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입주 예정인 경기 판교신도시 인근의 유명 브랜드 아파트 단지가 높이 30m, 길이 300m의 거대 옹벽 바로 앞에 지어져 있다. 아파트 11~12층 높이까지 옹벽이 있는 것으로 국내 아파트 단지 옹벽 중 유례를 찾기 어렵다. 거대 옹벽으로 삼면이 둘러싸인 이 단지에는 전용면적 84~129㎡ 중대형 아파트 1223가구가 들어섰다. 국내 10대 건설사 중 하나인 A건설이 지었다.
고도제한 탓에 30m 땅 파서 지어 #법 규정엔 옹벽 높이 최대 15m #전문가 “안전 우려, 인허가에 의문” #이재명 시장 때 허가, 회사 “특혜없어”
아파트 사업을 할 수 있게 자연녹지에서 준주거지로 토지의 용도가 변경됐고, 사업자는 부지를 넓히기 위해 산을 수직으로 깎아 옹벽을 만들었다. 대지면적은 5만2428㎡이고 용적률은 316%다.
아파트 내 옹벽은 무너질 경우 큰 인명피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설치 기준을 까다롭게 규제하고 있다. 산지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비탈면(옹벽포함)의 수직높이는 15m 이하가 되도록 사업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또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절토(땅을 깎는 작업)시 시가화(市街化) 용도(아파트 용도 포함)의 경우는 비탈면의 수직 높이를 15m 이하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 옹벽을 직접 보거나 옹벽의 사진을 본 토목과 교수, 기술사, 건축사 등의 관련 전문가는 “보기에도 아찔한 위협적인 크기의 옹벽이 요즘 같은 시대에 어떻게 인허가를 받아 설치됐는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았다.
대한건설협회의 한 간부는 “요즘 조성되는 아파트에서 옹벽의 높이가 15m를 넘는 사례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아파트를 지은 B건설 담당자는 “우리 회사가 시공한 아파트의 옹벽 높이는 2~12m”라고 전했다. 이렇게 옹벽을 만든 이유는 사업 부지가 비행기 운항과 관련한 고도제한을 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높이 짓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30m가량 땅을 파서 부지를 조성했다.
성남시청 관계자는 “해당 부지 매각이 사업성이 나오지 않아 몇 차례 유찰되자, 성남시가 기부채납을 받는 조건으로 용적률을 올려줬다”고 설명했다.
인허가권자인 성남시 도시주택국 관계자는 “사실 성남시에서 이렇게 옹벽이 높은 아파트 단지는 없다”며 “이전 담당자가 인허가를 내준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주택국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전문가인 심의위원의 심의 회의를 거쳐 인허가가 난 상태”라며 "준공검사 때 안전에 이상이 없는지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기도는 지난해 말 ‘경기도 산지지역 개발행위 개선 및 계획적 관리지침’을 마련해 각 지자체에 시달했다. 이 중 옹벽 높이는 6m 이하다.
익명을 요구한 모 대학 토목공학과 교수는 “옹벽이 가로 방향으로 길기 때문에 중간중간 보강 장치가 있어야 하고 옹벽 붕괴 조짐을 사전에 감지할 수 있는 벽체 변위 계측기라는 안전장치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공사 관계자는 “보강 장치는 없지만 벽체변위계측기는 4대 설치했다”고 말했다.
시행사 관계자는 “단지 옆 R&D센터 등 성남시에 기부채납하는 부지가 많아 특혜는커녕 이 사업에서 손해를 볼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 전용면적 84㎡의 분양가는 8억원 안팎이었고, 현 호가는 16억원 안팎이다. 이 아파트 인허가는 2017년 2월에 났고, 당시 성남시장은 이재명 현 경기도지사였다.
함종선 기자 ham.jongs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