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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대 曰]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35호 30면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배우 이병헌이 나오는 영화 ‘달콤한 인생’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영화 이후 많은 개그와 광고에서 익살스럽게 활용되어 더욱 유명해진 대사다. 요즘 돌아가는 세태와도 맞물려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달콤함-씁쓸함의 경계에 선 권력 #모욕감은 우월감의 또 다른 표현

영화는 달콤함과 씁쓸함의 이중주로 전개된다. 인생의 달콤함을 한순간에 씁쓸함으로 뒤바꿔 놓는 요소가 모욕감이다. 영화에서 보스로 나오는 김영철이 부하 이병헌과 생사를 건 싸움을 하게 된 이유가 모욕감이었다. 처음 영화를 볼 땐 잘 이해가 안 됐다. 김영철이 집요하게 이병헌을 공격하는 이유가 아리송했다. 조폭을 동원해 죽이려고 하면서 사과를 요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러다가 김영철의 이 대사를 듣고 나서야 ‘아 겨우 그거였어’라고 끄덕이게 되는데,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그 점이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인 것 같다.

모욕감은 인생의 명과 암을 좌우하는 중요한 감정일 수 있지만, 생각을 좀 달리해 보면 오해에서 비롯된 하찮은 감정일 수도 있지 않은가? 중요함과 하찮음의 묘한 대비가 김영철의 중후한 바리톤에 얹혀 영화의 안팎을 맴돈다.

영화 밖에서 벌어지는 잘 믿기지 않는 모욕감 이야기가 있다. 문 대통령을 비판한 30대 청년이 ‘모욕죄’로 기소될 상황에 부닥쳤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땐 내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저열한 표현을 썼다고 해도, 설마 그럴 리가? 며칠 후 기소 취하 소식을 접하며, 2019년 7월에 실제 그런 일이 있었음을 알게 됐다.

‘민주’라는 문패를 단 정권에서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을까?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다른 말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참 희한한 일이 계속 벌어진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권력은 국민과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 국민은 때로 권력을 찬양하기도 하고, 때론 그 권력을 무서워한다. 그런 시절엔 권력을 한번 누려볼 만할 것이다. 달콤한 권력만 있는 게 아니다. 때로 국민은 권력을 조롱하기도 한다. 권력의 씁쓸한 측면이다. 비웃음을 받으면 권력의 종점이 가까워 왔음을 알아차려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것 같지 않다. 비극이 계속되는 이유일 것이다. 비극은 달콤함과 씁쓸함의 경계에서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진행되는 듯하다. 국민의 조롱을 받을 때 모욕감을 느꼈다면 고소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권력의 처신을 되돌아봐야 했다.

영화 속에서 모욕감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으며 참담한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 현실의 권력은 다행히 고소 취하로 파국은 면했다. 하지만 상처의 골이 깊어 보인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지금까지 보여준 것과 다른 모습을 보여야 지난 4년 동안 상처받은 국민의 마음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달래질 수 있을 것 같다.

모욕감은 최고 권력의 세계에서만 벌어지는 사건은 아닐 것이다. 우리 일상에서도 언제 어디서나 부딪칠 수 있는 게 모욕감의 문제다. 칭찬을 들으면 좋아하고 욕을 먹으면 기분 나빠하는 게 인간의 모습이다. 언제 모욕감을 느낄까? 나의 우월한 면모가 손상되었다고 느낄 때 아닌가? 그런 모욕감은 우월감의 또 다른 표현일 수도 있겠다.

영화의 첫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화면을 가득 채운 가운데 이병헌의 내레이션이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어떤 제자와 스승의 흔들림에 대한 문답을 들려준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고 한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자신을 한없이 높은 사람으로 여기면 작은 비난도 참기 힘들 것 같다. 자신을 낮추면 어지간한 소리에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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