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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부실 급식 논란에···軍수사관 들이닥쳐 제보자 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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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휴가 복귀한 격리 병사에게 제공된 부실 배식, 생일 케이크 대신 나온 1000원 짜리 PX(군 매점) 빵, 풋살 도중 부사관으로부터 얻어맞은 병사, 천식을 앓는 훈련병에게 내려진 감기약 처방….‘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라는 페이스북(페북) 계정에 이런 익명 제보가 연일 올라오면서 군이 발칵 뒤집혔다.

'이대남' 병사 '육대전' 제보에, 폰만 탓하는 '아재' 간부들

지난 2일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익명 제보 관련 사진. 육군 1사단 예하부대의 휴가 복귀 후 격리 병사가 지난 2일 저녁 식단으로 나온 것이라며 찍어서 육대전 측에 제보한 것이다. [육대전 페이스북 캡처]

지난 2일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익명 제보 관련 사진. 육군 1사단 예하부대의 휴가 복귀 후 격리 병사가 지난 2일 저녁 식단으로 나온 것이라며 찍어서 육대전 측에 제보한 것이다. [육대전 페이스북 캡처]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직접 사과에 나설 만큼 논란거리를 연일 생산해내다 보니 군 간부들은 말 그대로 노심초사다. 문제점이 불거질 때마다 군 당국과 해당 부대는 뒷수습하기에 바쁘다.

이런 디지털 ‘소원수리’를 냈던 병사가 징계 등 불이익을 받으면 또다시 2차 제보로 이어진다. ‘#육대전’이란 줄임말 해시태그(SNS 게시물 검색을 용이하게 하는 단어)를 두고 ‘이대남’(20대 남성) 병사‘아재’ 간부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린다.

#군 해명은 ‘답정너’

일요일인 지난 2일에도 육대전 페북에는 어김없이 익명 제보가 올라왔다. 제보를 받은 육대전 운영자가 정리한 게시물에 따르면 부실 배식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밥, 김자반, 깍두기, 김치 등으로 구성된 또 다른 부실 배식 사례(육군 1사단), 휴일에 부대 지휘관의 고양이 생포 지시(육군 2기갑여단), 코로나19 상황 속 간부들의 집단 축구 및 회식(육군 7군단) 등이었다.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는 병사들의 고충은 물론 각종 군 관련 정보를 전파하는 창구 역할도 한다. [육대전 페이스북 캡처]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는 병사들의 고충은 물론 각종 군 관련 정보를 전파하는 창구 역할도 한다. [육대전 페이스북 캡처]

이튿날인 3일 육군은 이런 제보 내용에 사실 관계를 따지면서도 “더 세밀하고 정성 어린 관심을 기울이겠다” “지침 위반 여부를 철저히 확인해 관련 규정에 따라 조치하겠다”는 등 ‘답정너’식 판박이 입장을 내놨다.

육대전 페북 팔로워는 3일 기준 14만6000여명에 이른다. 새 게시물이 올라올 때마다 현역병과 예비역, ‘곰신’(고무신의 줄임말)으로 불리는 여자친구,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 등 수많은 이들이 득달같이 상황을 공유하고 격정을 쏟아낸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달 10일 오전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의 훈련병들이 연무읍 연무문화체육센터 사전투표소장으로 들어가기 전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달 10일 오전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의 훈련병들이 연무읍 연무문화체육센터 사전투표소장으로 들어가기 전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특히 육군훈련소에서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훈련병들이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이용하지 못한다는 제보가 올라오자 부모 세대가 울컥했다.

훈련병 아들을 둔 한 어머니는 “자타 성격 좋은 내 아들이 (훈련) 3주차 지나면서 화장실도 편해졌고 지낼만하다고 말하던데, 내 아들이 훈련소에 있어서 딱히 말도 못하고…”라며 댓글로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인터넷 신문으로 등록

육대전의 등장은 내무반(병사 생활관)에 ‘휴대폰 시대’가 열리면서다. 국방부가 지난해 7월부터 일과 후 휴대폰 사용을 전면 허용하면서 더 활성화됐다.

육대전 운영자 김주원씨는 3일 중앙일보에 “지난해 2월에도 격리 병사들의 부실 배식을 전해 이슈가 됐지만, 이번만큼 반향이 크지는 않았다”며 “휴대폰 사용이 전면 허용되면서 사진 제보가 많아진 게 역할이 컸다”고 말했다.    

연예뉴스 등 흥미 위주의 게시물이 많은 군대나무숲(대학 익명 게시판인 ‘대나무숲’에서 따온 이름, 팔로어 10만여명) 페북과 달리 육대전 페북은 병사들의 ‘소원수리’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렇다고 병사들의 고충만 올라오는 건 아니다. 올해 나온 새 육군 군가(육군, We 육군)처럼 군 생활 관련 각종 정보를 전파하는 창구 역할도 한다.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 운영진은 지난해 6월 서울시에 인터넷신문 사업 등록까지 했다. 사업 등록증에는 발행 목적을 “군인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시키며, 군대에 관한 정보 등을 전파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육대전 블로그 캡처]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 운영진은 지난해 6월 서울시에 인터넷신문 사업 등록까지 했다. 사업 등록증에는 발행 목적을 “군인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시키며, 군대에 관한 정보 등을 전파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육대전 블로그 캡처]

김주원씨는 지난해 6월 서울시에 인터넷신문 사업 등록까지 했다. 사업 등록증에는 발행 목적을“군인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며, 군대에 관한 정보 등을 전파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김씨는 “부실 배식을 처음 이슈화한 지난해 2월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관이 집을 찾아와 제보자에 대해 묻고 갔다”며 “살짝 무서운 생각도 들었고, 개인 활동이 아닌 공익 차원의 활동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인터넷신문으로 등록하게 됐다”고 밝혔다.    

#휴대폰 사용이 문제?

육대전 제보에 군 간부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부대마다 제반 사정이 다르다 보니 배식 등 여러 부분에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특히 병사들이 집중된 육군에서 그런 사례가 많은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당수 지휘관과 간부들은 휴대폰 전면 사용이 문제를 키웠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다른 목소리를 낸다. 양욱 한남대 경영ㆍ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안에서 해결되지 않고 곪아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낼 수 있는 건 이런 휴대폰 덕분”이라며 “군이 매번 국방개혁을 외치면서도 정작 가장 기본적인 배식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공론화시킨 주역”이라고 짚었다.

박재민 국방차관도 지난 1일 연합뉴스TV에 출연해 “이런 문제가 과거처럼 은폐되거나 숨겨져 곪아가는 것보다 조속히 문제가 해결되도록 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일과 후 생활관에서 병사들이 통화와 문자메시지 전송, 인터넷 강의 시청 등 자유롭게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일과 후 생활관에서 병사들이 통화와 문자메시지 전송, 인터넷 강의 시청 등 자유롭게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문제는 군 당국이 늘 쇄신을 말해도 고질적인 병폐는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근한 예로 국방부가 부실 배식 엄단을 얘기하고 육군참모총장이 부대 방문 때마다 간곡히 사정해도 또 다른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급기야 지난 2일 육군은 장병 및 국민과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육군이 소통합니다’라는 페북 채널까지 새로 개설했다.

하지만 군 안팎에선 ‘땜질 처방’이란 비판이 나온다. 한 군 관계자는 “소원수리를 냈다가 관심병으로 낙인 찍히는 걸 두려워하는 병사들에게 육군이 주도하는 페북이 소통 창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난센스”라며 “사고 터지면 해명하는 창구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김상진ㆍ박용한 기자 kine3@joongang.co.kr

▶'육대전' 운영자 김주원씨 인터뷰
"지난해 '부실 배식' 이슈화되자 군 수사관 집에 들이닥쳤다"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의 운영자인 김주원(27)씨는 육대전 페이스북(페북)을 혼자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신문 사업자 등록을 한 '1인 미디어'인 셈이다. 김씨는 지난 2016년 육군 병장으로 전역한 직후 육대전 페이지를 개설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육대전을 개설한 이유는. 
군 복무 당시에 부조리한 상황을 많이 목격했지만, 당시에는 그런 것을 소통할 창구가 마땅치 않았다. 다른 전역자들도 공감하겠지만 '지휘관과의 대화시간' 등이 있어도 제보할 엄두를 못냈다. 지휘관에 대한 문제를 당사자에게 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고, 다른 경로로 소원수리를 한다고 해도 색출되면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전역하고 나서 그런 소통 창구를 하나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육대전을 개설하게 됐다. 
육대전 제보 내용이 사회적으로 큰 방향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 지난해 2월에도 격리 병사들의 부실 배식을 이슈화했다. 그런데 그때는 지금처럼 반향이 크지는 않았다. 역시 지난해 7월부터 휴대폰 사용이 전면 허용되면서 사진 제보가 많아진 역할이 크다. 또 현역병들이 육대전 페이지를 많이 알게 되면서 제보도 많아졌다. 
인터넷신문 사업자 등록까지 냈다. 
지난해 2월 부실 배식 제보를 공개하고 사회 이슈가 되자 문제가 생겼다. 느닷없이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관이 우리집에 찾아와 제보자가 누구인지를 캐물었다. 개인 정보여서 제보자에게 물어보고 알려주겠다고 한 뒤 돌려보냈는데, 살짝 무서웠다. 그래서 육대전이 개인 활동이 아닌 공익 차원의 활동이라는 것을 알리고 언론으로 보호를 받기 위해서 인터넷신문 등록을 했다. 
그 뒤로 군 당국에서 연락 온 적은 없나. 
이후로는 없다. 
같은 이름의 네이버카페도 따로 개설했는데.
아무래도 페이스북은 실명과 연동되는 부분이 있어서 익명성에 한계가 있다. 네이버의 경우 닉네임으로 활동할 수 있어서 익명성 부분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네이버 카페를 개설했는데, 그래도 주는 페이스북이다.
앞으로 계획은. 
지금까지는 혼자서 페이스북을 운영해왔지만, 앞으로는 민간 군 인권 단체를 만들고 싶다. 아직은 지인 몇몇과 준비하고 있는데, 조만간 회원을 모집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공지를 띄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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