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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특허 풀어도 '산 넘어 산'···韓 카피백신 접종까지 최소 1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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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5일(현지 시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지적재산권 면제를 지지하면서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지혜로운 리더십을 보여줬다"며 즉각 환영 성명을 내놨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6일 브리핑에서 "세계 백신이 부족한상황에서 지재권 문제는 검토해볼 만한 중요한 사안"이라며 "기술 공개 범위 등이 중요 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재권이 면제되면 수개월 내 국내에서 생산해 쓰거나 아시아·아프리카에 보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국내 기업이 생산에 이어 국제 검증을 거쳐 접종까지 가는 데 최소 1년 넘게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독일 비엘펠트의 한 접종 센터에서 의료진이 모더나 백신을 주사기로 추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독일 비엘펠트의 한 접종 센터에서 의료진이 모더나 백신을 주사기로 추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이 특허권 면제를 추진하는 백신은 mRNA 방식의 화이자·모더나 제품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 백신 전문가는 "두 백신은 세계의 백신 기근을 해결하려면 다른 제품에 비해 생산기간이 짧고 상대적으로 덜 어려워야 하는데, 두 백신이 적합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제약업계는 "넘어야 할 산이 한 두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지재권은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으로 보호한다. 이걸 풀어야 생산량을 대폭 늘려 백신 빈국에 보낼 수 있다.

미국 입장 변화 후 어떻게 되나

첫번째 장벽은 지재권 공개 범위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생산 특허를 풀지, 각종 세부 공정과 관련한 영업비밀까지 풀지 두고봐야 한다"며 "복제 생산한 백신에 화이자나 모더나 상표를 붙일 수 있게 상표권을 면제할지도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재권을 풀더라도 드래프트(세부 공정 빠진 특허)만 공개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 경우 드래프트를 활용해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못 찾을 수도 있고, 찾더라도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린다.

mRNA 백신의 핵심은 세부 공정 비밀이다. 화이자와 모더나가 철저히 보호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녹십자가 모더나의 국내 허가 대행을 맡아서 진행하는데, 세부 공정 관련 자료는 모더나가 직접 제출할 정도"라고 말한다. 제약업체 A사의 백신전문가는 "공개될 특허에 세부 공정이 담겨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특허 공개 범위, 생산 후 이윤분배 방식, 면제 기간 등 충돌 지점이 수두룩하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 캐서린 타이 대표가 "WTO 규정에 따른 보호를 포기하는 데 필요한 국제적 합의에 도달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국은 의약품 생산 세계 2위이다.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지재권 면제 수혜국이 될 수 있다. 국내 제약사 중 mRNA 백신을 '카피 생산'할 수 있는 데가 한미약품·에스티팜(동아쏘시오그룹 계열)·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 등이 거론된다. 한미약품은 국내 최대 미생물 배양 공장을 갖고 있어 mRNA 백신 제조 기술을 이전받으면 완제품까지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에스티팜은 지난달 8일 세부 공정 기술인 지질나노입자(LNP) 기술을 스위스 제네반트에서 사왔고 다른 기술인 '5캡핑'을 갖고 있다. LNP는 mRNA를 공모양으로 보호하는 기법이다. 두 기술은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에 적용됐다. 에스티팜은 완제품 공장은 없고, 중간단계 원료까지 생산한다. 이달 중 연간 240만 도즈(1회 접종분) 생산 시설을 완공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지재권이 풀리고 현재 기술을 활용하면 6~8개월에 제품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녹십자·한미약품 등이 이걸 가져다가 완제품을 생산해야 한다.

관련 기술과 설비가 없는 데는 훨씬 어렵다. B제약사 관계자는 "지재권이 공개돼도 처음부터 시작하려면 공장 건설에 2년, 시제품 생산에 1년 걸린다"며 "화이자나 모더나의 기술이전을 받아 위탁 생산한다고 해도 기술이전과 공정개발에 4~10개월, 시제품 검증에 2~3개월 걸린다"고 말했다.

화이자나 모더나가 세부 공정을 공개해도 국내 기업의 힘만으로는 생산하기 힘들 수도 있다. 푸른국제특허법률사무소 김진동 변리사는 "사실 특허란 게 들여다보면 핵심 내용이 빠진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에 제조법을 공개해도 따라 만들 수 없어 기술지도가 필수"라며 "제품을 만들 때까지 지도해줘야 온전한 면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아스트라제네카(AZ)와 노바벡스 백신을 위탁 생산하는 SK바이오사이언스에도 두 회사의 기술자가 와서 협의하고 설비를 안정화해 줬다. A사의 다른 관계자는 "화이자나 모더나의 기술자가 와서 지도해 주지 않으면 원 백신과 같은 수준의 제품을 생산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화이자나 모더나가 그리해줄지 의문이다. 그리 안 한다고 해서 강제할 권한이 없다.

Sk바이오사이언스 직원들이 안동L하우스에서 생산되는 코로나19 백신을 검수하고 있다. [사진 SK바이오사이언스]

Sk바이오사이언스 직원들이 안동L하우스에서 생산되는 코로나19 백신을 검수하고 있다. [사진 SK바이오사이언스]

'카피 백신'을 생산만 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안전한지, 효과가 원 제품과 같은지 검증해야 한다. 무엇보다 안전성이 중요하다. B사 관계자는 "문제가 생기면 카피 제약사, 화이자·모더나 중 어느 쪽이 책임질지 모호하다"며 "화이자나 모더나 입장에서는 공정개발을 검수하지 않아 책임이 없다고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면역력이 충분한지도 중요하다. 일반적인 약품은 화학 산식만 알면 카피할 수 있다. 이런 약도 오리지널 약과 약효가 같은지 따진다. 실험실 검증 뿐만 아니라 인체에 투여해 동등성 검증을 한다. 백신은 바이오 의약품이라서 훨씬 까다롭다. 복지부 관계자는 "백신은 공장에서 막 찍어내듯 복제할 수 없다. 임상시험을 거쳐 약효를 따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건 식약처가 키를 쥐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어떤 방식으로 어느 수준으로 언제까지 특허 면제가 될지 알 수 없어서 지금 말하긴 어렵지만 알약 만드는 것보다 훨씬 까다롭게 볼 것"이라며 "국제 의약품 기준(GMP)에 따라 개별 물질의 온도·습도 등 세밀한 것까지 제대로 공정을 관리하는지 200페이지 넘는 검증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돈과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 A제약사의 백신 전문가는 "생산 후 면역력 검증에 최소 1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장벽은 효소 등을 비롯한 원자재·부자재 부족이다. 미국이 국내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mRNA백신 원부자재 반출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상태인데, 이걸 풀어야 조금이라도 국내에 들어온다. 세계적으로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원부자재 생산 기업이 화이자나 모더나 같은 우량 거래처에 공급하는 것도 빡빡하다. 지재권이 면제되면 품귀가 더 심해질 게 뻔하다. 그래서 벌써 원료 지재권 면제 얘기가 나온다. mRNA 백신 제조 설비 품귀 현상도 풀어야 할 과제다.

이런 장벽을 넘어 '카피 백신'을 생산하더라도 한국이 먼저 쓰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한국은 인구 2배 가량의 백신을 확보한 상태다. 지재권 면제는 백신 최빈국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 대책이다. 그런 마당에 한국 제약사가 생산했다 해서 우리가 먼저 쓰면 국제적으로 지탄받을 수 있다.

B제약사 관계자는 "미국은 코로나 백신을 한 개도 수출하지 않는다는 국제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 지재권 공개를 선언하면 각국 정부와 카피 백신 생산 기업에 책임이 넘어간다"며 "미국 정부로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책임에서 해방되는 방법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에스더 기자 ssshin@joongang.co.kr

 ☞◇ 지재권 면제=영국 경제전문기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6일 현재 195개국 중 '백신 0 접종국'은 24개국이다. 성인 1회 접종률이 5% 안 되는 데가 40개국. 이스라엘(97%), 미국(59.4%), 핀란드(39.5%) 등 선진국은 멀리 앞서 있다. 건강 불평등이다. 지난해 10월 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이 WTO에 특허를 풀어 백신 생산을 늘리자고 제안하면서 공론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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