채기에 이어지는 ‘화려한 농구’다. 정규리그 최소 실점(77.4점)의 KCC를 상대로 KGC는 3차전에서 109점을 몰아쳤다. ‘터보 가드’로 불렸던 김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스틸을 연구했다. 팀 훈련 때 수비 연습을 상황별, 지역별로 세분화했다. 김 감독은 “(KGC는) 감독이 박수 쳐주고, 타임 부르고, 칭찬해주면 다 되는 팀이 됐다. 정규리그를 다시 하면 54경기 중 44~45승은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원주 TG삼보 시절 김승기(왼쪽). [중앙포토]

원주 TG삼보 시절 김승기(왼쪽). [중앙포토]

중앙대와 상무에서 전성기를 보낸 김 감독은 1997년 아시아농구선수권 우승 때 무릎을 다쳤다. 그때 겪은 좌절과 9년 넘는 코치생활을 통해 선수 마음을 잘 안다. 이재도는 2019년 상무 시절 휴가를 나와서 술에 취해 김 감독에게 “형님, 우승하고 싶다”고 했다.

김 감독은 이번 챔프전을 앞두고 “내게는 ‘그분’ 피가 흐른다. 그분과 승부에서 이기고 싶다”고 말했다. ‘그분’이 전창진(58) KCC 감독이다. 김 감독은 선수 시절 원주 동부에서 두 시즌 전 감독한테 배웠다. 또 동부-KT-KGC 코치를 거치며 9시즌 넘게 전 감독을 보좌했다. 김 감독이 ‘청출어람’을 이뤄냈다. 김 감독은 또 4강 PO에서 ‘만수’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을 넘어섰다. 김 감독은 PO 승률 70.6%(24승 10패)로 감독 중 역대 1위다.

‘설 교수’ 설린저는 우승 직후 “강의는 다 마쳤다”며 웃었다. 김 감독은 “설린저가 ‘영구결번해달라. 내년에 다른 번호로 오겠다’고 농담했다. 한국에서 재기한 만큼 빅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온다면 내가 있는 팀으로 온다고 했다”며 웃었다.

안양=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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