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대통령과 삼총사

중앙일보

입력 2021.05.05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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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팀장
서승욱 정치팀장

서승욱 정치팀장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지사 등 전통적인 보수 진영 정치인들의 대선 지지율 정체가 이어지고 있다. 보수 유권자 시장에선 출마 의향을 밝히지 않았거나 데뷔 의사가 확인되지 않은 장외 우량주의 주가가 대신 치솟고 있다.

야권 러브콜 윤석열·최재형·김동연
문 대통령이 직접 등용했던 인사들
내로남불, 진영정치가 빚어낸 역설

야권 잠재 주자들 중 지지율 선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표적이다. 잠행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최근 동선을 뒤쫓는 이는 기자들뿐만이 아니다. 정치적 동행을 꿈꾸는 정치인들이 모두 안테나를 세우고 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해 총선 때부터 “여기저기 다녀 보니 윤석열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더라. 선거 운동하면서 그 사람 얘기를 많이 하라”고 주변에 권유했다고 한다. 측근에 따르면 그때부터 “윤석열과 라인을 구축해야 한다”며 접촉도 시도했다. “별의 순간”운운하기 1년 전부터 동물적 감각으로 ‘정치인 윤석열’의 가능성을 알아챘던 모양이다.

윤 전 총장이 향후 야권의 대선 후보 선출 국면에서 주도권을 쥘 것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그가 후보 자리를 거머쥐는 해피엔딩이든, 본선행에 실패하는 비극이든, 야권분열로 복수 후보가 출마하는 막장극이든 드라마는 일단 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뜻이다.

윤 전 총장 못지않게 보수층의 기대를 받는 이가 최재형 감사원장이다. 정권의 전방위적 압박 속에서도 1년여에 걸친 ‘월성 1호기 조기폐쇄 적절성’ 감사를 관철해낸 뚝심이 자산이다. 과거 경기고 재학시절 몸이 아픈 친구를 2년동안 업고 다녔고, 아들 둘을 입양해 키웠다. 또 구호단체에도 수천만원을 기부했다. 정치에 뜻을 드러낸 적이 없지만, 보수 식자층에선 “보수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카드” “윤 전 총장은 킹메이커, 후보는 최 원장”이라는 기대감이 쏟아진다. 감사원 내부에서도 “최 원장 취임 뒤 감사원의 인지도가 높아졌고, 직원들의 자긍심이 커졌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서소문 포럼 5/5

서소문 포럼 5/5

야권 인사인지, 여권 인사인지 애매하지만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사령탑인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문 대통령에게서 총리직 제안을 받았다고 실토한 뒤에도 야권에서 러브콜이 쇄도한다. 김종인 전 위원장이 사석에서 “윤 전 총장이 불출마할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며 플랜B로 그를 지목했을 정도다. 최 원장이 ‘미담 제조기’라면, 그에겐 흙수저 출신의 인생 역전 드라마가 있다. 11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무허가 판자촌과 천막촌을 전전하며 상고와 야간 대학을 마쳤다. 주일특파원 시절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 주최 포럼에서 현직 부총리였던 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동아시아 고대사와 한·중·일 3국 관계를 조망하는 강연 내용에 당초 ‘실무 경제 강의’ 쯤을 예상했던 닛케이 간부들이 “스케일이 일본 관료와 다르다”고 놀라는 걸 봤다.

공교롭게 이들 세 명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냈거나 수행중이란 공통점이 있다. 현 정권과의 긴장과 갈등 속에서 존재감과 무게를 키웠다는 점도 같다.

윤 전 총장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임명장 수여식에서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자세를 끝까지 지켜달라.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돼야 한다”던 문 대통령의 발언과 이후 윤 전 총장이 걸었던 고난의 세월이 오버랩된다. 조국 사태와 ‘추-윤 갈등’에서 현 정권의 내로남불과 위선이 발각되지 않았다면 윤 전 총장이 정치적으로 뜰 일도 없었다.

최 원장을 임명하면서 문 대통령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불공정의 관행을 잘 살펴달라”고 했는데 이 역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월성 원전 조기 폐쇄, 전교조 해직교사 특별 채용,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등에서의 불공정이 ‘최재형 감사원’의 철퇴를 맞았다. 월성 원전 감사 과정에서 최 원장에게 쏟아진 여권의 압박과 조롱은 “원전=악”이라는 교조주의적 이분법의 결정판이었다.

김 전 부총리는 지난 2018년 12월 퇴임사에서 “경제 상황을 국민들에게 그대로 알려주고,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 “정책의 출발점은 경제 상황과 문제에 대한 객관적 진단”이란 말을 남겼다. 임기 내내 ‘소득주도 성장’을 놓고 청와대와 대립했던 그는 요즘 “미래의 화두는 철 지난 진영도 이념도 아니고, 흑백논리도 아니다”라며 전국을 돌고 있다.

문 대통령이 등용한 세 사람이 ‘정의와 상식’ ‘공정’ ‘진영을 초월한 미래 화두’를 무기로 야권의 러브콜을 받는 초유의 상황이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는데, 이 역설적 상황의 결말이 사뭇 궁금해진다.

서승욱 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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