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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예영준의 시시각각

세상은 선의<善意>만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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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비축량이 2주 뒤 바닥나는 등 백신 보릿고개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2차 접종을 맞는 장면 [청와대사진기자단]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비축량이 2주 뒤 바닥나는 등 백신 보릿고개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2차 접종을 맞는 장면 [청와대사진기자단]

백신 보릿고개가 닥치고야 말았다. 정부는 수급 계획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바닥을 드러낸 비축량이다. 아직 집단면역까지는 갈 길이 먼데 우리 국민은 백신 하루살이 신세가 됐다는 의미 아닌가. 이제 와서 러시아 백신 도입을 검토 중이라 하고, 일각에선 이스라엘의 여분 백신을 받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다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 성사되면 중국 백신 도입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지 말란 법이 없다. 이게 우리만 겪는 일이 아니라면 기꺼이 참고 견디겠다. 하지만 백신 확보 레이스에서 앞서간 나라들이 빠른 속도로 일상으로 복귀 중인 것을 지켜보자니 속이 터지고 화살이 저절로 정부를 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현실을 내탓이 아닌 남탓으로 돌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각자도생과 백신 개발국의 자국 우선주의, 강대국들의 백신 사재기를 싸잡아 비판했다. 감염병은 국제연대와의 협력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신념은 이론의 여지 없이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미국이 여분 백신 6000만 회분을 외국에 내놓겠다고 했고, 그중 2000만 회분을 인도에 주겠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미안하지만 순수한 인도주의의 발로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미국이 먼저 (즉, 아메리카 퍼스트) 살고, 여력이 되니 다음 순서로 국제사회를 돕겠다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국 우선주의’라고 몰아세우는 것도 득책이 아니다. 고래로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고 했고,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세상사의 철리다. 그러니 이런 판에 인류애와 국제연대를 얘기하는 게 잘못은 아니지만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는 공허한 얘기가 되기 십상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G20 화상회의 때도 “백신의 공평한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세계보건기구의 노력에 적극 참여하고, 코백스에도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통령의 이런 신념이 백신 도입 과정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닌지 의심을 떨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모사드가 소리소문 없이 움직일 때 우리만 공평하게 나눠 갖자며 코백스 동참 운운하는 사이에 골든타임을 놓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선의(善意)만 믿고 있다가 정부가 응당 했어야 할 일을 놓친 게 아니냔 말이다.
 따지고 보면 백신만 그런 게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국내 정책에도 선의에 기대는 정책들이 적지 않다. 한때 대대적으로 띄우다 지금은 시들해진 ‘착한 임대료’ 정책도 그렇고, 민심 이반의 최대 원인인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제 아무리 정부가 “아파트는 ‘돈’이 아니라 ‘집’”이라고 하소연한들 자고 나면 아파트 값이 뛰는 판에서 누군들 도태되려고 하겠는가. 협력 상생의 명분을 내건 이익공유제 역시 치밀한 설계와 촘촘한 보완장치 없이 선의에만 호소하면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장은 이렇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이나 양조업자, 빵집 주인들의 착한 마음씨 덕분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비판과 달리 애덤 스미스는 각자도생이야말로 일용할 양식을 갖다 주는 원천이라고 본 것이다. 그 ‘각자’의 대열에서 이탈하면 개인도, 나라도 설 땅이 없다. 정책은 이런 사실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 서야 한다. 세상은 선인(善人)만 존재하는 곳이 아니고, 한 개인 안에도 선과 악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높은 이상을 제시하며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1년 하고 일주일 보탠 정도의 시간만이 남았다. “정치는 이상을 그린 그림이 아니고 현실의 가시덤불을 헤쳐나가는 노력”이란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인다. 작가 이병주가 30여 년 전 단편 작품에 쓴 말이다.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