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서 '물고뜯던' 그들 모였다, 이남자·이여자 진짜 속내

중앙일보

입력 2021.05.09 09:00

업데이트 2021.05.09 09:05

지난 4일 중앙일보에 20대 청년 4명이 모여 최근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석예슬 인턴

지난 4일 중앙일보에 20대 청년 4명이 모여 최근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석예슬 인턴

"일상적인 젠더 갈등은 대화로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학생 이모씨. 무소속 신지예 후보 지지)

"만나서 담소나누면 해결된다는 생각은 좀 '나이브'(순진)한 것 같아요. 그게 지금까지 안 먹혔으니 지금 이 상황까지 온 거겠죠." (직장인 류모씨,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 지지)

서로 마주 앉은 20대 청년 4명. 지난달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야기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차분했던 목소리가 다소 높아집니다. 대화 주제가 '젠더 갈등'으로 넘어가면서부터입니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성별 혐오 논란이 연일 불거지는 시기인 만큼 이들은 조심스럽게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지난 3월 25일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응암역 앞 도로에서 유세차량에 올라 연설하고 있다. 오른쪽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관악구청 앞에서 열린 '박영선의 힐링캠프' 유세에 참여한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박영선 캠프

지난 3월 25일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응암역 앞 도로에서 유세차량에 올라 연설하고 있다. 오른쪽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관악구청 앞에서 열린 '박영선의 힐링캠프' 유세에 참여한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박영선 캠프

4·7 재보궐선거가 끝나고 한 달여가 흘렀지만, 20대 청년들에게 쏠린 관심은 여전합니다. 아직도 수많은 기사 제목에 '이남자(20대 남성)', '이여자(20대 여성)'가 소환되고 있죠. 정치권에서도 여성할당제 비판(국민의힘 이준석 전 최고위원), 군 가산점제 재도입 논의(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 등 이남자를 의식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밀실]<제68화>
이슈 중심된 20대 생각은

밀실팀은 화제의 중심에 선 이남자·이여자를 한 자리에 모았습니다. 지난 선거 결과, 성 평등 이슈 등에 대한 그들의 속마음을 듣기 위해서였죠. 이들은 지금의 '20대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4·7 재보궐 선거일인 지난달 7일 오후 청년유권자들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자치회관에 마련된 투표소로 향하고 있다. 뉴스1

4·7 재보궐 선거일인 지난달 7일 오후 청년유권자들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자치회관에 마련된 투표소로 향하고 있다. 뉴스1

민주당이 선거에서 패배한 원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김모(남·28)씨(오세훈 지지): 한마디로 정리하면 거짓말이죠. 그동안 민주당의 행보를 보면 그들이 내걸었던 '공정' 같은 키워드가 지켜지지 않았잖아요. 부동산 정책도 실패했으니 결과적으로는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거죠.
이모(여·21)씨(신지예 지지): 잘못에 대한 사과 없이 변명만 일삼은 것 때문에 마음이 돌아섰죠. 민주당이 그간 여성의 안전 문제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자신을 페미니즘 정당이라고 소개해왔는데 정작 내부에서 성추행이 발생하니까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줬잖아요.
류모(남·28)씨(박영선 지지): 일단 어느 정도 잘못한 부분이 있다는 건 인정해요. 저는 민주당이 사과를 해야 할 때 사과하지 않고 뒤늦게 대처한 게 문제였다고 생각해요. 윗세대랑 저희 세대의 도덕적 기준이 다른 것도 사실이고요.
김씨: 저는 민주당이 사과했다 한들 박영선 후보를 찍진 않았을 것 같아요. 박원순 전 시장 사건뿐 아니라 조국 사태나 윤미향 사건, LH 사태가 겹겹이 쌓이면서 신뢰를 잃어버렸어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8개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위력에 위한 성폭력 사건의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촉구 거리 행진을 벌인 뒤 서울 저동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8개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위력에 위한 성폭력 사건의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촉구 거리 행진을 벌인 뒤 서울 저동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선거 이후 불거진 20대의 젠더 갈등에 이들은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성별 혐오는 극단적인 사례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도리어 청년들을 반으로 나누고 '혐오 팔이'를 하는 정치인 등 기성세대를 향해 날을 세웠습니다.

"선거가 끝나고 '이대남', '이대녀' 같은 단어가 등장한 걸 보고 화가 많이 났어요. 20대는 우리 사회에서 '을'일 수밖에 없잖아요. 정치인들이나 언론이 계속 을과 을의 싸움을 부추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씨)

페미니즘에 대한 '이남자'의 반감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지모(여·22)씨(오세훈 지지): 제 친구 중에 여대에 다니는 친구가 있는데 여대에 씌워진 안 좋은 프레임 때문에 반수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졸업하고 나서 사람들이 자기를 꺼리고 피하는 분위기가 조성될까 봐 무서워하고 있고요.
이씨: 20대 여성들이 예전 여성들보다 더 심한 성차별을 겪은 건 아니긴 해요. 하지만 그간 당연하게 여겨왔던 일상 속의 차별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예를 들어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남성들은 과장됐다고 하지만 여성들은 공감한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잖아요. 살아온 세계가 다르니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책 '82년생 김지영'. 민음사

책 '82년생 김지영'. 민음사

최근 여성할당제가 논란이 되기도 했어요.
류씨: 제가 대학생 때 여성가족부에서 여대생을 대상으로 국제기구에 보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나도 절실한데 왜 못 가지?' 이런 생각이 들었죠. 물론 윗세대 여성들이 일터에서 차별을 겪었던 건 사실이고, 지금 여성들도 일상에서 범죄를 겪는 등 안전이 취약한 건 맞아요. 하지만 일상 속의 위협을 사회적 진출 기회로 보상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어요.
김씨: 제가 느끼기에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뭘 하나 더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해요. 20대 남자들이 충분히 박탈감을 느낄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청년들 모두가 힘든 상황이니 보상도 비슷하게 해주는 게 맞지 않을까요.
이씨: 청년들이 노력한다고 다 이룰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보니까 '내가 더 힘들다'는 식으로 갈등이 흘러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최근 코로나19 유행 이후에 20대 여성 자살률이 급증했다는 통계가 나왔어요. 여성이 취업하더라도 결혼이나 육아 때문에 직장에서 도태될 거라는 불안감이 높아졌다고 하더라고요. 먼저 일터에서 성공한 모델이 부족하니까 일어나는 일이죠. 그래서 여성할당제는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2019년 상반기와 2020년 상반기 여성의 자살률을 비교한 표. 장유진 인턴

2019년 상반기와 2020년 상반기 여성의 자살률을 비교한 표. 장유진 인턴

밀실팀이 만난 이들은 최근 논란이 된 군 가산점제 재도입엔 반대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기업의 효율성을 해칠 수 있다"(김씨)거나 "돈으로 보상해주는 게 현실적"(류씨)이라는 이유에서였죠. 첨예하게 입장이 갈릴 거라고 생각했던 이슈도 대화를 통해 의견 차이를 좁히는 모습이었습니다.

20대 청년 4명은 이날 처음 만났습니다. 초반에는 어색한 표정으로 앞만 쳐다보던 이들이 점차 서로의 눈을 마주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가 무르익을수록 서로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죠.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서로를 향한 격려도 잊지 않았습니다.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이 커질수록 20·30대 또래끼리 동질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일종의 의리라고 해야 할까요.(웃음) 다 같이 파이팅했으면 좋겠어요." (김씨)

박건·백희연 기자 park.kun@joongang.co.kr
영상=석예슬·장유진 인턴, 백경민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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