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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기자회견이 사퇴···홍원식 눈물, 남양유업 갑질오명 벗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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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자 저는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또한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습니다.”  

홍원식(71ㆍ사진) 남양유업 회장이 결국 사퇴했다. 그는 4일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의 '불가리스 사태'와 그간 수차례 불거졌던 각종 논란에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사과했다. 홍 회장은 5분 남짓 사과문을 읽으며 두 차례 허리를 굽혔고 울먹이다 끝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사퇴는 1977년 남양유업 기획실 부장으로 경영에 참여한 지 44년 만이다.

홍 회장은 기자회견 예정시간인 오전 10시에 맞춰 회견장에 등장했다. 그는 최근 불가리스 사태부터 2013년 대리점 ‘밀어내기 갑질’ 논란, 2019년 외조카 황하나 씨의 마약 투약 사건, 2020년 매일유업 비방글 작성 사건을 차례로 언급했다. 그동안 그는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살을 깎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남양을 만들어갈 우리 직원들을 다시 한번 믿어주시고 성원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떴다. 별도의 질의응답은 없었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불가리스 사태'와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통해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장진영 기자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불가리스 사태'와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통해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장진영 기자

남양유업 이끈 지 44년 만에 '눈물의 사퇴'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최근 자사 유제품 불가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발표로 빚어진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며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최근 자사 유제품 불가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발표로 빚어진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며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홍 회장의 퇴진을 불러온 불가리스 사태는 지난달 13일 한국의과학연구원 주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 발효유가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를 77.8% 저감한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시작됐다. 질병관리청은 즉각 “사람 대상의 연구가 수반돼야 한다”라며 문제를 제기했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남양유업이 해당 연구 및 심포지엄 개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점을 확인했다”며 남양유업을 고발했다. 이후 경찰은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을 벌이며 강제수사에 나섰고 세종시는 남양유업 세종공장에 2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을 벌이는 등 비난 여론이 거셌다.

남양유업은 그동안 수차례 논란에 휩싸였지만 홍 회장이 카메라 앞에 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13년 밀어내가 갑질 논란 때는 본인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사과 기자회견장에는 김웅 당시 대표와 본부장급 임원 10여명만 참석했다. 외조카 황씨가 마약 투약 혐의로 재판을 받던 날엔 본인 명의의 사과문을 내고 별도의 기자회견을 열진 않았다. 경쟁사인 매일유업에 대한 비방글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을 땐 홍 회장이 아닌 회사가 사과했다. 그동안 카메라 앞에 서지 않던 그의 첫 기자회견은 사퇴 선언이 됐다.

끊임없는 오너리스크에 2위로 밀려나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불가리스 사태'와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마치고 퇴장하고 있다. 뉴스1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불가리스 사태'와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마치고 퇴장하고 있다. 뉴스1

남양유업 창업주 고 홍두영 명예회장의 장남인 홍 회장은 1977년 입사 후 1988년 부사장을 거쳐 1990년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그는 2003년 리베이트 사건으로 구속된 이후 회장을 맡으며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했지만, 오너이자 최대 주주로서 남양유업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왔다. 남양유업의 한 직원은 “불가리스 사태로 (지난 3일 사의를 밝힌) 이광범 대표와 홍 회장까지 회사의 두 축이 한꺼번에 물러났다”고 말했다.

남양유업은 1964년 설립 이후 IMF 금융위기 때도 무차입 경영 신화를 쓰면서 2009년 첫 매출 1조 원을 돌파하는 등 성장 가도를 달렸다. 그러다 2013년 대리점 밀어내기 사태를 계기로 이듬해 50년 가까이 지켜오던 시장 1위 자리를 매일유업에 내줬다. 이후에도 각종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갑질 기업’이란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매일유업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져 지난해 매출액 차이가 7000억원까지 커졌다.

홍 회장이 2003년 구속된 것은 충남 천안에 남양유업 공장을 지으면서 13억원의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가 터졌기 때문이다. 2018년엔 차명주식을 보유한 혐의로 벌금 1억원을 선고받았다. 현재는 경쟁사인 매일유업 비방글을 작성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다. 또 홍 회장은 1999년 장남인 홍진석 상무의 병역 비리 사건에 관여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고, 리베이트 사건에 대한 특별사면을 받은 지 1년 만인 2008년엔 만 1세이던 손자에게 남양유업 주식 1794주를 증여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장남 홍 상무는 지난 1월 기획마케팅총괄본부장에 올랐지만, 불가리스 사태가 터진 이후인 지난달 회삿돈으로 외제 차를 빌려 타고 다녔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사직했다.

홍 회장 지분 51.68%, 이사회 절반이 오너 일가  

홍 회장이 이날 경영 일선에서 사퇴를 선언했지만, 남양유업에서 오너 일가의 지배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남양유업이 지난 3월 공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홍 회장은 남양유업 전체 지분 중 절반 이상(51.68%)을 보유한 대주주다. 또 부인과 동생, 손자의 지분율도 각각 0.89%, 0.45%, 0.06%다. 이사회 6명 중 3명이 홍 회장 본인과 90대 모친, 장남 홍 상무 등 오너 일가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남양유업의 향후 경영과 관련해선 현재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이사회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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