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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은 친일파 유산 아냐"···법정 분쟁 100여건 다 이겼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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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관광 1번지 남이섬이 친일파 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진 남이섬

한류관광 1번지 남이섬이 친일파 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진 남이섬

2019년 12월 행정 당국의 부주의로 남이섬 입구에 다리가 건설될 판이라고 보도했을 때, 각종 포털 사이트엔 댓글 3000여 개가 달렸었다. 지난달 30일 ‘남이섬 동생’ 탐나라공화국이 개장한다고 썼을 때도 4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남이섬이 이렇게 뜨거운 곳이었나. 아니었다. 댓글의 90% 이상이 악플이었다. 표현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내용은 하나였다. ‘남이섬은 친일파 유산이다.’

최근 4∼5년 새 남이섬 관련 기사를 쓸 때마다 ‘친일파 댓글’이 쏟아진다. 매번 악플이 도배되니 으레 정해진 절차처럼 느껴진다. 남이섬은 정말 친일파 유산일까. 사이버 공간에 떠도는 소문은 다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남이섬은 친일 재산이 아니다. 법원의 결정이다. 이미 언론사 10여 곳과 네티즌 수백 명이 처벌을 받았거나 잘못을 빌었다. 거짓 정보가 무분별하게 확산하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어 시시비비를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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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설립자는 친일파인가

남이섬 설립자 수재 민병도 선생. 사진 남이섬

남이섬 설립자 수재 민병도 선생. 사진 남이섬

아니다. 남이섬 설립자 수재 민병도(1916∼2006) 회장은 친일파가 아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에서 작성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은 물론이고,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도 민병도라는 이름은 없다.

남이섬 설립자는 친일파와 관계 없는가

관계가 있다. 일제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은 친일파 민영휘(1852~1935)가 수재의 할아버지다. 적통은 아니다. 민영휘의 서자(庶子) 중에 민천식이 있었는데, 수재가 민천식의 양자(養子)다. 수재의 양부 민천식은 친일 관련 기록이 없다. 젊은 나이에 죽었다. 서자의 양자라도 자손은 자손이다. 수재는 친일파 후손이 맞다. 그러나 친일파 후손과 친일파는 같은 말이 아니다.

친일파 후손이면 남이섬은 친일 유산 아닌가

남이섬은 물려받은 재산이 아니다. 남이섬에 따르면, 남이섬은 수재가 1965년 한국은행 총재에서 퇴임하고서 월급과 퇴직금 등을 모아 샀다. 수재는 한국은행에서 퇴직할 때까지 28년간 은행에서 일했다.

유산으로 남이섬을 산 것 아닌가 

남이섬이 한 시사 주간지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 관한 법원 판결문. 시사 주간지는 판결에 따라 기사에서 문제가 되는 3개 문장을 삭제했다. 손민호 기자

남이섬이 한 시사 주간지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 관한 법원 판결문. 시사 주간지는 판결에 따라 기사에서 문제가 되는 3개 문장을 삭제했다. 손민호 기자

남이섬 친일 유산 논란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인터넷에선 ‘민영휘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으로 남이섬을 샀다’ ‘명성황후가 숨긴 돈으로 남이섬을 샀다’는 소문이 떠돈다. 이와 관련한 법원 판단이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2019년 6월 29일 판결문 중 일부 대목을 아래에 인용한다.

‘민병도가 남이섬을 매입할 당시 남이섬의 매입가격은 1610만원 정도로 추정된다. 이를 2018년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약 6억1105만9400원 정도인 바, 당시까지 민병도가 쌓아온 사회적 경력과 이에 수반하여 축적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자력을 고려하면, 민병도가 스스로 구입 가능하였을 금액으로 보인다.’

정부의 친일 재산 환수를 피하려고 남이섬을 법인 등록한 것 아닌가

지금은 나무로 울창하지만, 1965년 민병도 회장이 구입할 당시 남이섬은 모래섬이었다. 사진 남이섬

지금은 나무로 울창하지만, 1965년 민병도 회장이 구입할 당시 남이섬은 모래섬이었다. 사진 남이섬

수재는 1965년 남이섬을 샀다. 그 시절 남이섬은 땅콩 정도나 겨우 자라는 모래섬이었다. 의동생 민병갈(1921∼2002) 박사가 충남 태안 해안에 들어가 천리포수목원을 일궜듯이, 수재도 남은 평생을 모래섬에 나무 심으며 보냈다. 남이섬은 1966년 ㈜경춘관광개발로 법인 등록됐고, 2000년 ㈜남이섬으로 상호 변경됐다. 친일 재산 환수 사업은 2003년 시작된 노무현 정부 시절의 일이다.

남이섬 지배구조는 어떻게 되나

2010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남이섬을 방문했다. 아예 국가고용전략회의를 남이섬에서 개최했다. 남이섬을 친일파 유산이라고 욕하는 네티즌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남이섬 방문 사실도 문제삼는다. 중앙포토

2010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남이섬을 방문했다. 아예 국가고용전략회의를 남이섬에서 개최했다. 남이섬을 친일파 유산이라고 욕하는 네티즌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남이섬 방문 사실도 문제삼는다. 중앙포토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 중에 이런 게 있다. ‘남이섬 소유주 집안 대부분이 미국 국적으로, 남이섬 수입 상당수가 그들이 사는 LA로 간다.’ 가장 악의적인 소문이다. 남이섬은 수재 집안이 대물림해 경영하는 가족 기업이다. 아들 민웅기 회장에 이어 전문 경영인 강우현·전명준 대표를 거쳐 올 3월 1일 손자 민경혁(49)씨가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가족 중 미국 국적자는 한 명도 없으며, LA에 거주하는 사람도 없다.

남이섬 신화의 주인공 강우현은 누구인가

남이섬 신화의 주인공 강우현 탐나라공화국 대표. 2001년부터 2014년까지 전문 경영인으로 남이섬을 한류 관광 명소로 이끌었다. 손민호 기자

남이섬 신화의 주인공 강우현 탐나라공화국 대표. 2001년부터 2014년까지 전문 경영인으로 남이섬을 한류 관광 명소로 이끌었다. 손민호 기자

IMF 외환위기 직후 남이섬은 극심한 경영난에 빠졌다. 실제로 남이섬을 팔려고 내놓기도 했다. 매각에 실패하자 남이섬은 전문 경영인으로 그래픽 디자이너 강우현(68) 대표를 영입했다. 대표 취임 첫해인 2001년, 강우현 대표 월급이 100원이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남이섬을 한류관광 명소로 만든 강 대표는 2014년 제주도로 내려가 탐나라공화국을 조성하고 있다. 탐나라공화국은 남이섬의 출자회사다. 현재 강우현 대표는 ㈜남이섬과 무관하다. 어떠한 직책도 없다. 그런데도 남이섬과 인연으로 친일파라고 욕을 먹는다.

남이섬은 어떻게 대처했나

①언론사 15곳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 언론사 15곳 기사 수정 및 삭제
②시사 주간지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 → 법원, 기사 중 문제 되는 문장 3개 삭제 판결
③악성 댓글·게시물·영상 작성한 네티즌·유튜버 85명 고소 → 네티즌 대부분 사과하고 댓글·게시물 삭제
④네이버·다음 등 포털 사이트에서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댓글 삭제 처리 건수 1300건

4일 남이섬이 밝힌 거짓 정보에 대한 대처 결과다. 대부분 2016∼2018년 처리된 사안이다. 거짓 정보에 관한 분쟁에서 남이섬은 진 적이 없다. 민경혁 대표로부터 남이섬 입장을 들었다.

“코로나 사태 이전 해마다 100만 명이 넘는 외국인이 남이섬을 방문했다. 해외에선 한류 명소로 각광받는 남이섬이 국내에선 친일 유산이라고 욕 먹는 현실이 솔직히 당황스럽다. 서비스업이어서 소송 같은 법적 대응에 최대한 조심하고 있다. 고민이 깊다.”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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