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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시시각각

암호화폐 광풍도 정치가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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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지난 2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암호화폐 시장을 띄우며 올린 이미지. 장난 삼아 만든 도지코인의 상징 시바견이 달 착륙을 한 모습을 그렸다. 테슬라는 지난 2월, 15억 달러 규모의 비트코인 투자를 발표하며 암호화폐 시장을 띄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테슬라는 이후 비트코인 2억7200만 달러 어치를 팔아 1억100만 달러의 차익을 거둬들였다. [머스크 트위터 캡처]

지난 2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암호화폐 시장을 띄우며 올린 이미지. 장난 삼아 만든 도지코인의 상징 시바견이 달 착륙을 한 모습을 그렸다. 테슬라는 지난 2월, 15억 달러 규모의 비트코인 투자를 발표하며 암호화폐 시장을 띄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테슬라는 이후 비트코인 2억7200만 달러 어치를 팔아 1억100만 달러의 차익을 거둬들였다. [머스크 트위터 캡처]

4년 전 비트코인이 선풍을 일으키자 칼럼도 쓰고, 전문가 인터뷰도 했다. 암호화폐의 근간이 된 블록체인 기술을 육성하고, 암호화폐 거래는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주문을 했었다. 그로부터 까맣게 잊었던 암호화폐에 다시 눈길이 간 건 지난해 말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면서다. 어느새 글로벌 금융회사와 테크 기업들이 암호화폐를 거래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미국·일본·독일·싱가포르·홍콩에서는 암호화폐를 제도권으로 편입한 것도 그 배경이 됐다.

라임·옵티머스 판박이 사태 우려 #정치권 끼어들자 정부는 손 놓아 #투기판 암호화폐는 막아야 한다

그 사이 분명해진 현실도 있다. 당초 기대와는 달리 암호화폐가 법정화폐의 자리를 대체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퀴즈 하나. 당장 암호화폐를 사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돈이다. 돈 없으면 암호화폐를 살 수 없다. 암호화폐는 가치를 저장하고, 언제든 통용되고, 이자도 붙는 법정화폐가 될 수 없다는 핵심 방증이다. 다만 일부 금융 및 테크 기업이 몇몇 암호화폐를 가상자산 또는 거래수단으로 받아들여 그 암호화폐가 돈의 보조수단처럼 되는 것은 거스를 수 없어 보인다.

그 생생한 현장이 바로 암호화폐 거래소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암호화폐 거래 실태와 관련돼 쏟아진 뉴스를 보면 그야말로 “오마이 갓!”이다. 현 정부가 4년째 방관하는 사이 한국의 암호화폐 시장은 무정부 상태로 전락해 있었다. 왜 그런지 보자. 미국·일본·독일 등은 암호화폐를 발행하려면 정부의 심사부터 받아야 한다. 검증되지 않으면 거래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한국은 아무런 규정이 없다. 200개나 난립한 암호화폐 거래소가 엿장수 마음대로 암호화폐를 상장시키고, 어느날 갑자기 상장을 폐지하기도 한다. 피해자는 어디 가 하소연할 곳도 없다. 4년 전 “암호화폐 거래를 금지하겠다”에 이어 최근 “투자자들까지 정부에서 다 보호할 수는 없다”(은성수 금융위원장)는 게 정부 입장이다. 한국은 암호화폐 무법지대가 됐다.

그 결과 암호화폐 시장은 사실상 카지노가 됐다. 여기서는 돈 따는 게 최대 목표다. 화투나 슬롯머신조차 최소한 그림이라도 맞추게 되지만, 암호화폐 매매는 이런 것조차 없다. 전문가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냥 사고 그냥 판다. 결과적으로 피라미드식 폰지 시스템이나 다름없다. 4년 전 비트코인을 사들인 사람은 자고 나면 가격이 올라 돈을 버는 구조다.

이런 본말전도가 없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하나의 응용 사례에 불과하다. 그 본질인 블록체인 기술 활용에 대한 논의는 정작 활발하지 않다. 도지코인 광풍에서 드러났듯 비트코인 및 알트코인의 알고리즘을 베끼면 금세 코인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암호화폐의 현실이다. 비트코인 이후 각종 코인이 1만 개에 이를 만큼 끝없이 쏟아지는 배경이다.

정부는 당장 할 일을 해야 한다. 정치권의 압력이 부담스러운 것은 안다. 4년 전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코인 투자에 인생을 건 2030세대의 반발을 자극할까 싶어 눈치 보는 정치권 때문에 정부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주식 공매도 금지 연장 때와 판박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금융시장을 왜곡시키는 것을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라임·옵티머스 사태 때처럼 선량한 국민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는 광경을 또 보고 싶은가. 개인들에게 팔아서는 안 될 사모펀드가 어떻게 수많은 개인에게 판매됐는가도 내막을 알고 보면 정치 과잉에서 찾을 수 있다. 금융투자의 본고장인 미국에서조차 사모펀드는 리스크가 커 개인에게 판매하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그렇게 설계됐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왜 부자들에게만 투자 기회를 주느냐고 개입하면서 투자 문턱을 낮춘 결과 개인들이 휘말려들게 됐다.

1929년 대공황 직전, 슈샤인보이가 주식계좌를 트는 것을 보고 발 빠른 사람들은 주식을 몽땅 팔았다. 하루 주식 거래 규모를 초과한 암호화폐 광풍은 정상이 아니다. 정부는 블록체인 기술 육성과 암호화폐 시장 제도화에 나서야 한다. 더 방관하면 손을 쓸 수 없다.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