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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영환의 지방시대

수도권대 정원 억제로 중소 지방대 숨통 틔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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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지방대학 위기, 일본은

일본은 수도권 대학을 겨냥한 정원 초과 억제 정책으로 지방의 정원 미달 사립대를 줄이고 있다. 일본의 올해 대입 수험생들이 1월 16일 도쿄대에서 우리의 수학능력시험 격인 대입공통테스트를 치고 있는 모습. [지지통신]

일본은 수도권 대학을 겨냥한 정원 초과 억제 정책으로 지방의 정원 미달 사립대를 줄이고 있다. 일본의 올해 대입 수험생들이 1월 16일 도쿄대에서 우리의 수학능력시험 격인 대입공통테스트를 치고 있는 모습. [지지통신]

지방대학이 휘청거리고 있다. 올해 대입 정원(4년제+전문대 55만여명)이 수능 응시자(42만여명)를 웃도는 산술적 대학 전원 입학시대의 부메랑이 외곽부터 때렸다. 지방대 대량 미달은 올 것이 온 사태다. 18세 대입 학령인구가 2017~2019년 60만명 안팎에서 지난해 51만명, 올해 47만명으로 줄면서다. 2035년부턴 30만명대로 내려앉는다(통계청 2019 장래인구 추계). 지난해 출생아 수는 27만여명이다. 고도성장, 가방끈 신화가 빚은 대학 버블 붕괴는 눈앞의 현실이다.

수도권 집중 해소, 지방창생 차원서 #정원 초과 많은 사립대에 지원 없애 #지방 미달대 비율 40%대→31%로 #10년간 도쿄 23구내 정원 증가 금지 #경영 악화 사립대 학부 양도도 길 터

거품은 약한 고리부터 터지기 마련이다. 지방은 젊은이 감소세가 두드러지고, 수험생의 수도권 전출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자퇴·미등록을 통한 지방대 재학생의 수도권대 엑소더스도 만만찮다. 해외 유학생이나 사회인 입학은 지방대에 구원의 동아줄이지만 굵지가 않다. 지방대 위기는 시작의 시작일 뿐이다. 학령인구 추이만이 아니다. 그동안 축적돼온 수도권 블랙홀·지방 소멸의 망국적 흐름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지방대의 축소·도태는 대학에 국한하지 않는다. 지역 경제와 경쟁력이 추락한다. 거대 악순환을 끊는 일은 간단치 않다.

일본은 우리와 대입·대학 제도나 정원 규모가 다르지만, 트렌드는 비슷하다. 18세 인구가 현재 110만명대에서 2023년 100만명대, 2032년 90만명대, 2039년 80만명대로 준다(총무성 통계국 추계). 지방 중소 사립대의 정원 미달이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1989~2019년의 30년간 생겨난 4년제 대학만 약 300개교다. 1년에 10개꼴이다. 대입 학령인구는 줄지만 4년제 진학률 상승과 2004년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설립 규제 완화 때문이다. 니시이 야스히코 사학고등교육연구소 주간(슈지츠가쿠엔 이사장)은 “대학 증가는 사립 단기대(우리의 전문대 격)의 4년제 승격과 시대의 수요에 부응한 의료보건계 등 소규모 대학 설립 때문”이라며 “단기대는 97년 595개교에서 2015년 346개교로 감소했고, 폐교 단기대(249개교) 중 약 절반이 4년제 대학이나 대학 학부로 승격했다”고 말했다.

일본 18세 학령인구 추계

일본 18세 학령인구 추계

사립대가 늘면서 지방 중소 대학을 중심으로 정원미달이 잇따랐다. 2006년 이래 10년간 사립대의 약 40%(200여교)가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했다(그래픽 참조). 정원 미달 사립대 비율은 2017년(39.4%·229개교) 이래 30%대로 떨어지면서 지난해는 31%(184개교)를 기록했다. 정원미달 사립대의 감소세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수도권 대학을 겨냥한 정원 억제다. 2017년 기준 도쿄권(도쿄도+가나가와·지바·사이타마 현) 대학생은 전체(287만명)의 40%를, 도쿄 23구는 18%를 차지한다. 정책이 아베 내각의 간판정책인 지방창생(創生) 차원에서 이뤄진 점은 주목거리다. 일본 정부는 2015년 각의 결정한 ‘지방창생 기본방침’에서 지방대 활성화를 내걸고 대도시권 학생 집중 억제책으로 정원 관리 엄격화를 내놓았다.

문부과학성이 이듬해부터 3년간 실시한 조치는 경상비보조금 통제였다. 일본은 사립대의 경우 정원 초과, 미달 모두에 대해 그 비율에 맞춰 보조금을 교부하지 않거나 삭감해왔다. 교직원 급여와 교육·연구 경비에 쓰이는 보조금은 올해 2978억3515만엔(약 3조원)으로, 사립대 경상비의 약 10%다. 사립대엔 생명줄이다. 정원 8000명 이상 사립대를 보자. 2015년까지 보조금을 교부하지 않는 정원 초과율은 1.2배 이상이었다. 이를 2016년 1.17배, 2017년 1.14배, 2018년 1.1배로 낮췄다. 그 결과, 3대 도시권(도쿄권+오사카·교토부+아이치·효고현) 전체 대학의 평균 정원 충원율은 2014년 106.22%에서 2018년 103.18%로 낮아졌다. 그 외 지역은 95.87%에서 100.81%로 올라갔다.

일본 정원미달 사립대 비율 추이

일본 정원미달 사립대 비율 추이

문부과학성은 효과가 나자 2019년 이후론 정원 충원율이 90~100%이면 보조금을 증액하고, 100% 초과에 대한 감액 조치는 일단 보류했다. 2018년 도쿄 23개구 대학에 대해 유학생과 사회인을 제외한 정원 증가와 대학·학부 신설을 10년간 원칙 금지하는 지역대학진흥법이 성립한 것과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법은 지방대학·기업과 연계해 인재육성과 고용창출에 나서는 지자체에 대한 교부금 창설도 담았다.

이 법의 촉매는 광역단체장 모임인 전국지사회(知事會)의 2016년 11월 긴급 결의였다. 지사회는 “젊은이의 도쿄 일극 집중에 제동을 걸고, 도쿄권과 지방 간의 전입·전출의 조기 균형을 위해 도쿄 23구의 대학·학부의 신증설을 억제해야 한다”며 입법 조치를 촉구했다. 문부과학성은 내년부터 지방창생 기여를 조건으로 지방 국립대의 정원 증가를 허용한다. 사립대는 반발하지만, 대학 정책을 수도권 집중 해소와 지방창생에 맞추겠다는 의지다.

대학 개혁에는 재계의 총본산 게이단렌(經團連)도 나섰다. 2018년 6월 제언을 통해 대학 간 연대·재편, 통합을 통한 대학 수의 적정화를 촉구했다. 진학생 감소에 따른 적자·정원 미달 대학의 증가 때문이다. 그해 지방 중소 사립대 335개교의 47.8%(160곳)가, 지방 중소 단기대 204개교의 62.7%(128곳)가 적자였다(사립학교진흥·공제사업단). 게이단렌은 그러면서 국립대의 ‘1 대학 1 법인’제도 개정, 국공사립을 넘는 운영법인 인가, 사립대의 학부·학과 단위 사업양도 허용을 주장했다. 제언 5개월 후 나온 중앙교육심의회 답신(2040년을 향한 고등교육의 그랜드 디자인)에는 이들 내용이 포함됐다.

학부 양도는 지난해 4월 처음 이뤄졌다. 고베시 고베야마테대가 유일 설치 학부인 현대사회학부를 효고현 미키시의 간사이국제대에 양도하고 법인도 통합했다. 학교 건물, 학생, 교직원은 그대로 인계됐다. 이 과정에서 문부과학성은 규제를 완화했다. 2019년 사립학교법 시행규칙을 고쳐 과거 양도 대학의 학부 폐지와 이전 대학의 학부 신설이 필요한 절차를 간소화했다. 새 제도는 대학원 연구과, 단기대 학과에도 적용된다. 하마나 아츠시 간사이국제대 학장은 “학부 양도는 경영 악화 대학과 학부의 원활한 이전을 통해 재학생을 지키고, 대학과 학부의 재생을 가능케 한다”며 “사립대가 문을 닫지 않고 지역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공급하는 새로운 선택지”라고 했다(일본사립대협회 홈페이지).

국립대의 1개 법인 복수대학 제도도 2019년 법제화됐다. 대학의 독립·재산을 유지하면서 경영관리부문을 통합하는 방식이다. 아이치현 나고야대와 기후현 기후대는 광역단체 경계를 넘는 통합법인 도카이국립대학기구를 지난해 설립했다. 사무 슬림화로 생긴 재원을 중점 연구분야인 당쇄(糖鎖) 공학, 항공우주, 농학으로 돌린다. 세계와 경쟁하겠다는 생각이다. 홋카이도에선 오비히로축산대, 기타미공업대, 오타루상과대가 내년에 경영을 통합한다. 농·공·상을 융합해 지역 과제에 대응하는 인재를 육성할 방침이다. 홋카이도는 대표적 인구 과소지역이다. 국립대 통합 움직임은 확산하는 추세다.

법인 통합보다 느슨한 ‘대학 등 연대추진법인(사단법인)’제도도 물꼬를 텄다. 올 3월 당국의 승인을 받은 국립 야마나시대와 야마나시현립대 간 ‘대학동맹 야마나시’가 그 1호다. 두 대학은 교양 교육·교원양성·유아교육 등 분야 공유 외에 물품 공통조달과 시설 공동 이용에 나섰다. 시미즈 가즈히코 야마나시현립대 학장은 “새 법인은 그동안 계속돼온 조직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프로그램 중심의 대학으로 이행하는 혁신적인 제도”라고 말했다(기고문). 도쿠시마대 등 시코쿠 5개 국립대도 올해 연대기구를 설립해 법인 승인을 꾀하고 있다. 지방에선 학생 확보가 어려운 중소 사립대의 공립대 전환도 적잖다.

지방대 위기는 대학의 문제, 교육 당국의 영역으로 봐선 탈출구가 없어 보인다. 복합 처방이 필요하다. 산업계와 지자체 등도 함께 나서 포괄적 중장기 대책을 마련할 때다.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