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대 '황금폰' 피해자 "내 몸 본 사람들 눈 멀어버렸으면"

중앙일보

입력 2021.05.02 12:00

업데이트 2021.05.02 12:11

'내 몸을 본 사람들의 눈이 모두 멀어버렸으면 좋겠다. 내 몸을 평가하지 못하게 혀가 굳었으면 좋겠다.'  

지난해 서울예술대학교에서 발생한 ‘황금폰 사건’의 피해자가 최근 자신의 일기장에 쓴 내용 중 일부다. 최초 신고를 한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한다. 서울예대 출신 사진작가 2명은 지난달 8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고, 오는 12일 첫 공판을 앞두고 있다. 이들은 사진 관련 일을 하며 전 여자친구, 같은 학교 여학생 등의 나체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고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추적]

서울예대 ‘황금폰’의 정체

같은 과 선후배 관계였던 피고인들은 2014년부터 알고 지냈다. 이들은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전 여자친구 등 여성의 나체 사진과 영상을 주고받았는데 이 휴대전화를 ‘황금폰’이라 불렀다. 노출 수위가 비교적 낮은 사진과 영상이 공유된 휴대전화는 ‘황금도금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울예대 '황금폰 사건'은 불법 촬영 및 집단 성폭행으로 논란을 빚은 정준영의 '황금폰'과 유사하다. 피고인들은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같은 학교의 여학생 등을 찍은 사진을 공유하며 “또 다른 사진이 있으면 거래하자”고 했다. 피해자의 사진과 학과명, 학번, 실명도 언급됐다. 한 피고인은 '황금폰에 어마어마한 게 있다'며 여성들의 신체 등을 올렸고, 다른 피고인은 "아 좀 주세요"라고 요청했다. 이에 "자료를 내놓고 말해"라는 대화도 나눴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지난달 2일 이들을 북부지검에 송치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유포) 혐의가 적용됐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중 한 명은 불법 음란물 사이트에 일부 사진을 올려 포인트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8일 재판에 넘겨진 서울예대 출신 사진작가 2명의 카카오톡 대화방의 일부. '황금폰에 어마어마한게 있다'며 같은 학교 여학생들의 이름, 학과, 학번 등을 언급했다. 한 피고인은 피해자들의 얼굴 등 신체부위로 추정되는 사진들을 올리며 ″아직 많이 남았다″고 했고, ″아 좀 주세요″ ″자료를 내놓고 말해″라는 대화 내용이 담겼다. 독자제공

지난 8일 재판에 넘겨진 서울예대 출신 사진작가 2명의 카카오톡 대화방의 일부. '황금폰에 어마어마한게 있다'며 같은 학교 여학생들의 이름, 학과, 학번 등을 언급했다. 한 피고인은 피해자들의 얼굴 등 신체부위로 추정되는 사진들을 올리며 ″아직 많이 남았다″고 했고, ″아 좀 주세요″ ″자료를 내놓고 말해″라는 대화 내용이 담겼다. 독자제공

불법 사이트 유포 혐의도 

피해자에 따르면 피고인 중 한 명의 개인 컴퓨터에서는 피해자로 추정되는 이의 사진에 불법 음란물 사이트 로고가 붙어 있었다. 피해자 사진이 찍힌 장소는 피고인 집의 벽과 구조, 침대 프레임이 일치했고 이불 모양도 같았다고 한다. 해당 사이트는 현재 폐쇄된 상태다. 피해자 A씨는 "다른 불법 음란물 사이트에 제 사진이 올라왔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진이 유포됐는지는 모르겠다"고 불안해했다.

피고인들이 나눈 카카오톡 대화방에는 여성의 신체를 찍은 사진을 공유하며 "예전에 아트 한답시고 이런 거나 찍고 있었다" "벗겨놓고 많이 찍었네. 부럽다"와 같은 대화도 오고 갔다. A씨는 "친구나 선후배로서 포트폴리오 준비를 위해 모델을 서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공유하며 유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에 따르면 카메라 등의 기기를 이용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촬영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유포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서울예대 출신 사진작가 2명이 대화를 나눈 카카오톡 채팅방의 일부. 이들은 같은 학교 여학생들의 누드 포트폴리오 사진을 공유하며 ″예전에 아트한답시고 이런거나 찍고 있었다″ ″벗겨놓고 많이 찍었네 부럽다″는 내용의 대화를 나눴다. 학과와 학생 이름도 거론됐다. 독자제공

서울예대 출신 사진작가 2명이 대화를 나눈 카카오톡 채팅방의 일부. 이들은 같은 학교 여학생들의 누드 포트폴리오 사진을 공유하며 ″예전에 아트한답시고 이런거나 찍고 있었다″ ″벗겨놓고 많이 찍었네 부럽다″는 내용의 대화를 나눴다. 학과와 학생 이름도 거론됐다. 독자제공

피해자 "수사 아쉬워"…경찰 "추가 피해자 확인"

지난해 6월 성북경찰서에 이들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됐지만, 휴대전화 압수 수색은 9월에 진행됐다. 경찰 수사 결과는 지난 3월에서야 나왔다. A씨는 경찰 수사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경찰이 가해자의 자백이 없거나 피해자가 직접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이상 처벌이 어렵다고 했다"며 "지인의 얼굴을 전부 대조할 수도 없고,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사진이라는 그들의 말을 경찰이 수용한 것 같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피해자가 더 있고 이들은 사진이나 영상 등이 어디서 유포가 되고 있을지조차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사진을 확인하거나 삭제 지원 요청도 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얼굴이 나온 부분 등을 고려해 추가 피해자를 특정해 확인했고, 수사의 어려움은 크게 없었던 거로 알고 있다. 피해자 숫자는 말씀드리기 어렵다. 촬영은 찍은 증거가 나오기 때문에 가해자들이 혐의를 전면 부인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사진 전문가가 불법촬영…일벌백계해야"

서울예대 사진작가 사이버성폭력 대응모임은 지난해 학교 내에 대자보를 설치하고, 학교 측의 추가 피해자 조사와 가해자에 대한 강경 대처를 촉구했다. 이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제2의 황금폰 사건, 현직 사진작가들의 엄벌과 신상공개를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현재 이 학교 총학생회 측에서는 설문 조사를 시행하는 한편, 또 다른 피해자가 없는지 조사 중이다.

서울예술대학교 사진작가 사이버성폭력 대응 모임에서 지난해 11월 제작한 대자보의 일부. 독자제공

서울예술대학교 사진작가 사이버성폭력 대응 모임에서 지난해 11월 제작한 대자보의 일부. 독자제공

A씨는 “사진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불법 촬영을 했다는 점에서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피해 이후 충격을 받아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심장이 뛰거나 숨을 쉬지 못하는 증상이 생겼다. 합당한 처벌을 받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피고인의 법률 대리인인 이홍걸 변호사(법무법인 참진)는 1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피고인들은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직업 윤리적으로 비난을 받는 데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며 "현실적·법률적으로 피해자들에게 현재 용서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반성과 사죄의 마음이 전달되길 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만 직업을 기회 삼아서 촬영한 부분은 없다. 촬영 모델의 나체나 신체 사진을 찍어서 유포했다는 주장은 혐의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여자친구 등 개인적인 인간관계 내에서 성행위 등을 촬영해 지인에게 유포한 것이 범죄 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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