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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반도체 위상·초격차 모두 흔들리고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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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5호 30면

미국내 반도체 생산이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은 대만 TSMC를 불러들여 미국에서 반도체 생산을 늘리고 있다. TSMC는 파운드리 공장을 3년 내 6개로 확대하기로 했다. [중앙일보 그래픽]

미국내 반도체 생산이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은 대만 TSMC를 불러들여 미국에서 반도체 생산을 늘리고 있다. TSMC는 파운드리 공장을 3년 내 6개로 확대하기로 했다. [중앙일보 그래픽]

미·중의 기술패권 경쟁이 반도체 공급망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면서 삼성전자가 사면초가로 빠져들고 있다. 무엇보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세계 1위를 굳힌 대만 TSMC의 질주가 위협적이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가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지만, 4차 산업혁명으로 수요가 폭발 중인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TSMC의 위력에 눌려 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와 비메모리 반도체의 비중은 3대 7 수준이다. 비메모리 시장이 압도적으로 크다.

삼성전자 더 이상 1등 자리 장담 못해 #대만 TSMC 미국에 파운드리 6개 건설 #비상한 각오로 대응해야 이 위기 막아

비메모리 반도체는 인공지능(AI)·자율주행차·5세대(5G) 이동통신을 비롯해 거의 모든 첨단 산업에서 없어선 안 될 필수품이다. 첨단 장치의 성능이 고도화하면서 컴퓨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중앙처리장치(CPU)부터 비메모리 반도체는 그 종류만 해도 수만 개에 이른다. TSMC는 생산력과 기술력 모두 압도적이다. 세계 시장 점유율이 2019년 1분기 48.1%에서 올해 1분기에는 56%로 늘어났다. 삼성전자는 같은 기간 19.1%에서 18%로 되레 줄어들었다.

기술력에서도 대만이 앞서간다.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10나노미터(㎚) 이하 첨단 시스템 반도체의 92%가 대만에서 생산된다. 미·중 기술 전쟁에서 대만은 미국·일본과 밀착해 3각 연합 구도를 형성하고 있어 삼성전자가 치고 나갈 공간도 넓지 않다. 더구나 TSMC는 갈수록 공격적이다. 미국 애리조나의 파운드리 공장을 3년 내 5개 추가하면서 모두 6개로 늘리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퀄컴·AMD·엔비디아처럼 설계만 하고 생산은 파운드리에 맡기는 미 팹리스 업체들의 TSMC 의존도가 더 높아져 삼성전자의 입지는 더 좁아질 수 있다.

TSMC는 일본에도 연구개발센터를 설치한다. 이로써 미·일의 반도체 첨단기술과 인력을 흡수하며 기술력과 시장 장악력을 높여나가고 있다. 이에 비해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에서의 영업이익이 TSMC의 절반에 그쳤다. 좋지 않은 조짐이다. 이렇게 되면 2020년을 기점으로 133조원을 투자해 파운드리에서도 세계 1위가 되겠다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비전 2030’ 실현도 낙관하기 어려워진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도 인텔·마이크론 등 미 업체들의 추격이 거세지면서 올해 1분기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줄어들었다.

파이낸셜타임스의 IT·테크 칼럼니스트 존 손힐은 “이제 반도체는 주권국가라면 백신과 함께 반드시 확보해야 할 핵심 자산이 됐다”며 “지정학적 우위가 반도체 칩에 좌우되는 시대가 됐다”고 분석했다. 대만은 이 같은 분석의 생생한 사례가 되고 있다. “대만이 멈추면 세계 공급사슬이 붕괴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반도체 공급망을 장악하면서다.  이는 국민적 협력과 전폭적 정부 지원의 결과다. 대만은 지금 반세기만의 가뭄을 겪고 있다. 대만 정부는 농업인을 설득해 논에 물을 끊고 반도체 공장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 국익을 위해 사활을 걸고 반도체를 지킨다. 반도체가 곧 경제 및 안보의 안전판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와는 180도 사정이 다르다. 경영에 전념해도 앞날을 보장하기 어려운 마당에 삼성전자 경영진은 국정농단에 휘말려 4년 넘게 수사를 받고 있다. 정부의 지원도 난망하다. 평택 공장의 송전탑 건설 민원은 5년을 허비한 끝에 결국 4000억원의 송전선로 건설비를 내놓고서야 해결하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이 뒤늦게 반도체특별위원회를 꾸리고 나섰지만 무슨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반도체는 원래 기업이 해왔지 정부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 발목이나 잡지 말고 투자에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최선의 지원이다. 여기서 더 흔들리면 초격차는커녕 2류로 낙오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는 비상한 각오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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