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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판 '타다' 되나…변협·로톡 세게 붙었다 "新탈법" "역주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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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종엽 대한변협 회장이 4일 인터넷 기반 변호사 광고대행 플랫폼을 규제하는 변호사 광고 규정 전부 개정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3월 중앙일보와 인터뷰. 장진영 기자

이종엽 대한변협 회장이 4일 인터넷 기반 변호사 광고대행 플랫폼을 규제하는 변호사 광고 규정 전부 개정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3월 중앙일보와 인터뷰. 장진영 기자

“변호사들이 비(非) 변호사 자본에 종속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3년 후 법조시장 주도권을 완전히 잃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일 열린 대한변호사협회의 상임이사회에서 나온 우려의 목소리다. 변협 내부에서는 “각종 법률 플랫폼들이 대규모 자본을 유치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며 “신종 위법, 탈법 행위가 늘어나고 있어 실효성 있는 대응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변협은 이날 이사회를 거쳐 ‘로톡(LAWTALK)’과 같은 법률서비스 플랫폼을 이용하는 변호사에 대해 경고하거나 중지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을 4일 발표했다.

변협, 로톡 겨냥 변호사 광고 규정 개정

국내 최대의 전통 법조단체인 ‘변협’이 국내 1위 법률서비스 플랫폼인 ‘로톡’에 일종의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2014년부터 광고비를 받고 변호사와 의뢰인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선보인 로톡은 그간 변협과 지속해서 마찰을 빚어왔다. 변협은 앞서 2015년과 2016년 두 차례 ‘누구든지 금품을 받고 변호사를 알선해서는 안 된다’라는 변호사법을 위반했다며 로톡을 고발했으나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로톡 측의 "변호사 알선 행위가 아니라 홍보를 대행한 것 뿐"이라는 논리가 먹힌 셈이다. 그러자 변협이 형사고발에 이어 또 다른 칼을 꺼낸 게 이번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 전부 개정안이다.

법률서비스 플랫폼 '로톡'은 빅데이터를 이용한 '형량 예측 서비스'를 의뢰인에게 제공하고 있다. 로톡 홈페이지 캡처

법률서비스 플랫폼 '로톡'은 빅데이터를 이용한 '형량 예측 서비스'를 의뢰인에게 제공하고 있다. 로톡 홈페이지 캡처

변협은 이 규정에서 로톡의 서비스 자체를 원천적으로 금지 행위로 못 박았다. 5조2항에서 "변호사 또는 소비자로부터 알선료·중개료·수수료·회비·가입비·광고비 등 대가를 받고 법률상담 또는 사건 등을 소개·알선·유인하기 위해 변호사와 소비자를 연결하거나 변호사를 광고·홍보·소개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라고 규정했다. 로톡의 AI(인공지능) 형량예측도 "수사기관과 행정기관의 처분·법원 판결 등의 결과 예측을 표방하는 서비스를 취급·제공하는 행위"로 금지대상에 포함했다.

변협은 또 이같은 형태의 새로운 플랫폼을 조사하고 감독하기 위한 ‘법질서위반 감독센터’도 신설할 계획이다.

변협 ‘공정한 수임질서’, 로톡 ‘시대에 역행’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네이버 엑스퍼트'를 통해 변호사와 의뢰인을 연결해 1대1 채팅이나 영상통화 등으로 법률 상담을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네이버 홈페이지 캡처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네이버 엑스퍼트'를 통해 변호사와 의뢰인을 연결해 1대1 채팅이나 영상통화 등으로 법률 상담을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네이버 홈페이지 캡처

이번 조치에 대해 변협은 ‘공정한 수임질서’를 지키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광고대행 등 법률서비스 플랫폼의 출현에 대해 "새로운 형태의 사무장 로펌이 법조 시장을 장악하는 상황"이라고 위기 의식을 드러냈다.

변협 관계자는 “로톡 등 각종 법률 플랫폼 사업자들이 ‘비변호사’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변호사들로부터 광고료 등의 명목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다”며 “무료 또는 최저가 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공정한 수임질서를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변협이 로톡을 직접 거론하며 새 규정을 발표하자 로톡은 “시대에 역행하는 행위”라며 즉각 반발했다.

로톡 운영사인 로앤컴퍼니 관계자는 “지난 수년간 변협은 공식 질의회신에서 ‘로톡의 광고는 합법이며 규정 위반이 아니다’라고 여러 차례 유권해석을 내렸다”며 “하루아침에 로톡을 비롯한 플랫폼에서 광고하는 변호사들이 징계 대상이라고 말을 바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규정 개정안은 국민의 편익과 법률서비스 접근성을 제한하고 영업·광고의 자유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주장했다.

변협 광고대행 금지에 “업계 갈등 더 커질 것”

이번 조치를 둘러싸고 변호사들 사이에선 반응이 엇갈렸다. 젊은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기존 기득권 변호사를 옹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 개업 4년 차 변호사는 “새롭게 시장에 진출한 변호사 입장에서 로톡 등 변호사 홍보 플랫폼은 본인을 객관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장"이라며 “소비자 역시 이런 플랫폼을 이용해 보다 많은 변호사에게 접근할 수 있고 개별 변호사에 대한 이력과 정보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서초동의 로펌 소속 변호사는 “이번 변협의 징계 방침에 따라 로톡을 둘러싸고 변호사 업계에서 신구(新舊) 갈등이 벌어질 것"이라며 “로스쿨로 변호사 숫자가 늘어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새로운 플랫폼 업체들의 ‘무료 상담’ ‘최저가’ 출혈 경쟁으로 변호사의 지위가 더 낮아질 것 같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변협의 징계 방침 결정이 성급했다는 시각도 있다.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편집위원장 이덕규 변호사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언제까지 사무장·브로커에 의존하며 옛날 영업 방식을 고수할 수 있겠느냐”며 “플랫폼을 없앤다면 어떤 대안을 마련할 것인지, 정보화시대에 높아진 국민들의 눈높이를 어떻게 맞출 것인지 논의가 필요함에도 변협 집행부가 어떠한 비판과 의견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택시-타다' 분쟁처럼 법률시장 신·구산업 갈등"

일각에선 변협과 로톡의 갈등을 두고 ‘법조계의 타다 사태’로 우려하기도 한다. 기존 택시 업계의 거센 반발로 렌터카 기반 차량 호출 서비스를 선보인 타다가 일부 사업을 접어야 했던 것처럼 전통산업과 신산업 간 정면충돌로 신산업이 위축될 것을 우려해서다.

이에 대해 로톡 관계자는 “‘타다’는 사업이 커질수록 기존 시장에 공급자가 늘어나는 구조였기에 택시기사들의 저항이 컸다”며 “로톡은 변호사 수를 증가시키지 않고 기존에 존재하는 변호사들이 업무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울 뿐”이라고 말했다.

변협 측은 새 변호사 광고 규정에 대해 “3개월간 계도기간을 거친 뒤 8월 4일부터는 법률서비스 플랫폼을 이용하는 변호사에 대한 중지 요구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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