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대학’ 퇴로 열어주고 잠재력 갖춘 곳에 지원 집중해야

중앙일보

입력 2021.05.04 00:03

업데이트 2021.05.04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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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민주노총 전국대학노조 국공립대본부 조합원들이 지난달 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스1]

민주노총 전국대학노조 국공립대본부 조합원들이 지난달 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스1]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위치한 울산과학기술원(UNIST). 이 대학은 2021학년도 신입생 수시모집에서 435명 모집에 4077명이 지원해 9.37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2007년 개교해 14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비수도권 대학에 지원자들이 몰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위기의 지방대] 정부 해법은
지역 약점 딛고 ‘4대 과기원’ 약진
대학 경쟁력과 재정 지원 시너지
공교육 투자 확대, 공동입시제로
수도권 쏠림 막고 ‘서열’ 없애야

지난달 29일 이용훈 UNIST 총장은 중앙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우수한 연구력 및 교육지원 환경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그 배경에는 정부와 지자체의 꾸준한 재정지원이 있었다”고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UNIST 출연금은 지난 한 해에만 787억원 수준. UNIST는 올해 THE 세계대학평가에서 국내 6위, 세계 176위에 올랐다. 누적 학생 창업은 62건, 매출액은 767억원에 달한다.

대학별 1인당 교육(투자)비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대학별 1인당 교육(투자)비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광주과학기술원(GIST)은 올해 정시모집에서 44.9대 1로 사상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한국과학기술원(KAIST)도 각각 43.1대 1, 37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이중 GIST는 기술창업→이전계약을 통한 누적 수입액이 181억원에 달하면서 기술사업화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올해 입시에서 대규모 정원 미달사태가 빚어지자 지방대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고강도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실대학은 구조조정과 퇴로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잠재력이 있는 대학들은 경쟁력을 끌어올려 ‘가고 싶은 대학’을 만드는 게 관건”이라고 조언한다.

고등교육 공교육비 정부부담 비중.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고등교육 공교육비 정부부담 비중.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의 이른바 ‘서열’을 깨기 위한 구조 개선과 재정지원 등도 중요 과제로 떠올랐다.

비수도권에 위치한 4대 과기원은 정부의 든든한 지원 아래 과학기술 특성화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이들 대학이 단기간에 높은 경쟁력을 갖춘 데는 1971년 이후 6조6000억원에 달하는 과기정통부의 출연금이 바탕이 됐다는 평가다.

반면 4대 과기원과 거점 국립대 등 일부 대학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지방대들이 올해 대입에서 극심한 ‘정원 미달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정원 미달 상태로 봄꽃 핀 캠퍼스를 열긴 했지만, 입시 실패 책임론, 폐과·학과 신설, 대학 통폐합 검토 등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심지어 일부 대학에선 심각한 정원 미달사태로 인해 이른바 ‘유령 원서’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대학 관계자가 자신의 지인, 친인척 등이 대학에 인적사항 등만 접수해 서류상으로만 신입생 충원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부실대학의 상황이 교육의 질적 저하를 가져오고 이는 다시 정원 미달 사태를 부르는 악순환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학생 1인당 공교육비 지출액.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학생 1인당 공교육비 지출액.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전문가들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 간 ‘서열 격차’를 해소하지 않고선 지방대의 위기를 극복하기 힘들다고 봤다. 김태훈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달 국회 토론회에서 “대학의 위기라고 하지만 결국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미충원 타격은 지방대에 집중됐다”며 “대학 교육이 아닌 대학 서열에 집착하는 현실에서 수도권 쏠림 현상이 원인이 됐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그는 정부의 재정지원 확대와 함께 여러 대학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공동입시를 치르는 등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대학간 서열을 없애야 한다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국내 교육투자의 현실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의 고등교육(대학교 이상) 공교육비 중 정부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38.1%로 OECD 평균(68.2%)을 크게 밑돈다. 학생 1인당 공교육비 지출액도 약 1179만원(1만633달러)으로 OECD 평균(1만6327달러)에 못 미친다. 거점 국립대학교 총장협의회장을 역임한 전호환 전 부산대 총장은 “수도권 사립대는 등록금 자율화로 국제 경쟁력 높이는 대신, 국가장학금은 지방 국립대와 공영형 사립대학이 전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재정 안정성을 도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재정지원을 위해선 학생 수 대비 과도한 대학 정원을 감축하는 등 구조조정이 전제돼야 한다는 견해도 많다. “구조조정의 과정에서도 정원 감축 등이 지방대에 편중되지 않도록 공정한 룰을 도입해야 한다”는 제언과 함께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인 김현민 부산대 교수는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어느 분야에 몇 명의 취업 인력이 필요한지 산출할 수 있다”며 “동일 계열의 학과 정원을 취합한 뒤 대학 수로 나눠 감축 인원을 합리적으로 할당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부실대학에 대한 구조조정을 강도높게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운영이 한계에 다다른 지방대는 시장에서 자발적으로 퇴출할 수 있도록 퇴로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사학법인이 해산할 때 별도 정관이 없으면 학교 재산을 국고나 지자체에 귀속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부실대가 스스로 문 닫는 것을 망설이는 곳도 많다.

김경희 명지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1997~2006년 한시적으로 소규모 사립고에 해산 장려금을 줘 31개 법인을 폐교 처리한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부실 사립대가 자진해서 폐교할 수 있도록 잔여재산을 출연자에게 귀속하는 등 재산 처분에 자유를 부여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허정원·이은지·김윤호·최종권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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