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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 살포와 접경지역 주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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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익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전익진 사회2팀 기자

전익진 사회2팀 기자

“이제 대북전단 살포로 인한 접경지역 긴장에서 벗어날 것으로 기대했는데 곧바로 예전 상황으로 돌아갔으니 허탈합니다.” 최근 한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로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경기도 연천군 주민들의 하소연이다. 접경지역 주민들은 최근 한 달 동안 안심했었다. 지난 3월 30일부터 대북전단을 금지하는 개정 남북관계발전법(대북전단금지법)이 시행되면서였다.

그러나 탈북민 단체는 지난달 말 전단살포를 예고한 뒤 이를 강행했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달 30일 “지난 25∼29일 사이 비무장지대(DMZ)와 인접한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두 차례에 걸쳐 대북전단 50만장과 소책자 500권, 미화 1달러 지폐 5000장을 대형풍선 10개에 나눠 실어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고 밝혔다.

대북전단을 든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사진 자유북한운동연합]

대북전단을 든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사진 자유북한운동연합]

아니나 다를까. 북한이 즉시 반발하고 나서면서 접경지역에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2일 담화를 내고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대북전단 살포에 반발하며 우리 정부가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접경지역 주민들은 경악했다. 10여년간 대북전단 살포 중지를 외쳐온 이석우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대표는 “연천에서는 앞서 2014년 10월 10일 북한이 탈북민 단체가 날린 대북전단 풍선에 고사총 10여발을 쏴 중면사무소 마당 등지에 총탄이 날아드는 피해를 보고, 남북 간 군사적 충돌 위기 상황 직전까지 내몰린 적이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정부와 탈북민 단체를 모두 비판했다. 우선 탈북민 단체가 대북전단금지법이 시행된 상황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예고까지 한 마당에 정부가 이를 막지 못한 것은 직무유기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북전단금지법을 위반하면서 접경지역 주민들을 또다시 위험으로 내모는 무분별한 행동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은 “3년 징역이 아니라 30년, 아니 교수대에 목 매단대도 우리는 헐벗고 굶주린 무권리한 이천만 북한 동포들에게 사실과 진실을 말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정부·여당은 대북전단금지법 합리화에만 목소리를 낼뿐, 정작 접경 지역 주민의 안전을 효율적으로 지킬 방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 헌법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대북전단금지법은 폐지해야 한다는 반대 논리도 팽팽하다. 미국뿐 아니라 국제사회도 대북전단금지법을 비판하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한 탈북민 단체는 과거 이런 논란을 피해 비공개로 대북전단을 날려 보냈다. 이상과 현실, 불법과 합법 논란의 와중에 접경지역 주민들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현실적인 운용의 묘와 지혜를 발휘해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전익진 사회2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