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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수가 뭐예요” 다문화 학생, 말 안 통해 수업 스트레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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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5호 08면

[SPECIAL REPORT] 외국인 230만 시대

전라남도국제교육원이 운영하는 국제문화체험센터는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현장 실습형 다문화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달 16일 견학 방문한 순천시 창천초의 한 학생이 국가별 나라꽃과 수도 맞추기 퍼즐을 즐기고 있다. 김나윤 기자

전라남도국제교육원이 운영하는 국제문화체험센터는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현장 실습형 다문화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달 16일 견학 방문한 순천시 창천초의 한 학생이 국가별 나라꽃과 수도 맞추기 퍼즐을 즐기고 있다. 김나윤 기자

“우. 유. 이거는 야. 자. 수. 그런데 선생님 야자수가 뭐예요?”

서울충무초 다문화 교육 현장 #전교생 4명 중 1명 피부색 달라 #한글 특별학급 열어도 적응 못해 #다문화 영유아 교육 걸음마 수준 #“더불어 살려면 공감대 형성 중요”

서울충무초 싸샤(가명·3학년)가 입으로 따라 읽으며 쓰던 글씨를 멈추고 선생님께 묻는다. 교실에서 나란히 앉아 같이 한국어 수업을 듣던 알비나(가명·3학년)는 “이거 봐. 나무잖아 나무~”라고 하며 책에 있는 그림을 싸샤에게 보여준다. 싸샤와 알비나는 각각 2년 전 러시아인인 부모님과 함께 한국에 오면서 1학년 동급생으로 이 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한국어를 못해 수업을 따라가는데 어려움을 겪자 학교는 싸샤와 알비나에게 주 10시간씩 한국어 수업을 별도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체육, 음악, 미술 같은 수업은 기존 교실 친구들과 함께 배우고 국어, 수학처럼 언어 소통이 어려운 교과목 시간에는 한국어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다.

현재 서울충무초에는 싸샤, 알비나처럼 한국어 특별학급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17명이다. 이 학급을 담당하는 교사는 담임교사와 한국어강사, 다문화언어강사 2명 등 3명이나 된다.

김연구 다문화특별학급 담임교사는 “학내 러시아계 중심으로 외국인 또는 다문화 가정 학생이 매년 눈에 띄게 늘고 있다”라며 “이 추세에 맞춰 우리도 이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워보자는 취지에서 이중언어 수업을 정규 교과목으로 개설해 전교생이 주 1시간씩 러시아어를 배우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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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가정 학생 수가 늘면서 이들에 대한 교육 정책도 관심거리다. 교육부의 ‘2020 교육 기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초·중·고 다문화 학생 수는 14만7378명이다. 전년 대비 1만 명 가까이 늘었다. 국내 외국인주민 자녀 25만1966명(행정안전부 발표) 중 약 59%가 일선 학교로 유입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달 27일 중앙SUNDAY가 방문한 서울충무초 역시 전교생 200명 중 53명이 다문화 학생이다. 학생 4명 중 1명이 인종, 국가, 피부색이 다른 셈이다.

2000년대 한국 내 다문화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대다수의 다문화 학생은 대안학교를 통해 교육받았다. 언어소통이 안 되는 상황에서 일반 학교 정규 수업에 적응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인가한 학력 인정 대안학교는 서울 지구촌 학교 등 전국에 5곳. 그 외 대안학교는 각 지자체가 위탁해 운영하고 있거나 각종 단체 등이 사단법인으로 운영하는 미인가 대안학교다.

2010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일반 학교 진학 문턱이 다문화 학생에게 크게 낮아졌다. 한국사회가 다문화 학생에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성장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2012년 교육부가 일반 학교에 다문화 특별학급을 개설하는 방식의 예비학교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교육 전문가들은 학교 교육만으로 다문화 학생의 한국생활을 뒷받침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한다. 특히 중도 입국 학생일 경우에는 더 적응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국제결혼 자녀와 달리 중도입국 자녀는 청소년기에 급변한 생활환경을 겪으면서 언어소통뿐만 아니라 정서적 고립감도 크기 때문이다. 김연구 서울충무초 교사는 “다문화 학생이 좋은 취지로 학교를 진학했지만 정작 집에서보다도 더 말이 안 통해 친구와 선생님에게 마음의 문을 닫는 아이들이 종종 있다”라며 “그럴 경우 학교생활이 되려 정신적 스트레스가 될 때도 있다”고 했다.

여성가족부의 2018년 전국다문화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다문화 학생 응답자의 4명 중 1명은 학업을 중단하는 이유로 친구나 선생님과의 관계 때문에(23.4%)를 꼽았다. 이러한 응답 경향은 2015년 실태조사 때(1.3%)보다 압도적으로 증가한 수치다.

양계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제적인 상황, 때때로 느끼는 차별 시선, 비자 문제 등 다문화 학생이 학업을 중단하는 이유는 굉장히 다양하고 구조적이다”라며 “어른들이 다문화 학생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접근했다가는 자칫 아이의 고충을 가중할 수 있다”고 했다.

다문화 영유아에 대한 교육은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정부가 교육비를 전액 보조하지 않다 보니 고스란히 부모의 몫이 된다. 돈을 벌어 코리안 드림을 이루려 입국했지만 아이의 유치원 교육이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다문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이 어린 시절부터 유치원에서 함께 어울리며 성장해야 정서적 거리감을 최대한 좁힐 수 있다”라며 “하지만 교육비 부담이나 부모의 정서 등을 이유로 아이의 유치원 교육이 초·중·고에 비해 활성화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교육 지원책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했다. 구경석 전라남도국제교육원 다문화교육부장은 “우리나라는 큰 틀에서 외국인을 위한 교육이나 지원책이 우리 문화에 동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다”며 “더불어 살기 위해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심나리 국제이주기구 한국대표부 정책공보관은 “한국이 차별 국가라고 느끼는 외국인의 마지막 선택은 결국 이곳을 떠나는 것인데 이는 인구절벽 시대에 좋은 결과가 아니다”라며 “이주민 관리책으로 단순히 등록과 미등록만으로 구분하고 다문화냐 아니냐는 식으로 낙인찍는 행위는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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