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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출신 86세대 첫 당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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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새 대표는 86그룹의 맏형 격이다.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대학에서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86그룹이 처음으로 민주당 대표를 배출함으로써 명실상부한 파워엘리트 세력임을 각인시켰다. 송 대표의 당권 도전사는 ‘4수 만에 당선’으로 요약된다. 과거 당 대표 경선(2005, 2016, 2018년)에 세 차례나 출마했다가 쓴맛을 봤다. 그러나 2008년 최고위원에 도전해 최다득표를 얻었을 때 만든 전국적 지지 조직인 ‘동서남북 포럼’ 등 지난 16년간 갈고 닦은 조직력이 이번 5·2 전당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는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송영길, 인천시장 지낸 5선 의원 #DJ 영입 정계입문, 당대표 3전4기 #문 정부 탈원전엔 ‘속도조절론’

1963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송 대표는 광주 대동고,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학도호국단 폐지 이후 뽑은 첫 연세대 직선 총학생회장이 됐다. 졸업 후에는 인천에서 택시운전사를 하며 노회찬 전 의원과 노동운동을 했다. 1994년 사법시험(36회)에 합격했고, 인천 지역 인권변호사로 일했다.

더불어 민주당 당 대표 결과.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더불어 민주당 당 대표 결과.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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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로 정계에 입문했다. 2000년 16대 총선 때 37세의 나이로 국회에 입성해 18대까지 내리 3선을 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선 인천시장에 도전해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소속 안상수 현역 시장을 꺾어 정치적 체급을 키웠다. 4년 후 인천시장 재선에 실패했지만 2016년 20대 총선에서 국회 재입성에 성공했고, 지난해 총선에서 5선 고지를 밟았다.

계파색이 옅었던 송 대표가 범친문 진영으로 넘어간 건 2017년께부터다. 2017년 5월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캠프 총괄선대본부장으로 자신의 지역 기반이 있는 호남과 인천표를 모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는 러시아 특사와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을 지냈다.

송 대표는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다. 송 대표는 초·재선 시절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의 언론관이 아쉽다”(2003년)라거나 “(경제인 만남에 소극적인) 대통령에겐 일종의 결벽증적인 면이 있다”(2005년)고 비판했다. 운동권 출신이지만 이념에만 치우치진 않는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청와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 대해 당내 반발이 컸지만 송 대표는 찬성 여론을 주도했다. 최근엔 “원전 1기의 경제적 효과는 중형차 25만 대나 스마트폰 500만 대를 판 것 같은 수출 효과가 있다”(2019년 1월)며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에 대해 속도조절론을 꺼내기도 했다.

송 대표는 이번 전대에서도 “민주당의 이름만 빼고 다 바꾸자”며 ‘쇄신론’을 꺼냈다. 극성 친문 지지층 중심의 당심과 일반 민심이 괴리됐다는 지적도 수용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러자 경쟁자로부터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과 맞지 않는다”(우원식 후보)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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