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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임약이 60배 위험하다는데…"백신 맞을 것" 응답 줄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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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부작용 확률보다 교통사고 나는 확률이 더 높다고 해서 마음 편히 먹고 맞기로 했어요.”

“불안해서 선뜻 못 맞겠어요. 후유증이 겁나네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접종이 시작된 지 두 달여가 흐른 지금까지 인터넷 카페·커뮤니티 등에선 접종해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 지난달 30일 “무서워서 차례가 와도 안 맞겠다”고 쓴 한 여성의 글에는 80개 달하는 댓글이 달렸다. 대체로 “과학으로 판단하자. 작은 확률의 부작용 때문에 고민하지 말자”는데 동의하는 이들이 많지만, “부작용이 두렵다”는 목소리도 꽤 됐다. 실제 정부 조사에서도 국민들의 불안이 감지된다. 보건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4월27~29일 전국 성인 1000명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코로나19 백신을 맞겠다”는 응답이 61.4%로 나타났다. 3월보다 6.6%포인트 줄어든 수치다.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 전용 주사기가 용기에 담겨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 전용 주사기가 용기에 담겨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이런 불안감은 주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과 관련한 것이다. 한 여성은 “화이자, 모더나면 맞겠지만 AZ는 안 맞고 싶다”고 썼다. 꾸준히 이상반응 의심 신고가 접수되는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접종 초기 희귀 혈전 논란을 일으킨 백신은 모두 AZ였으며, 접종과의 연관성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종종 들려오는 신경계 반응 등의 중증 의심 사례도 AZ에서 주로 발생했다. 코로나19예방접종대응추진단에 따르면 이상반응으로 의심돼 신고된 사례는 모두 1만7485건(4일 0시 기준)으로 98.1%는 비교적 경미한 것이며 이밖에는 당초 가장 우려됐던 부작용 ‘아나필락시스(중증 전신 알레르기 반응)’ 의심 사례(179건)가 가장 많다. 중증 의심 사례는 절반이 채 안 되는 66건이다. 그런데 최근 우려를 부르는 건 이런 증상들이다.

지난달 경기도 한 병원에서 근무한 40대 여성 간호조무사는 AZ를 접종한 뒤 면역 반응 관련 질환인 급성 파종성 뇌척수염 진단을 받았다. 이 조무사는 접종 직후 일주일간 두통을 겪었고 사물이 겹쳐 보이는 ‘양안복시’ 증상 이후 사지마비까지 왔다고 알려졌다. 이후 20대 공무원에서 접종 후 뇌출혈 증상을 보인 사례가 나왔다. 최근에는 백신을 맞은 경찰관들이 반신마비, 뇌출혈 의심 증상 등으로 연이어 중환자실 치료를 받는 일들이 벌어졌다. 이들은 평소 특별한 지병을 앓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우려를 더했다. 하지만 당국과 전문가들 상당수는 여전히 희귀 혈전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접종과의 연관성이 낮다는 입장을 보인다.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접종받은 대상자들이 이상 반응을 체크하기 위해 잠시 대기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접종받은 대상자들이 이상 반응을 체크하기 위해 잠시 대기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접종이 아니더라도 발생했을 개연성이 큰 일들이라는 걸까. 정재훈 가천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아직 국내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해외 데이터로 봐야 한다”며 “AZ 관련해 가장 포괄적인 데이터를 제공하는 곳이 영국인데, 혈소판 감소를 동반한 희귀 혈전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일반 인구 집단보다 (해당 이상 증상이) 높은 확률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데이터를 더 산출해봐야겠지만 접종자 중 발생한 뇌출혈이나 파종성 뇌척수염 질환 등의 빈도가 자연 발생률(평상시 발생 정도)과 비교해 큰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면밀한 조사와 사후 평가가 있어야 하지만 과학적 자세를 견지하는 게 중요하다”며 “현재까지 인과 관계가 증명된 희귀 혈전을 제외하면 특별한 이상이 발견된 상황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국내 접종량이 충분히 쌓인 뒤 재평가해야겠지만, 과도한 공포에선 벗어나야 한다는 게 정 교수의 얘기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비슷한 의견이다. 최 교수는 “이슈가 되는 질환의 발생률을 실제 분석해봐야 추가로 위험이 증가하는지 알 수 있다”며 “접종군과 미접종군을 비교해 자료로 이야기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아니더라도 기저질환이 없던 이에게서 출혈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는 있다고 했다.

의료진이 방문한 접종 대상자에게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신중히 접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의료진이 방문한 접종 대상자에게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신중히 접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최 교수는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접종 때 이슈가 됐던 길랑 바레 증후군도 접종이 아니라 다른 감염 등을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며 “일종의 자가면역질환 형태로 나타나는 이상 반응이나 질환은 대개 기저질환이 없던 사람에게서 생기는 것으로, 당뇨나 고혈압이 있던 사람이 경험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접종의 득이 더 큰 만큼 과한 우려를 경계하라고 조언하지만, 불안과 불신을 잠재우려면 정부 대응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우려되는 사례들이 아무리 일반적인 발생 범주에 있더라도 신속하게 조사해 결과를 내놓아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이 덜 보인다”며 “뇌출혈 환자는 즉시 혈소판 숫자라도 공개해야 한다. 향후 보상위원회에서 이야기하려는 신중한 태도일 수 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가령 ‘이 사람은 혈소판이 20만개로, 진단 기준에 맞지 않는다.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식의 답이 나와야 한다. 개인 정보이긴 하지만 AZ 기피 문제와 관련된 것일 수 있는 만큼 발표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언론 보도로 알려져서 그렇지, 실제로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부작용이 많지는 않다”면서도 “다만 관련된 국민의 불편과 우려가 증가했을 때는 신속하게 대응해 혼란을 막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5일 "유럽의약품청과 WHO 등 해외 전문기관에서도 백신접종은 이득이 위험보다 훨씬 커 접종을 권장하고 있다"라며 "예방접종에 대해 과도하게 불안해 하지 말고 해당 접종 차례가 오면 예방접종을 받아 달라"고 당부했다. 중대본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하더라도 혈전증이 발생할 위험은 작고 대부분 치료가 가능하며, 백신 접종으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적인 혈전증 위험은 일상적인 생활에서 겪는 혈전증 위험확률보다 훨씬 낮고, 경구피임약을 복용하는 경우 혈전증 위험이 백신보다 약 60배가 더 위험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황수연·이우림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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