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모범답안’에 北 노골적 불쾌감…한·미 공조도 시험대

중앙일보

입력 2021.05.02 18:44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새로운 대북정책을 완성하며, 정부는 본격적인 한ㆍ미 간 비핵화 공조에 시동을 걸 계획이다. 하지만 북ㆍ미 간에 벌써부터 비핵화 접근법에 대한 시각 차이가 드러나며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 계획은 시작부터 난관을 만난 형국이다.
문 대통령은 4ㆍ27 남북정상회담 3주년을 맞은 지난달 27일 “오랜 숙고를 끝내고 다시 (북한과) 대화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ㆍ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적극적인 대미ㆍ대북 설득에 나서겠다는 의지 표명이었다.

'외교적 접근' 통한 대화, 문제는 '시간'  

하지만 문 대통령에게는 ‘평화 시계’를 다시 돌아가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연료 격인 두 가지가 부족하다. 시간과 신뢰다. 문 대통령의 임기는 사실상 약 10개월밖에 남지 않았고, 북한은 특히 2019년 하노이 노 딜 이후 더이상 한국을 중재자로서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정책 검토 결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일괄타결이나 정상 간 외교를 활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정했다. 2018년 싱가포르 북ㆍ미 정상회담같은 ‘깜짝 이벤트’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오히려 실무선에서 비핵화를 위한 단계적 접근법을 협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화의 층위를 넓혀나가는 외교적 접근을 중시하기로 했다. 이는 북ㆍ미 간 조기 협상 재개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문재인 정부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 북한이 입장을 바꿔 빠른 시일 내에 미국과의 대화에 응한다고 해도 트럼프 행정부 때와 같은 ‘탑다운 속도전’은 힘든 셈이다.

"상응 조치" 北 국장이 美 대통령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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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도 바이든 행정부의 새 대북 접근법이 탐탁치 않다는 뜻을 사실상 표출했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은 2일 담화를 내고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의회 연설에서 ‘외교와 단호한 억지’를 대북 원칙으로 밝힌 데 대해 “대단히 큰 실수”라고 비난했다. 꼬투리잡은 것은 의회 연설이지만, 담화 발표 시점 등을 고려할 때 바이든 행정부의 새 대북정책 윤곽에 대한 불만으로 볼 소지가 있다.
실제 권정근은 “미국의 새 대북 정책의 근간이 선명해진 이상 상응조치들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도 했다. 급을 보더라도 트럼프 행정부 당시 북ㆍ미 실무 협상의 북한측 차석대표였던 외무성 국장이 미국의 대통령을 직접 비난한 것은 노골적인 불쾌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미국 역시 이런 북한의 반응을 예상한 듯 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1일(현지시간) 미국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바이든 행정부의 새 대북정책이 가까운 시일 내에 북한의 핵도발과 관련한 계산법을 바꾸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북한을 달래기엔 부족한 접근법이란 걸 알지만, 원칙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셈이다.

한·미 정상회담서 방법론 논의 가능성 

여기에 제재 등 대북 압박에 대한 한ㆍ미 간 입장 차이도 존재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고위 관료는 WP에 “상황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확실히 유지할 생각”이라는 원칙을 밝혔는데, 이는 제재 완화를 통해 북ㆍ미 간 대화 재개의 계기를 만들자는 한국 정부 입장과 배치된다.
이런 이견이 있는데도 시간이 부족한 문재인 정부가 미국을 향해 기존의 입장을 밀어붙인다면 북한뿐 아니라 미국의 신뢰까지 잃게 될 우려도 제기된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가 완성한 대북정책은 WP 보도와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의 브리핑 외에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는 ‘제재ㆍ압박을 유지하되 외교적으로 유연한 접근’이라는 큰 줄기 아래 한ㆍ미ㆍ일 공조 등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해 구체적인 방법론을 논하기 위한 바이든 행정부의 의도로 풀이된다. 오는 21일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문제가 핵심 의제가 될 것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대북정책에 정통한 정부 관계자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한국 정부 입장에서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고, 이같은 기조에 맞춰 한ㆍ미 간 협의가 이미 이뤄지고 있던 상황”이라며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의 큰 줄기는 발표하되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실제 정책 시행 과정에선 한국ㆍ일본 등 동맹국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한편 오는 5~6일 주요 7개국(G7) 외교ㆍ개발 장관회의를 계기로 열리는 한ㆍ미 외교장관 회담은 본격적인 한ㆍ미 공조를 위한 사전 탐색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G7 외교ㆍ개발 장관회의에 한국 측 수석대표로 참석하기 위해 2일 영국 런던으로 출국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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