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내 개인정보가 천원?…신사업 키우다 역풍, 네이버가 놓친 것[현장에서]

중앙일보

입력 2021.05.05 05:01

지면보기

종합 14면

내 이름·생년월일·성별·휴대전화번호 같은 개인정보의 값은 얼마일까. 궁금했다면 이제 말할 수 있다. 1000원이다. 한국 최대 인터넷 기업 네이버가 정했으니 시가(市價)로 봐도 무방하다.

블로그에 글쓰면 1.6만원 이벤트
‘네이버페이’ 가입이 참여 조건
3일 만에 종료하며 ‘1000원 지급’
개인정보는 금융 자회사로 넘어가

네이버가 조기 종료해 논란 중인 ‘블로그 오늘일기’ 이벤트 얘기다. 사용자가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에 짧게라도 날마다 일기를 쓰면 네이버가 보상금을 준다고 했다. 3일에 1000원, 10일간은 6000원, 14일을 채우면 1만6000원이다. 그런데 시작 사흘 뒤인 지난 4일 새벽에 회사 공식 블로그에 공지가 올라왔다. 3일간 쓴 사람에게 1000원씩 주고, 여기서 접는다고. “여러 아이디(ID)로 복사 글을 붙여쓰기하는 등 잘못된 참여가 많다”는 이유다. 네이버 ID는 1인당 3개까지 만들 수 있다.

이용자들의 반발은 거세다. “60만 명 넘는 참여자를 우롱했다”며 집단 대응 인터넷 카페가 개설됐고,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표면적으로는 돈 문제다. 1만6000원을 기대했는데 1000원에 그쳤다는. 사실은 깊은 얘기다. 인터넷 기업의 개인정보 수집과 플랫폼의 지배력 확장까지 걸려 있다. 왜일까.

이게 왜 개인정보 문제?

블로그 일기 이벤트에 참여하려면 네이버의 간편결제인 ‘네이버페이’에 가입해야 한다. 이벤트 보상금을 네이버페이 포인트로 지급해서다. 이 포인트는 1대1 현금으로 교환된다.

네이버페이에 가입하면 네이버 회원의 아이디(ID)와 이름, 생년월일, 성별, 내/외국인 여부, 휴대전화번호와 가입 통신사, IP주소 등이 네이버의 금융 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로 넘어간다. ‘네이버 개인정보 이용 동의’에는 이 정보를 광고 외에도 인구통계학적 분석, 지인 및 관심사에 기반한 이용자 간 관계의 형성, 개인 맞춤형 서비스 제공, AI와 결합한 신규 서비스 발굴을 위해서도 이용한다고 적혀 있다.

게다가 네이버는 이벤트 첫 공지에서 ‘참여 전에 네이버페이 가입 여부를 꼭 확인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대다수 참여자가 일단 네이버페이 가입부터 하고 일기를 썼다고 한다. 이들이 카페나 트위터 등에 “1000원에 개인정보 내준 바보가 됐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배경이다.

네이버페이 키우려다?

네이버는 ‘쇼핑·페이·클라우드’ 위주의 신사업에 힘주고 있다. 기존 사업인 ‘검색·광고’는 이익률이 높지만, ‘검색 공룡의 독과점’이라는 견제가 있고 글로벌 확장성도 낮아서다. 특히 네이버페이에 힘을 싣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해 마케팅 비용으로 5459억원을 썼는데, 네이버페이로 결제할 때 돌려주는 적립금 비용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돈을 써서라도 이용자를 늘리는 중이다.

네이버 매출에서 각 사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네이버 매출에서 각 사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지난달 29일 네이버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이렇게 말했다. “네이버 블로그의 작년 신규 개설 수가 전년 대비 2배 이상 성장했고, 이 중 30% 이상이 20대로 구성되며 일상을 기록하는 트렌디한 매체로 재부각되고 있습니다.” 실적발표는 돈 얘기하는 자리다. 블로그 사용자 증가에서 수익 창출 가능성을 봤다는 의미일 터다.

물 들어올 때 노 젓고 싶었을 것이다. 늘어난 사용자를 수익으로 연결하는 것이 회사의 능력이니 말이다. 게다가 미래 고객인 ‘20대 사용자’가 늘었다고 한 대표는 강조했다. 그런데 놓친 게 있다. 20대는 자신의 개인정보 관리에도 민감하다.

개인정보 가치에 눈뜬 사용자들

네이버는 그간 이메일과 블로그, 카페 같은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 국민 인터넷 기업이 됐다. 그러나 사용자들은 이제 ‘공짜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인터넷 플랫폼이 개인의 기록과 정보를 활용해 돈 버는 걸 알아서다. 최근 애플이 페이스북의 사용자 정보 자동수집을 막은 것에서 보듯, 국제 흐름도 이에 민감해졌다.

네이버에 개설된 블로그 수는 총 2824만 개다(2020년 말 기준). 편리한 사용자 경험(UX)과 이용자 소통 같은 네이버의 노력과 역량으로 모은 사용자다. 이들을 페이나 쇼핑 같은 네이버 신사업 고객으로 옮기는 데에도 왕도는 없다. 사업을 잘해도 ‘거대 플랫폼의 지배력 전이 아니냐’는 의심을 끊임없이 받는 네이버가 더 신경 써야 할 대목이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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