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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의대생父 "함께 있던 친구, 방어 기제로 최면수사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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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지난달 25일 새벽 반포 한강 둔치에서 실종된지 6일만에 주검으로 발견된 대학생 고(故) 손정민씨의 발인을 앞두고 아버지 손현씨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뉴스1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지난달 25일 새벽 반포 한강 둔치에서 실종된지 6일만에 주검으로 발견된 대학생 고(故) 손정민씨의 발인을 앞두고 아버지 손현씨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뉴스1

"정민이 친구의 심리 상태가 불안정한 데다 방어 기제가 세서 최면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경찰이 그랬다. 이런 경우 최면수사가 아닌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하는 게 맞다더라."

한강에서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의대생 손정민(22)씨의 아버지 손현(50)씨는 최근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정민이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손씨는 정민씨가 실종된 지난달 25일 새벽까지 함께 술을 마신 친구 A씨에 대한 의혹을 지속해서 제기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A씨의 최면수사와 관련된 부분이다.

경찰은 당시 실종 상태였던 정민씨를 찾기 위한 단서를 얻기 위해 A씨를 상대로 지난달 27일과 29일 두 차례에 걸쳐 최면조사를 시도했다. 하지만 첫 번째는 최면 도중 깼고 두 번째는 유의미한 단서를 얻기 힘들었다는 게 담당 경찰관 설명이다.

무의식에 희망 건다…'최면수사'란?

지난달 29일 반포한강공원에 걸려 있는 '실종된 아들을 찾는다'는 현수막. 정진호 기자

지난달 29일 반포한강공원에 걸려 있는 '실종된 아들을 찾는다'는 현수막. 정진호 기자

'법최면'은 조사자에게 최면을 걸어 무의식에 남아 있는 특정 기억을 끄집어내는 과학수사 기법의 하나다. 최면이라는 용어가 통상 심리·의학적 용어로 사용되는 것과 달리 법최면은 범죄 수사에 활용하는 경우로 한정한다. 범죄 현장에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단서가 '사람' 밖에 없을 때 주로 쓰인다. 기억을 왜곡하거나 부정할 우려가 있어 용의자나 피해자가 아닌 목격자에게만 진행한다.

이번 정민씨 사건의 경우 결정적 단서가 될 만한 폐쇄회로(CC)TV나 목격자 확보가 어려웠던 데다, A씨가 "술에 취해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 A씨의 무의식에 희망을 걸었다는 게 손씨의 얘기다.

1999년 국내 도입된 법최면은 현재 성범죄를 비롯한 각종 강력사건과 뺑소니 교통사고 등에 이용되고 있다. 경찰청이 중앙일보에 제공한 연도별 법최면 수사 활용 건수에 따르면 ▶2016년 41건 ▶2017년 38건 ▶2018년 35건 ▶2019년 32건 ▶2020년 36건으로 최근 5년 새 한 해 평균 36.4건의 최면수사가 진행됐다. 현재 경찰청에 소속된 법최면 전문 조사관은 전국적으로 총 27명이다.

"유용" vs "의문"…엇갈린 의견 

경찰 이미지. 연합뉴스

경찰 이미지. 연합뉴스

법최면이 성과를 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수사기법은 아니다 보니 조사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경찰 내부에서도 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경찰 간부는 "법최면 수사에 큰 기대는 안 하지만 혹시나 기억을 해내면 좋은 것"이라며 "법최면으로 범인 잡을 때도 있다고 하는데 오로지 그것만으로 검거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면 해외에선 법최면이 유용하다고 보고 일찍이 수사에 활용해왔다. 1960년대부터 법최면을 활용한 미국의 경우 목격자들이 최면 상태에서 기억을 더 상세히 떠올린다는 연구결과가 다수 나왔다.

국내에서 법최면 활용의 좋은 사례로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꼽힌다. 지난 2019년 법최면을 통해 버스안내양의 31년 전 기억이 되살아난 것을 계기로 용의자 이춘재가 입을 열었다. 최면수사 당시 버스안내양은 이춘재의 사진을 보고 "당시 목격한 용의자 얼굴과 일치한다"고 진술했다.

"최면수사에 부적합한 성격은…"  

최면수사 기법 중 하나인 '수평도약눈운동'. 중앙포토

최면수사 기법 중 하나인 '수평도약눈운동'. 중앙포토

최면수사로 의미 있는 결과를 얻기 위해선 조건이나 상황도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진행된 최면수사 36건 중 전체 혹은 부분적 기억을 도출해낸 '인출' 건수는 28건이다. 최면에 접어들었지만 기억을 끄집어내지 못한 '비인출'은 4건, 최면이 걸리지 않은 '불능'은 4건이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과학수사관리관 소속 변규택 법과학분석 계장은 "최면자와 피최면자 간 '라포(rapport·신뢰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며 "최면에 잘 걸리는지 아닌지도 개인마다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최면에 대한 이해나 집중력이 높으면 최면수사에 적합하지만, 부정적·회의적·냉소적·논리적 성격 특성을 지녔거나 정신질환이나 뇌 손상을 앓는 경우엔 부적합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다양한 기법을 상황에 맞게 수사에 활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법최면도 그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김지혜 기자 kim.jihye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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