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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사태 예언 유현준 “20대, 안타깝지만 앞으로도 집 못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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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7일 유현준(52)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수경PD

지난 달 27일 유현준(52)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수경PD

“저는 이기심이 많아요. 안 착해요. (정치는) 저보다 착한 사람이 해야 돼요.” 

유현준(52)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는 '정치할 생각 없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유명 건축가, 베스트셀러 작가의 '겸손'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인터뷰 동안 해맑은 표정으로, 하지만 진지하게 “인간은 악하다”며 성악설(性惡說)을 설파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도 악(惡)할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이 벌인 비리였을까. LH 사태 전 그는 “신도시 개발을 좋아하는 분들은 지역 국회의원과 LH 직원, 두 부류”라고 예언(?)해 ‘유 도사’란 별명을 얻었다. 유 교수는 정작 ‘LH 사태 본질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LH 사태 예언이 화제였다. 
LH 내부 일은 잘 모르고, 대충 안다. 사실 ‘비리 공무원이 있다’는 게 핵심은 아니었다. ‘LH가 1~3기 신도시 개발 등으로 50년 넘게 관성적으로 본인들 먹거리 파이를 키워가고 있다’는 게 핵심이었다. 예언도 아니다.
신도시 개발이 본질적인 문제인가.
1960~70년대 사람들이 시골에서 도시로 오면서 농지를 택지로 바꾸는 등 신도시 개발이 많았다. 그게 LH 주요업무였다. 그동안 이 일 하던 직원들은 내부에서 요직을 차지했다. 또 퇴직하면 관련 업종 요직으로 갔다. 전관예우도 있었을 거고. 근데 이제 건축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보통 80% 중반이면 도시화가 끝났다고 보는데, 우리나라는 도시화율이 90%가 넘는다. 이런데도 LH가 계속 신도시를 만들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주 업무인 신도시 개발도 변해야 한다. 쪼그라드는 지방을 어떻게 밀도 있게 정리할지 고민할 시기다. 이게 핵심이다.
1978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밭을 가는 농부. 뒤편으로 현대 아파트 공사장이 보인다. 사진 서울시

1978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밭을 가는 농부. 뒤편으로 현대 아파트 공사장이 보인다. 사진 서울시

‘공공주도 개발이 국민을 소작농으로 만든다’고 비판했는데.
부동산 자본도 정부가 독점하면 부패한다. (부동산이) 소수에 집중되는 건 견제해야 한다. 중세 교회나 중국이 그랬다. 정부 부패는 곧 정치인의 부패를 말하는 거다. 아무리 지도자가 훌륭해도 주변이 부패한다. 그걸 혼자 컨트롤 못 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 성인군자는 없다.
“악당(시장)과 위선자(공공)를 잘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누가 더 나쁜가.
개인적으로 위선자가 더 싫다. 악당은 대놓고 욕먹는데 위선자는 욕도 안 먹는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인간들이 더 위험하고 나쁘다. 겉으로 많은 사람을 위하는 척하며 자기 이익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정의, 국민, 민족 같은 애매모호한 거대 담론을 말하는 사람을 경계하고 조심한다. 
시장이 만능은 아니지 않나.
물론 공공이 할 일이 있다. 집 살 생각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갭 투자로 수백 채씩 집 가진 사람들 찾아내야 한다. 이런 거는 놔두고 ‘한 사람이 이렇게 가지니까, 아예 우리(정부)가 다 가질게’라고 한다. 수백 채를 개인이 갖든, 정부가 갖든 똑같다. 그냥 ‘이놈’에서 ‘저놈’으로 옮긴 거다.
지난 달 27일 유현준(52)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수경PD

지난 달 27일 유현준(52)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수경PD

성악설을 믿나.
그렇다. 나 자신을 들여다봐도 착한 면이 별로 없다. 나한테 이익이 되는지,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보고 이기심으로 판단 내린다.  
건축은 다소 이타적인 일 아닌가.
맞다. 그렇다고 내가 돈 안 받고 일하는 건 아니다.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재능 기부다. 간혹 “너는 왜 재능기부 안 하니”라고 말하는 선배들이 있는데, 이걸 강요하면 재능으로 벌어 먹고살던 사람들이 굶어 죽거나 그 분야를 떠난다. 그렇게 떠난 젊은이들이 많다. 잘못된 시스템이다. 누군가 정말 기부를 원하면 실력 발휘해서 돈을 많이 벌고, 그 번 돈으로 기부해야 한다. 재능 말고.

“광화문 광장이 정치적 공간? NO”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를 계속한다. 도시 전문가로서 평가는.  
절반의 성공이다. 광장 양쪽에 6차선 있을 때보다 낫다. 어쨌든 세종문화회관 쪽 사람들은 광장 접근성이 높아진다. 근데 이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광화문 광장은 주변에 들어갈 가게가 없는 게 제일 큰 문제다. 세종문화회관부터 미국 대사관까지 1층이 단조롭다. 다양한 목적으로 올 이유가 없으니 사람들이 정치 집회 장소로 쓴다.
집회 장소로 쓰면 나쁜가.
나쁜 건 아닌데, 지금은 (광장에 대한) 아무런 프로그램이 없어서 세(勢)를 과시하는 갈등표출 공간밖에 안 된다. 다양한 생각과 목적으로 섞여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광장의 근본적인 목적은 시·공간 융합에 있다. 안 그러면 굳이 그렇게 넓은 공간이 필요할까. 광화문 광장이 자꾸 시위공간으로 쓰이는 건 결국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제 기능을 못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뽑은 지도자들이 국회에서 협상과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그런 걸 안 한다. 상대편과 대화했다고 이걸 변절로 여긴다. 제일 어이없던 게 서울시장 경선 때였나, 어느 후보자가 상대편 누구랑 얘기했다고 욕한 것을 봤다. 속으로 ‘제정신인가’ 생각했다. 대화를 안 하면 모든 정치가 전쟁이고, 혁명인가. 이러면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까.  
정치 갈등이 있던 시기마다 광화문 광장은 서로 다른 기억을 갖고 있다. 중앙DB·조은재PD

정치 갈등이 있던 시기마다 광화문 광장은 서로 다른 기억을 갖고 있다. 중앙DB·조은재PD

#권력 #공간 #건축

새로운 공간이 부와 권력을 창출하기도 한다.
기술혁명이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신흥부자를 만든다. 중세 유럽의 성장이 정체됐을 때 미국 신대륙은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부와 권력의 기회였다. 한국도 그렇다. 지방 소작농들이 농촌에서 도시로 건너가 부자가 될 기회를 잡았고. 1990년대 재벌기업이 경제를 장악했을 때, 네이버 같은 IT기업이 인터넷이란 새로운 가상공간을 찾아 신흥 재벌로 성장했다. 실제든 가상이든 기술혁명을 통해 다시 새로운 기회의 공간이 필요한 시기다.
인터넷 가상공간은 새로운 부자를 탄생시켰다. 조은재PD

인터넷 가상공간은 새로운 부자를 탄생시켰다. 조은재PD

어떤 공간에 기회가 될까.
자율주행 로봇이 다니는 물류 터널을 도시 지하에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지상에 차도 줄고 로봇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물류 터널을 이용해 벤처기업들이 성장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가상 말고 현실 공간에 기회가 있을까.
온라인 공간 변화는 오프라인으로 이어진다. ‘아마존’은 홀푸드마켓(Whole Foods Market · 미국 대형수퍼마켓 체인)을 사고 오프라인 슈퍼마켓 시장에 진출했다. 에어비앤비도 오프라인 사업으로 확장한다. 점점 오프라인 공간은 새로운 자본가들의 전유물이 되어간다. 코로나 19를 경험해서 알지만, 부자들은 돈을 써서라도 인구밀도가 낮고 안전한 곳을 찾는다. 이런 공간은 한정돼서 부자들이 더 많이 가질수록, 돈 없는 사람들은 내몰리듯 더 싼 공간이나 가상공간을 찾아 나선다. 그래서 돈 없는 초등학생들이 이런 곳을 먼저 간다. 싸이월드나 메타버스도 그렇다. 이들은 커피숍에 머물 돈도 없다. 오프라인에서 많은 시간을 쓴다면 (돈을) 많이 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돈이 많으면 비행기 타고 여행 다니며 자신만의 오프라인 공간을 넓힌다. 이건 인간의 본능이다. 공공이 필요한 지점이 여기다. 공원·도서관·체육시설 같은 오프라인 공간을 미리 확보해 더 많은 사람에게 돌려줘야한다.
온라인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수퍼마켓 체인 홀푸드마켓을 인수하며 오프라인 시장에 진출한다. 조은재PD

온라인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수퍼마켓 체인 홀푸드마켓을 인수하며 오프라인 시장에 진출한다. 조은재PD

“20대, 안타깝지만 부동산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지금 20·30세대는 아파트 같은 공간을 소유하기 힘들다.
적어도 30대는 집을 살 수 있어야 한다. 근데 20대는 힘들다. 정말 안타깝지만, 그들이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본다. 과감하게 이들에게 모기지(mortgage) 정책을 제대로 펴야 한다.
청년임대주택을 비판한 적 있다
이들을 위한 궁극적인 일이 아니지 않나. 좋게 말하면 ‘집 주겠다’는 건데, 나쁘게 보면 (청년들을) 계속 임대주택에 살게 해주고 싶은 거다. 정책을 바라는 아쉬운 사람 입장에 계속 두고 ‘표밭’으로 일군다. 중산층, 자산가가 되고 싶은 친구들에게 ‘왜 그런 욕심을 갖고 투기 세력이 되려고 하느냐’라고 말하면 자본주의 경제를 아예 무시하겠다는 거다. 자기(정부)만 자본가가 되겠다는 얘기다.
행복주택 등 소셜믹스(social mix) 정책도 있다.
겉보기에 ‘없는 자’와 ‘있는 자’가 어울려 사니까 좋아 보인다. 단 ‘자리바꿈’이 쉬워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너는 계속 못 살고, 나는 계속 잘 살게. 대신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이게 소셜 믹스다. 누군 언제든 VIP 라운지나 펜트하우스에 갈 수 있고, 누군 못 가는데 이런 주장 하면 안 된다. ‘사다리’를 만들고, 익명 상태에서 믹스를 해야지. 누가 얼마 벌고 직업이 뭔지, 집이 전세인지 월세인지 다 아는데 믹스가 될까.
서울 용산 한강로2가 역세권 청년주택 '용산 베르디움 프렌즈아파트'. 지난 2월 관계자가 견본주택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서울 용산 한강로2가 역세권 청년주택 '용산 베르디움 프렌즈아파트'. 지난 2월 관계자가 견본주택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예전에 쓴 책에선 '셰어하우스'나 '임대' 주거 방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는데. 
순진했을 때 썼다. 모든 걸 가질 수 없으니 빌려 쓰는 것도 좋다고 봤다. 그런데 가만 보니 공유경제도 자본가들이 더 많은 돈을 버는 방식일 뿐이었다. ‘위워크’는 사무실 없는 사람들에게 임시로 공간을 빌려주지만, 나중엔 이런 몇 개 기업이 사무실 임대시장을 모두 차지하게 된다. 셰어하우스도 멋진 인테리어와 그럴듯한 문화 공동체를 향유하는 공간으로 포장하지만 월세다. 평범한 월급쟁이들한텐 치명적이다. 나도 미국에서 6~7년간 월세를 살며 1억쯤 썼다. 그때 누가 그 돈을 빌려줬으면 대출받고 집을 샀겠지. 정부가 할 일이 이런 거 아닌가. 누구는 버젓이 있는 대출시스템으로 집 사서 자산 불리고, 누군 못하면 이런 상황을 돕는 게 정부 역할이다. 근데 ‘너 집 못 사니? 그럼 계속 월세로 살게 해줄게’라고 말한다. 이게 어떻게 정부 역할이고 젊은 세대를 위한 정책인가. 정신 차려야 한다.

‘이기적인’ 건축가의 꿈

유시민 이사장 등 tvN ‘알쓸신잡2’ 멤버들과는 어땠나. 
잘 지냈다. 나만 성향이 조금 달랐던 거 같은데 서로 이야기를 잘 들어줬고 정중하게 이견을 밝혔다. 끼리끼리 모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안 그래도 최근 유 이사장에게 안부 전할 겸 “제가 선생님을 한참 안 뵈었더니 너무 한 쪽(?)으로 가는 것 같다”고 연락했다.(웃음)
뭐라고 답이 왔나.
"나도 현준 쌤 못봐서 한 쪽으로 치우친 상태인듯" 이라고.(웃음)  
정치권 제안 받은 적 있나. 해 볼 생각은
한 정당에서 어떤 지역 후보로 출마하자는 제안 있었다. 단칼에 거절했다. 정치할 생각 전혀 없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많은 초선의원이 그렇듯 여의도 권력다툼의 프레임에 갇혀 포기하고 나올 것 같다. 정치든 행정이든 인사가 만사다. 나는 상대와 협상하고 감화시키는 재능이 없다. 개인주의자고 이기심이 많다. 착한 사람이 아니다. 나보다 착한 사람이 정치해야 한다.
꿈이나 목표는. 
모두 한곳을 볼 때, 다른 곳을 봐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 ‘소실점’을 옮겨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시야가 좁아지면 나와 다르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서로만 쳐다본다. 그런 면에서 존 F. 케네디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냉전 시대에 달나라로 시선을 옮겼다. 일론 머스크의 시선은 아예 화성을 향한다. 황당무계하지만 ‘제3의 것’을 제시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나도 그중 한 명이 되고 싶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영상=정수경·조은재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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