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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해남 땅끝마을, 그곳은 끝일까 시작일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전명원의 일상의 발견(4)

전남 해남은 땅끝마을로 기억된다. 따지고 보면 해남에는 미황사, 대흥사 같은 아름답기로 소문난 오래된 절도 있고, 고구마로도 유명한데 늘 해남은 땅끝마을이 먼저 떠오르니 말이다.

복학생 선배 하나는 해남이 고향이었다. 새 학기에 복학해 자기소개하길, 해남 땅끝마을서 왔다! 라고 했다. 그는 우리 과의 동기, 선후배를 통틀어 제일 멀리에서 온 사람이었다. 이제는 이름도 가물거릴 만큼 우리가 늘 이름 대신 ‘해남선배’라고 불렀던 그는, 일 년여를 채 다니지 못하고 사고로 인해 땅끝마을보다도 더 먼 곳으로 영영 떠난 사람이기도 했다.

고개를 들고 바라보는 땅끝 아래 바다가 푸르고 고왔다. [사진 전명원]

고개를 들고 바라보는 땅끝 아래 바다가 푸르고 고왔다. [사진 전명원]

땅끝을 찾아가는 길은 꽤 오르막이었다. 봄가을이면 강원도 낚시를 다니며 백두대간 고갯길을 넘는 나에게도 어느 구간은 꽤 경사가 급해 함께 강원도를 누비며 나이 먹은 내 차의 핸들을 톡톡 두드려주기도 했다, 힘내라고.

모노레일은 땅끝탑이 있는 전망대까지 데려다준다고 해서 출발시각을 기다리며 대합실에 앉아있었다. 마침 뉴스에선 서울시장선거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검표원 아저씨는 텔레비전을 집중해 보며 혼잣말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분의 몇 마디로 지지정당과 지지 후보를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땅끝마을 주민도 서울의 시장선거에 엄청 관심이 많은 세상이다. 서울은 더 이상 서울이 아니고, 땅끝은 더 이상 땅끝이 아니다.

모노레일이 올라갈수록 푸른 바다가 멀어지고, 넓어졌다. 그렇게 땅끝탑 앞에 섰다.

모노레일이 올라갈수록 푸른 바다가 멀어지고, 넓어졌다. 그렇게 땅끝탑 앞에 섰다.

출발 시작에 맞춰 올라탄 모노레일이 철컥철컥 소리를 내며 올라갈수록 푸른 바다가 멀어지고, 넓어졌다. 그렇게 땅끝탑 앞에 섰다. 우리나라 한반도의 최남단 북위 34도 17분 21초.

땅끝이라고 해봐야 별다른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국토의 최남단인 것도 아닌데 늘 땅끝마을이 궁금했다. 땅끝이라는 어감이 주는 쓸쓸함, 비장함도 묻어있는 기분이었는데 막상 온몸이 날아갈 듯 바람이 부는 땅끝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너무나 아름답기만 했다. 아이들 색깔찰흙반죽처럼 뚝뚝 떼어놓은 듯한 작은 섬들, 연안에 만들어진 양식장들, 푸르고 푸르게 빛나는 바다. 아무 데나 마구 셔터를 눌러도 작품사진이 나올 것 같은 풍경이었다.

땅끝 마을은 이 땅의 시작이기도 할 터이다. 좋은 문구에 끄덕끄덕했다.

땅끝 마을은 이 땅의 시작이기도 할 터이다. 좋은 문구에 끄덕끄덕했다.

‘한반도의 시작, 땅끝 마을’. 끝에 닿았을 때 되돌아서면, 그곳은 곧 시작. 그러므로 땅끝 마을은 이 땅의 시작이기도 할 터이다. 좋은 문구에 끄덕끄덕했다. 사는 일도 비슷해, 고개 하나를 넘었구나 싶으면 또 다른 고개가 나타나기도 하고, 이제 겨우 끝냈구나 싶으면 또 다른 무언가가 다가온다. 그렇게 끝과 시작이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 위에 선 것이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끝이 다가온다고 너무 두려워할 일도, 겨우 시작이라고 막막해할 일도 아니다.

고개를 들고 바라보는 땅끝 아래 바다가 푸르고 고왔다. 지금이 끝났으니, 지금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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