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년중앙] 원문 느낌 살려 술술 읽히는 번역, 우리의 관점 넓혀줍니다

중앙일보

입력

어린 왕자, 제제, 해리 포터…이들의 공통점은 뭘까요. 바로 외국 작가의 책 주인공이란 점입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프랑스에서, J M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브라질에서, J 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는 영국에서 각각 출판됐죠. 이들이 우리 곁으로 오기 위해서는 ‘번역’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홍길동(허균의 『홍길동전』), 잎싹(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 등이 외국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도 마찬가지죠. 과연 그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외국어를 우리말로, 우리말을 외국어로 변신시켜 우리의 일상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번역의 세계로 떠나봤습니다.
글=김현정 기자 hyeon7@joongang.co.kr, 사진=이승연(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김아윤(서울 영훈초 4)·나서현(세종 홈스쿨링 6) 학생기자·연규원(서울 언남초 6) 학생모델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원본과 영역본, 프랑스어본을 각각 살펴본 연규원 학생모델과 김아윤·나서현 학생기자(왼쪽부터).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원본과 영역본, 프랑스어본을 각각 살펴본 연규원 학생모델과 김아윤·나서현 학생기자(왼쪽부터).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2020년 번역 도서는 1만2016종에 달합니다. 미국·일본 등 익숙한 나라부터 서남아시아·오세아니아 등 조금 생소한 지역까지 다양한 나라에서 출판된 책들이죠. 협회에 납본된 자료 기준으로 2020년 신간 도서가 6만5792종이니 약 18%를 차지하는 셈입니다. 번역 도서 중 어린이 책은 1879종으로 15.6% 정도죠.

외국책이 번역돼 들어오는 것처럼 우리나라 책 역시 해외로 나갑니다. 이를 위해 번역 및 출판을 지원하는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2020년 12월 말 기준 영어·아시아어·유럽어 등 40개 언어권에 총 1511건(2001~2020)이 출간됐죠. 2020년엔 한류 영향력을 K-문학으로 확대하고자 동남아·동유럽·중동·중남미 등 한류 확산지역에 한국문학을 널리 알렸어요. 한국문학의 주제·작가·해제를 정리한 자료 281건의 영문판도 만들어 온라인으로 서비스합니다.

세계 각국에 선보인 우리 그림책을 지도로 표현한 전시물에서 각자 좋아하는 그림책을 찾아본 소중 학생기자단.

세계 각국에 선보인 우리 그림책을 지도로 표현한 전시물에서 각자 좋아하는 그림책을 찾아본 소중 학생기자단.

이렇게 많은 책이 다양한 언어와 한국어를 넘나들기 위해 필요한 작업이 바로 번역입니다. 번역은 어떤 언어로 되어 있는 저작물을 다른 언어로 된 저작물로 바꾸는 일이죠. 이는 문학뿐 아니라 영상이나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됩니다. 기원전 8세기경부터 전해져 왔다고 하는 호메로스에 의한 그리스 장편 서사시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의 경우, 수천 년 전부터 각종 언어로 번역돼 21세기를 사는 우리도 볼 수 있죠. 이토록 오랫동안 분야와 언어를 넘나들며 작업한 사람들을 번역가라고 하고요.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소중 학생기자단이 출동했죠.

세계를 여행하는 우리 그림책

김아윤·나서현 학생기자와 연규원 학생모델은 먼저 서울 강남구에 있는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을 찾았어요. 2층 전시실에서 8월 31일까지 ‘세계를 여행하는 우리 그림책’ 기획전이 열리거든요. 소중 학생기자단을 맞이한 윤희정 사서사무관이 “지난 30여 년간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한 우리 그림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준비한 전시”라고 소개했죠. 도서관 홈페이지(nlcy.go.kr)에서 사전예약하면 해외에 저작권을 수출한 우리 그림책 115종을 번역본과 함께 4개 섹션에 걸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림책을 세계에 알린 작가들’ 섹션에서는 작가 40명의 대표작과 그 번역본을 함께 볼 수 있다.

‘우리 그림책을 세계에 알린 작가들’ 섹션에서는 작가 40명의 대표작과 그 번역본을 함께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거대한 세계지도예요. “전 세계에 번역 출간된 115종의 우리 그림책을 한눈에 보여주기 위해 지도로 표현했다”는 윤 사서사무관의 설명에 학생기자단은 세계 곳곳에서 아는 책을 찾아봤죠. 이어지는 ‘우리 그림책을 세계에 알린 작가들’ 섹션에서 이들 그림책 일부를 한국어판부터 각국 언어로 번역된 책으로 만날 수 있어요. 규원 학생모델이 반가워하며 『만희네집』을 집어 들자 서현 학생기자가 『훨훨 간다』, 아윤 학생기자가 『장수탕 선녀님』을 재밌게 읽었다고 했죠.

그림책은 문화 교류에도 도움이 됩니다. 번역 출간된 그림책은 세계의 독자와 만나면서 기존에 알던 문화·언어·인종·종교 등을 뛰어넘은 경험을 선사하죠. 윤 사서사무관은 ‘그림책으로 이어지는 세상’ 섹션으로 학생기자단을 안내했어요. “K-팝이 세계적 인기를 끌며 한국 문화와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한글을 배워 우리 책을 읽는 사람들도 늘고 있죠. 이 코너에선 한글을 공부해 우리 그림책 번역대회에 참여한 친구들의 소감과 함께 아시아 국가의 설화 등을 각 나라 작가들이 글로 쓰고 우리 그림작가가 그려낸 책을 볼 수 있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세계를 여행하는 우리 그림책’ 전시를 보고 번역본 그림책의 표지를 꾸며봤다. 왼쪽부터 김아윤·나서현 학생기자와 연규원 학생모델.

소중 학생기자단이 ‘세계를 여행하는 우리 그림책’ 전시를 보고 번역본 그림책의 표지를 꾸며봤다. 왼쪽부터 김아윤·나서현 학생기자와 연규원 학생모델.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2009년부터 아시아 국가들과 문화 교류하며 공동 발굴한 신화‧설화 등을 바탕으로 ‘아시아의 이야기’ 그림책 시리즈를 펴내고 있는데요. 그중 아제르바이젠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을 배경으로 한 동화 『슈레아를 찾아서』를 꺼내들었죠. 낯선 문자로 쓰인 책과 한글로 번역된 책을 함께 보며 “이 단어가 ‘하얀 비둘기’를 뜻하나봐” 유추하며 번역을 맛본 학생기자단은 ‘같은 책, 다른 느낌’ 섹션으로 향했습니다. 규원 학생모델이 “책 제목이 달라진 게 눈에 띤다”며 “이런 경우가 많은지” 질문했죠.

윤 사서사무관은 “책을 번역 출간할 때는 원작자의 동의 하에 그 나라 문화 등을 고려해 원작을 변형하기도 한다”며 달라진 점을 잘 살펴보라고 했죠. 제목뿐 아니라 표지 그림, 내용까지도 바뀐 책을 각각 비교해 보며 그 과정에서 번역의 역할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또 볼로냐 라가치상을 받은 그림책도 다수 전시됐는데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수상작 원본과 번역본을 표지부터 내용까지 차근차근 비교해봤죠.

아제르바이젠의 동화 『슈레아를 찾아서』를 한국어 번역본과 비교해봤다.

아제르바이젠의 동화 『슈레아를 찾아서』를 한국어 번역본과 비교해봤다.

전시장에는 해외 번역가들의 말을 담은 구조물도 있었습니다. “번역된 작품은 두 언어의 움직임 사이에서 여유롭고 우아하게 보여야 합니다.”(로렌스 쉬멜) “번역된 작품은 원본이 보여줬던 글과 그림의 상호작용을 잘 담고 있어야 합니다. 원본에서 글만 추출해 번역한 다음 그 텍스트를 새 페이지에 올려놓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글자가 차지할 공간과 장면의 세부 사항, 페이지 넘김, 그 책이 지닌 나머지 건축적 구성 요소와의 상호작용을 확인하면서 번역해야 합니다. 그림책을 번역하는 일은 한 권의 책을 옮겨 다시 건축하는 작업입니다.”(다니엘 한) 번역가들이 말하는 그림책 번역의 특성을 마음에 담은 소중 학생기자단은 현역 번역가를 만나러 갔습니다.

‘세계를 여행하는 우리 그림책’전

기간: 8월 31일까지
장소: 서울 강남구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2층 전시실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홈페이지 사전 예약 필수, 매월 둘째·넷째 월요일 휴관)

오영아 번역가와의 만남

‘세계를 여행하는 우리 그림책’전에도 협력한 한국문학번역원을 찾은 소중 학생기자단은 오영아 번역가와 만났어요. 오 번역가는 주로 한국문학을 일본어로 번역하고 있죠. 학생기자단은 먼저 “언제부터 한국문학이 외국에 전파됐고. 또 언제부터 한국에 외국문학이 소개됐는지”를 질문했어요. 그는 “여러 자료를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며 “한국문학이 번역돼 해외, 특히 영미권에 소개된 것은 1889년 미국에서 나온 『한국민담집』이 효시”라고 답했죠. “문학작품으로는 1922년 영국에서 출판된 김만중의 『구운몽』을 최초로 봐요. 반대의 경우는 19세기부터 성경 등 서양 서적이 한국에 번역돼 들어오기 시작했죠.” 물론 그 전부터도 중국을 통해 들여오는 한문 서적을 번역해 봤습니다. 이를 15세기에는 보통 언해(諺解)라고 했는데, 『석보상절(釋譜詳節)』(1447)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1461) 등이 남아있죠. 번역에 대한 기본적인 궁금증을 해결하자 본격적인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전시장에 마련된 독서 공간에서 편안하게 그림책을 읽는 소중 학생기자단.

전시장에 마련된 독서 공간에서 편안하게 그림책을 읽는 소중 학생기자단.

규원: 번역가란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와 장단점이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보니까 장래 꿈을 외교관·통역사·번역가라고 썼더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워낙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했는데, 직업으로는 어려울 것 같았어요. 여러 직장을 거친 끝에 통번역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번역 일을 하게 됐죠. 번역가의 장점은 책 읽는 게 일이라서 너무 즐겁다는 거예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온종일, 화장실 가는 것도 참고 작업할 수 있을 정도죠. 일하는 시간도 자유롭고, 할머니가 돼도 눈과 허리만 괜찮으면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겠네요. 단점은 작업량이나 노동에 비해 보수가 높지 않아 생계유지가 어렵다는 것일까요(웃음).

서현: 언제부터 외국어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다른 나라 독자들을 만족시킬 만큼 언어를 잘하는 비결은 뭔가요.

그 정도로 잘하지는 못하는데요(웃음). 여러분처럼 어릴 때부터 영어 공부를 했고요. 재일교포다 보니 부모님이 한국어 공부를 강조하셨어요. 그런 환경에서 자라며 언어 공부를 많이 하게 됐죠. 그런데 ‘공부’라고 생각하면 하기 싫잖아요. 외국 친구를 사귀거나 연예인도 괜찮으니 외국으로 눈을 돌려보세요. 외국어로 내 마음을 전하고 싶고,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암기든 뭐든 즐겁게 할 수 있어요.

원본과 같은 책이지만 다른 느낌을 주는 번역본 표지를 모았다. 제목이 글자면서 그림처럼 기능한 『파도야 놀자』의 다양한 표지.

원본과 같은 책이지만 다른 느낌을 주는 번역본 표지를 모았다. 제목이 글자면서 그림처럼 기능한 『파도야 놀자』의 다양한 표지.

아윤: 번역하는 책은 어떻게 고르나요.

세 가지 정도가 있어요. 정말 하고 싶은 책을 찾아서 출판사에 제안하고 판권을 계약하는 것, 출판사의 제안을 받는 것이 있고요. 콘텐트 판권을 다루는 에이전시에서 연락받기도 합니다. 이건 어느 나라나 비슷해요.

서현: 제일 처음 번역하신 책은 무엇인가요. 그 책을 번역했을 때 기분도 궁금해요.

은희경 작가의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クオン, 2013)와 김연수 작가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クオン, 2014)를 거의 동시에 작업했어요. 당시 한국문학이 일본에 알려지지 않은 편이었는데 연락을 받고 출판하게 됐죠. 작가님과 일본에 가서 강연·토크쇼 등에 참여해 통역하기도 했죠. 뿌듯하고 기쁜 한편 누가 틀렸다고 할까 봐 걱정도 되더라고요.

오영아 번역가가 자신이 번역한 책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오영아 번역가가 자신이 번역한 책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아윤: 한 권의 책을 번역하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번역하는 동안 책을 보고 또 보시나요.

장편의 경우 1권에 3주~한 달 정도 걸려요. 시간이 많을수록 좋긴 한데 그런 경우는 별로 없죠. 제 경우 2달 정도가 이상적일 듯합니다. 번역한 원고는 출판사 편집부에 보내 피드백을 받아 수정하는데, 이 과정을 2~3번 정도 반복하죠. 인쇄소에 보내기 전까지 정말 보고 또 봅니다. 번역한 원고는 밤새 혼자 소리 내서 읽어요. 머뭇거리거나 멈추게 되면 문장이 이상한 거니까 고치죠. 눈이 멈추지 않고 술술 읽히게 가독성 좋은 글로 만들기 위해 고민이 많습니다.

규원: 누렇다, 노르스름하다, 누리끼리하다 같은 다양한 색 표현이나 방언처럼 한국어 특유의 표현은 어떻게 번역하시나요. 원문의 의미를 잘 살린 적절한 단어를 찾는 게 어렵지 않나요.

너무 떨리는 질문이네요. 다행히 일본어는 색깔 표현이 다양하고, 관련 사전도 있어요. 보통 미묘한 색깔 자체 설명보다는 느낌을 살려서, 질감·촉감 등 다른 방향으로 표현할 방법을 찾아봅니다. 오히려 욕의 경우 일본어로 옮길 말이 별로 없어 그 강도를 표현하기 어려워요. 한국어로는 강한 어조인데, 일본어로는 메롱 정도로 약해지거든요. 원문 의미를 살린 단어 찾기는 매우 어렵고, 매일 고민하는데 한편으로는 재밌기도 해요. 한 줄을 두고 3일씩 고민하기도 하죠. 머릿속에 영상으로 만드는 등 원문의 뜻을 정확히 파악해 나타낼 수 있을 때까지 고민해요. 과한 의역이나 부자연스러운 직역은 피하고 싶으니까요. 모든 번역가가 이런 고민을 할 겁니다.

한국문학을 외국어로 보자

해외로 번역돼 나가는 한국문학이 궁금하다면 한국문학 온라인 플랫폼(library.ltikorea.or.kr)을 방문해보세요.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The Hen Who Dreamed She Could Fly)』 영어 오디오 북을 듣거나 김금숙의 『풀(Grass)』 영문판을 읽을 수 있죠. 스페인어나 독일어판 등 총 47개 언어권 6089건의 한국문학 관련 번역 콘텐트를 서비스합니다.

2020년 해외 문학계의 주목을 받은 한국문학

2020년 해외 문학계의 주목을 받은 한국문학

아윤: ‘재미있다’를 ‘꿀잼’으로 쓰듯, 영어도 ‘Oh, My god’을 ‘Oh, My gosh, wig’로 쓰고, ‘라떼는 말이야~’나 ‘Ok, boomer~’처럼 예전에 없던 신조어나 유행어를 쓰는 경우가 많잖아요. 또 시대에 맞는 문화나 정서, 트렌드가 있는데 이를 잘 알고 반영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최근 90년대생 작가들이 많아지며 유행어 등 일본어로 옮기기 어려운 어휘 사용이 늘었어요. 그 느낌을 제대로 알기 위해 젊은이들과 많이 소통하고 만화·드라마 등도 많이 봅니다. 갇혀 있으면 모르기 때문에 서로 물어보고 가르쳐주고 해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오영아(맨 왼쪽) 번역가와 원본과 번역본을 비교해 보고 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오영아(맨 왼쪽) 번역가와 원본과 번역본을 비교해 보고 있다.

규원: 사전이나 번역기 등 도구는 어떨 때 사용하는지 궁금합니다. 번역가의 작업 환경도요.

국어사전·일한사전 등 사전은 매일 쓰고요. 번역기 같은 기계번역은 문학 번역에 써본 적 없어요. 분량이 아주 많으면 초벌 번역에 사용하고 사람이 수정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저는 직접 번역하는 게 편합니다. 작업은 보통 집에 있는 작은 서재방에서 해요. 일단 책상과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서나 일할 수 있죠. 요즘은 코로나19로 가족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집중력 훈련처럼 작업해요. 밥하면서 한 줄 번역하고, 빨래하면서 한 줄 번역하는 식이죠. 또 한국문학번역원·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에서 강의도 해요.

서현: 저도 한번 책을 번역해보려 했지만 어려웠거든요. 혹시 번역이 잘못된 부분이 있는데 책이 출판돼 당황하신 적 있나요. 또 힘들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힘들 땐 많은데요. 워낙 좋아하는 일이라서 그런지 포기하고 싶었던 때는 없었어요. 책이 되고 나서야 실수를 발견하는 경우, 중쇄 때 고칩니다. 다행히 저는 번역하면서 크게 잘못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다만 모두가 잘 읽히는 글을 쓰는 건 아니라서 비문이 많은 글을 작업할 땐 해석도 오래 걸리고 번역도 더 힘들죠. 최근에는 조혜진 작가의 『단순한 진심』을 번역했는데, 해외 입양 이야기를 다뤄 읽으면 눈물이 나는 책이었어요. 매일 작업하는 것 자체로 즐거웠죠. 가끔은 일인데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최근 작업한 『단순한 진심』과 번역 초고. 오영아 번역가는 일본 독자들에게 잘 와닿을 수 있는 제목을 고민 중이다.

최근 작업한 『단순한 진심』과 번역 초고. 오영아 번역가는 일본 독자들에게 잘 와닿을 수 있는 제목을 고민 중이다.

규원: 좋은 글을 번역하면서 본인의 글을 쓰고 싶진 않나요. 만약 쓴다면 한국어와 일본어 중 무엇으로 쓰실 건가요.  

수필 같은 걸 쓸 때가 있는데 쑥스러워요. 언젠가 글을 쓴다면 둘 다 사용하고 싶습니다. 줌파 라히리라는 작가가 있는데요. 인도계 미국인으로서 미국인이 아닌 미국에 사는 사람의 정체성 문제를 다뤄 퓰리처상을 받았죠. 그땐 영어로 글을 썼는데, 최근에는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고 있어요. 그의 작품은 한국어로도 번역돼 있죠. 그와 같은 글을 읽는 게 좋더라고요.

서현: 어린이·청소년 책과 일반 대중용 책 번역의 차이점은 뭔가요. 어떤 번역이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어린이용 그림책을 보면 글이 별로 없으니까 쉬울 것 같잖아요. 오히려 의성어·의태어 같은 표현을 생생하게 살리기 어렵고, 페이지에 딱 맞춰 알맞은 말을 찾기도 어려워 번역하는 데 더 오래 걸려요. 어린이 책 번역을 너무 하고 싶은데, 연락해도 소식이 잘 안 닿네요. 번역은 아무래도 주관적인 평가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요. 원작에 대한 충실성, 가독성, 문학의 표현력·창의성 등으로 나눠서 보는데 전부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술술 읽히려면 의역도 하고 생략도 많아져 아쉽죠. 그렇다고 굳이 다 살려서 읽기 불편한 것도 적절하지는 않죠. 요즘은 독자가 읽기 편하면 다 된다는 추세라 생각이 많아요.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전문도서관을 둘러본 오영아(뒷줄) 번역가와 소중 학생기자단.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전문도서관을 둘러본 오영아(뒷줄) 번역가와 소중 학생기자단.

아윤: 영화·만화·방송·게임 등 여러 분야에 번역이 필요한데 책 번역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사실 지금 만화를 번역 중이에요. 곧 게임 번역도 할 예정이고요. 영화 번역도 가끔 하고 번역된 걸 감수해달라는 요청도 받죠. 들어오는 작업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거의 다 하는 편입니다.

규원: 번역가를 꿈꾸는 소년중앙 독자들이 청소년기에 뭘 준비하면 좋을까요.

아마 많이 들었을 텐데요. 책을 많이 읽으세요. 5~6세쯤 엄마 책에 있는 가름끈이 부러워서 그런 책을 사달라고 졸랐죠. 그걸 계기로 글밥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제가 번역한 책에 가름끈이 있으면 기쁘답니다(웃음). 초등학생 때는 학교 도서관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오지 말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어요. 활자 중독이랄까 글씨 읽는 버릇이 있어서 목욕할 때도 샴푸 통에 쓰인 글자를 읽죠. 지하철 타면 광고 보면서 번역해 보기도 하고요. 드라마 보면서 유행어를 습득하기도 하죠. 친구랑 싸우거나 슬펐던 일, 감정을 일으키는 모든 게 도움이 됩니다. 회사 생활도 번역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각자의 역할을 알고 경험해 보는 게 좋아요. 경험이 쌓이면 아마 다른 일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최근 해외 우수상 받은 우리 그림책

최근 해외 우수상 받은 우리 그림책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저는 번역가라는 직업을 막연히 ‘interpreter’라고 생각했어요. 학급반장을 영어사전에 검색했을 때 ‘classs monitor’이라는 이상한 단어가 나와 당황하기도 했죠. 그런데 이번 취재로 번역가는 동화 속 등장인물의 감정을 독자가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거죠. 지금 K-팝 가수들처럼 우리나라 번역가나 동화작가도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수 있다고 느꼈고요. 많은 우리 책·영화 등이 각 나라 말로 번역돼 외국에 나온다는 걸 알고 왠지 뿌듯했어요. 번역가·동화책 작가·일러스트레이터 등이 꿈인 친구들은 ‘세계를 여행하는 우리 그림책’ 전시가 꿈을 더 크게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도 조앤 롤링이나 레이첼 르네 러셀처럼 세계적 작가·번역가가 나오겠죠? 소년중앙 친구들이 그 주인공이 되기를 기대할게요.
-김아윤(서울 영훈초 4) 학생기자

책을 좋아해서 책을 많이 읽는데, 전시를 통해 우리 집에 있는 그림책들이 여러 언어로 번역된 것을 보고 흥미진진했어요. 『강아지 똥』 그림책은 영어·일본어·프랑스어 등 수많은 언어로 번역돼 있었죠. 외국책 번역은 막연히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영아 번역가님 인터뷰를 하며 좋아하는 일이어서 힘들 때도 있지만 포기하고 싶을 때는 없었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또 소설은 많이 번역했지만 아직 그림책은 번역을 못 해봤다고 하셨는데, 여기에 비용 문제가 얽혀있다는 부분이 신기했죠. 번역가에 대해 알아보는 즐겁고 재미있는 경험이었고요. ‘자신이 좋아하는 직업은 힘들어도 포기는 안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서현(세종 홈스쿨링 6) 학생기자

원서와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비교해 보며 '어? 이건 왜 이렇지?' 했던 궁금증이 해소돼 즐거운 취재였습니다. 볼로냐 라가치상 같은 외국 상은 외국책만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나라 책도 많이 수상했다는 점이 자랑스러웠고 우리가 잘 아는 책 『만희네집』 또한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게 인상 깊었죠. 번역가 오영아 선생님께서는 진지하고 어려운 말을 사용하실 것 같은 번역가 이미지와 달리 유쾌하신 분이셔서 푸근하고 따스한 인터뷰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영아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책 『단순한 진심』도 나중에 꼭 읽어볼 계획입니다. 여러모로 재미있었어요.
-연규원(서울 언남초 6) 학생모델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