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에디터 프리즘] 오너 ‘눈물의 사퇴’에도 싸늘한 여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35호 31면

남승률 이코노미스트 뉴스룸 본부장

남승률 이코노미스트 뉴스룸 본부장

주가만 반짝 반등? 남양유업 홍원식 회장의 ‘눈물의 사퇴’에도 여론은 싸늘한 편이다. 오히려 지배구조 혁신과 대리점주·낙농가 손실 보상 방안 등의 알맹이는 빼놓았다는 비판이 거세다.

남양유업, 지배구조 혁신 등 빠뜨려 #대중 눈높이 맞는 공감능력 키워야

홍 회장은 4일 서울 논현동 남양유업 본사에서 약 5분간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2013년 회사의 밀어내기 사건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외조카 황하나 사건, 지난해 발생한 온라인 댓글 등 논란이 생겼을 때 회장으로서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서 사과드리고 필요한 조처를 했어야 했는데 많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자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며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울먹이며 밝힌 그의 회장직 사퇴 소식에 남양유업 주가는 이날에 이어 5일에도 큰 폭 올랐다. 이른바 ‘총수 리스크’가 사라진 점을 증시에서 호재로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홍 회장은 2013년 남양유업 대리점 갑질 사태 사과 때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외손녀인 황하나 씨가 마약 투약으로 물의를 일으켰을 때도 사과문으로 대신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불가리스의 코로나19 억제 효과 발표 논란에 따른 불매운동,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고발과 경찰의 압수수색, 세종공장 영업정지, 장남의 회삿돈 유용 의혹 등의 위기가 겹치자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문제는 그게 다였다는 점이다. 대중이 공감할 만한 쇄신 조치와 낙농가·대리점주 손실 보상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남양유업의 지배구조는 폐쇄적 가족경영의 결정판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남양유업의 최대주주는 지분 51.68%를 보유한 홍 회장이다. 그의 부인과 동생 등 지분까지 더하면 53.08%에 이른다. 그가 회장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지분을 팔거나 그럴 계획을 밝히지는 않은 만큼 회사에 영향력을 계속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더구나 사내이사 4명과 사외이사 2명으로 구성된 남양유업 이사회도 그의 사람 일색이다. 사내이사 4명 가운데 3명은 홍 회장, 홍 회장의 모친, 홍 회장의 아들이다. 나머지 1명도 홍 회장의 최측근인 이광범 대표다. 홍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는 등기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미 사의를 밝힌 이 대표도 이사회에서 차기 대표가 선임될 때까지 대표직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남양유업이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려면 이런 폐쇄적 지배구조부터 확 바꿔 경영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또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공감능력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기업 위기관리 컨설팅 전문가는 “홍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말한 ‘제가 회사의 성장만을 바라보면서 달려오다 보니 구시대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라는 표현은 사과문에 적합하지 않은 자기변명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대중이 어느 지점에서 분노하는지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공감하는가』의 저자인 크리스티안 케이서스는 “우리의 뇌는 공감하도록, 타인과 연결되도록 설계되었으며, 우리는 다른 사람이 먹고 놀라고 아파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남양유업 오너가의 일탈, 폐쇄적 지배구조, 갑질 문화, 경쟁사 비방 등을 보고 대중은 반사적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고대 전설에 따르면 나일강에 사는 악어는 사람을 잡아먹은 후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여러 작품에서 이를 인용했다. 그러면서 악어의 눈물은 위선자의 거짓 눈물 등을 뜻하는 말로 굳어졌다. 홍 회장의 ‘눈물의 사퇴’가 악어의 눈물로 그치지 않길 바란다.

남승률 이코노미스트 뉴스룸 본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