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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이 그곳에 있는 이유를 알면 역사가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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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 40여 기의 조성 비화를 담은 책이 한 전직 행정관료에 의해 출간됐다. 경기도 문화복지국장을 거쳐 파주시 부시장으로 정년퇴직한 황용선(73)씨다.

경기 구리시 동구릉, 경기 고양시 서오릉, 경기 남양주시 광릉, 서울시 태릉…. 수도권을 중심으로 강원지역 1기를 포함해 조선왕릉 40기가 분포해 있다. 태조 이래 왕위를 공식적으로 이어받은 27명의 왕과 왕후 및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사망했어도 사후 추존된 왕과 왕비의 무덤 등이다.

‘왕릉 왜 그곳인가?’ 책 펴낸 황용선 전 파주시 부시장  

조선 시대는 1392년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한양에 도읍해 조선(朝鮮)이라는 나라를 세운 때부터 1910년 일본에 의해 국권을 강탈당한 때까지 기간이다. 조선 왕조는 사라졌지만, 왕릉은 대부분 훼손 없이 남았다. 500년 이상 이어진 왕조의 왕릉이 보존된 사례는 세계적으로 조선왕릉이 유일하다.

‘왕릉 왜 그곳인가?’ 책 표지. 전익진 기자

‘왕릉 왜 그곳인가?’ 책 표지. 전익진 기자

조선왕릉 40기는 지난 2009년 중요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일괄적으로 등재됐다. 앞서 문화재청은 42기의 조선왕릉 중 북한 개성에 있는 제릉과 후릉을 제외한 40기를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했고, 1년 만에 유네스코의 심사를 통과했다.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왕릉 40기 전체를 실사한 후 ‘유교 사상과 토착 신앙 등 한국인의 세계관이 반영된 장묘문화 공간’ 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야 할 가치로 보고했다. 자연경관을 적절하게 융합한 공간 배치와 빼어난 석물 등 조형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고, 제례 의식 등 무형 유산을 통해 역사의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는 점도 가치로 평가했다. 왕릉 조성이나 관리, 의례 방법 등을 담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의궤(儀軌) 등 고문서가 풍부하고, 전체가 통합적으로 보존 관리되고 있다는 점도 높이 평가했다.

‘왕릉 왜 그곳인가?’ 책을 펴낸 황용선 전 파주시 부시장. 전익진 기자

‘왕릉 왜 그곳인가?’ 책을 펴낸 황용선 전 파주시 부시장. 전익진 기자

부인과 12년간 조선왕릉 40기 찾아다녀  

이즈음인 2008년 말 36년간의 공직 생활을 정년으로 퇴임한 황용선씨는 이런 조선왕릉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는 “평소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았는데, 퇴직 후 농사를 지으며 시간 여유도 생겨 조선왕릉이 과연 명당자리에 조성된 것인지 알아보고 싶었다”고 했다. 또 “왕릉의 자리가 어떻게 결정된 것인지, 옮겨진 경우 연유는 무엇인지를 집중적으로 캐보고 싶었다”고 했다.

연산군·광해군 묘까지 답사

그는 그래서 2009년부터 부인 한상화(69)씨와 조선왕릉 40기를 직접 찾아가 둘러보고, 연구를 시작했다. 조선왕릉 40기는 물론 연산군·광해군 묘까지 답사했다. 북한에 있어 답사는 못 했지만, 자료를 근거로 정종의 후릉까지 연구했다. 많게는 7차례까지 방문했고, 대개 2∼3차례 답사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왕릉을 연구하는 동호인 및 학자들과 교류하고, 관련 자료와 서적을 탐독하며 연구했다.

고향이 파주인 황씨는 “향교(鄕校)의 책임자인 전교(典校)를 역임한 할아버지께 명심보감(明心寶鑑) 등 한학을 어릴 적 배웠던 게 이번 연구의 학문적 자산이 됐다”며 “젊은 시절부터 틈틈이 공부하고 관심을 가져온 풍수지리 공부를 겸해 시작했다”고 했다.

지난 2017년 4월 5일 태조 이성계의 왕릉인 건원릉에서 인부들이 봉분을 덮은 억새풀을 벌초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17년 4월 5일 태조 이성계의 왕릉인 건원릉에서 인부들이 봉분을 덮은 억새풀을 벌초하고 있다. 중앙포토

임진왜란 변고 겪은 왕릉의 아픈 이야기도 실어

그는 연구 과정에서 왕릉의 자리가 어떻게 정해졌으며, 그곳에 위치하기까지의 과정은 어떠했는지를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황씨는 이후 탐사와 연구에 나선 지 12년 만에 연구 결과와 모아온 자료를 정리해 이번에 한 권의 책을 펴냈다. 『왕릉 왜 그곳인가?』(청어람 출판)란 제목의 책이다. 황씨는 왕릉이 그곳에 있기까지의 사연을 사료 등에 근거에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부록으로 임진왜란에 변고를 겪은 왕릉의 아픈 이야기도 실었다.

황씨는 “조선 왕조의 왕릉 위치를 알아보니, 왕실과 국가의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로 능지가 결정된 것만이 아니고 왕권이 약화해 신하들의 목소리가 컸던 시기에는 능지의 위치를 정할 때 신하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점을 엿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왕릉이 그곳에 있는 이유를 알면 역사가 보인다”며 “왕릉의 위치가 정해진 과정과 옮겨진 연유를 추적해 보면 당시의 정치 상황과 시대상이 그대로 담겨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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