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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런 "금리 인상" 깜짝 발언…파월보다 먼저 꺼낸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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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로이터=연합뉴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로이터=연합뉴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았다. 누구도 선뜻 꺼내지 않았던 '금리 인상'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낸 것이다. 지난해 3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제로(0~0.25%) 수준으로 내린 지 1년 2개월 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충격에 휘청댔던 미국 경제가 빠르게 제 궤도를 찾아가며 커지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 속 긴장하던 시장은 화들짝 놀랐다. 이내 말을 주워 담았지만, 시장은 실수를 가장한 옐런의 신호로도 해석하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 처음 언급한 옐런

한미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한미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옐런 장관은 4일(현지시간) 오전 미 시사잡지 디애틀랜틱이 개최한 ‘미래경제서밋’ 온라인 사전 녹화 인터뷰에서 “추가적인 재정 지출은 미국 경제 규모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작을지 모르지만, 이는 매우 완만한 금리 인상을 야기할 수 있다”며 “우리 경제가 과열되지 않도록 금리가 다소 올라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옐런의 발언은 Fed의 금리 인상 가능성으로 해석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제출한 4조 달러가 넘는 추가 재정 지출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Fed가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실물 경제의 과열 양상과 인플레이션 우려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애플 3.5%↓…금리 발언에 나스닥 1.9% 급락

재닛 옐런 장관이 4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개최한 CEO 카운슬 서밋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WSJ 캡처]

재닛 옐런 장관이 4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개최한 CEO 카운슬 서밋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WSJ 캡처]

옐런의 ‘깜짝 발언’에 시장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날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 지수는 1.88%(261.61포인트) 급락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도 0.67% 내렸다. 애플( -3.54%)과 아마존(-2.20%), 테슬라(-1.65%), 알파벳(-1.55%), 페이스북(-1.31%) 등 기술주가 나란히 하락했다. 빅테크 기업 중심의 기술주는 미래의 기대 수익을 선반영하기 때문에 금리 변화에 민감하다.

파장이 커지자 옐런은 진화에 나섰다. 그는 이날 오후 WSJ 주최 ‘CEO 카운슬 서밋’ 행사에서 “내가 (금리 인상을) 예측하거나 권고한 것이 아니다”며 “인플레이션 문제가 생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Fed가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Fed의 독립성을 제대로 인정하는 사람”이라며 기준금리 결정 과정에 관여하지 않고 있음을 강조했다.

지난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산페드로 항구의 모습.[AFP=연합뉴스]

지난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산페드로 항구의 모습.[AFP=연합뉴스]

옐런이 이내 한 발짝 물러선 듯하지만 미국 경제 상황에 비춰보면 그냥 흘려 넘길 발언은 아니다. 빠른 백신 보급과 정부의 천문학적 부양책에 힘입어 미국 경제 회복 속도는 매우 빠르다. 올해 1분기 6.4%(전기대비 연율)를 기록한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2분기에는 10%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존 윌리엄스 뉴욕연방은행 총재는 올해 미국 성장률이 7% 정도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시장에서 경기 과열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릭 리더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이날 CNBC에 “모든 고객이 경기 과열에 대해 문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도 지난 1일 주주총회에서 “우리는 상당한 인플레이션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도 최근 한 세미나에서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이 일어난다면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6%대까지 급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AP=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AP=연합뉴스]

이런 와중에 옐런의 발언은 시장 우려에 불을 붙인 셈이다. 게다가 제롬 파월 Fed 의장의 생각과도 배치된다. 파월은 금리 인상과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등 긴축 정책으로의 전환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별한 변화가 없다면 금리 인상은 2023년 이후가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WSJ은 “빌 클린턴 전 행정부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행정부는 Fed의 금리 정책에 대한 언급을 삼가왔다”며 “옐런이 금리 인상 가능성을 직접 거론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옐런 발언은 의도적…시장에 신호 보내는 것"

[AFP=연합뉴스]

[AFP=연합뉴스]

때문에 전 Fed 의장으로 통화정책에 대한 언급을 한 옐런의 발언이 ‘실수’가 아니라는 분석이 많다. 시장을 떠보는 한편 금리 인상과 긴축 정책에 대해 신호를 보냈다는 것이다. 베리타스 파이낸셜그룹의 그레고리 브랜치 창업자는 “옐런 장관의 발언은 매우 의도적”이라고 말했다.

옐런은 금리 인상을 권고한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이날 발언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4조 달러 규모 부양책이 경기에 부담을 줄 것이란 점은 인정했다.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더라도 Fed가 대응할 적절한 수단이 있다고도 강조했다. 이 역시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에식스 인베스트먼트의 낸시 프라이얼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옐런은 자신이 말한 이야기의 의미를 알고 있다”며 “경제가 과열됨에 따라 불가피한 금리 인상을 소화할 시간을 시장에 주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존 나자리안 마켓리벨리언 창업자는 CNBC에 “파월 의장은 (금리 인상) 생각조차 하지 않지만, 옐런이 파월에게 ‘당신은 당장 해야 할지도 몰라요’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미국의 경기 회복세가 빨라지며 금리 인상 카드를 만지작 거리게 되면 고민이 깊어지는 곳은 한국은행이다. 한은은 지난해 기준금리를 0.5%까지 내렸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자금 이탈 등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다. 문제는 커지는 가계 빚이다. 한은에 따르면 가계 빚은 지난해 말 기준 1700조원을 돌파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 인상 등이 이어지면 금융시장 불안정은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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