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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 들자 농사 막고 반도체 살린 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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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대만 신주(新竹)에서 4대째 농사짓는 좡정덩(庄正燈). 그는 수만명의 다른 대만 농부와 마찬가지로 올해 농사를 강제로 쉰다. “정부가 물을 끊었어요. 그들은 반도체만 생각해요.” 대만에 56년 만에 처음이란 지독한 가뭄이 들자 발생한 일이다. 대만엔 원래 비가 많다. 북부와 중부는 아열대, 남부는 열대기후에 속한다. 비와 태풍이 잦아 지하철역엔 우산이 상시 비치되기도 한다. 물값도 싸다. 톤(t)당 11대만달러(약 437원)로 한국의 절반, 미국의 4분의 1 가격이다.

한데 지난해부터 묘한 일이 벌어졌다. 그 많던 태풍이 사라졌다. 비 또한 가물에 콩 나듯 한다.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4월부터 우기가 시작되는데 1~25일 강수량은 0.5mm. 우기란 말이 무색하다. 대만 저수지 21곳 중 11곳의 저수량이 20%를 밑돈다. 가뭄은 대만 경제의 기둥인 반도체 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TSMC는 엄청난 양의 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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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순도 장비와 소재, 수많은 화학물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루 20만t 가까운 물이 필요하다. 한데 반도체 공장에 물을 공급하는 바오산(寶山) 제2저수지 경우 저수량이 역대 최하인 7% 수준까지 추락했다. 비상이 걸린 TSMC는 자구책 마련에 분주하다. 물탱크 트럭을 빌려 다른 저수지에서 물을 퍼 온다. 또 반도체 공장이 아닌 물 공장을 짓고 있기도 하다. 산업폐수를 정화해 재사용하기 위해서다.

대만 정부 또한 반도체 공장 살리기에 발 벗고 나섰다. 우선 물 확보를 위해 곳곳에 우물을 파고 있다. 절수는 당연한 일. 대만 최대 도시 중 하나인 타이중(台中)을 포함해 3개 시현(市縣)의 주민과 기업에 대해 매주 이틀은 물을 공급하지 않는다. 이발소와 세차장은 20% 절수 방침을 준수해야 한다.

여기에 대만 정부가 내놓은 특단의 조치는 농사 불허다. 지난해 가뭄 때도 7만 4000여 헥타르의 농지에 물을 대지 않았는데 올해도 좡정덩의 경우처럼 관개(灌漑)가 필요한 농지의 약 5분의 1에 물 공급을 중단했다. 대신 농업용수로 쓰던 물을 반도체 공장으로 돌렸다.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을 위한 대만의 비장한 선택이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최근 타이중을 방문해 절수를 호소했다. 대만 정부와 기업, 민간이 모두 나서 반도체 산업 살리기에 나선 모양새다. 한국 반도체는 미·중 반도체 패권전쟁 속에 이런 대만과 사생 결단에 가까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총수를 감옥에 가두고도 이기길 바란다면 그런 요행 심리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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